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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자곡동 작업실에서 만난 만화가 허영만 화백은 “만화가 무료, 콘텐츠가 무료라는 인식에 도전하고 싶었다. 만화의 유료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작품활동을 접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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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허영만의 마지막 베팅
모바일서 콘텐츠 유료화 선언만화인생 건 도전은 성공할까 ▶ 60대 중반을 넘긴 허영만 화백은 아직도 화제작을 그리는 ‘현역’ 만화가입니다. 그의 작업실에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표어들이 군데군데 붙어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서점을 가면 이 수천권, 수만권의 책 중에서 내 책이 팔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천생 ‘프로’입니다. 이런 만화가가 자신의 만화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허영만(66) 화백이 기자의 말을 잘랐다. “자꾸 새로운 시도, 도전이라고 말하지 말라니까. 그런 게 아니라 지금 막다른 골목에 몰렸어요. 이제 이 길밖에 남지 않았고, 이것마저 실패하면 만화 그만 그릴 겁니다.” <각시탈>, <날아라 슈퍼보드>, <비트>, <타짜>, <식객> 등 30년 넘게 히트작을 내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허 화백이 ‘만화 제값 받기’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 지난 4월9일부터 서비스가 시작된 ‘카카오페이지’에서 <식객2>를 유료로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식객2>를 보려면 편당 500원 혹은 월정액 2000원을 결제해야 한다. 허 화백은 단순히 만화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는 무료’라는 사회적 인식과의 싸움을 시작한다고 했고, 기자는 이런 모습을 ‘시도’ 혹은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표현이 허 화백의 마음에 거슬린 것이다. 허 화백은 궁지에 몰린 자신의 절박한 ‘행위’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돈 내고 만화 보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성과가 어떻든 이게 마지막 시도”라고 못박았다. 인터뷰는 5월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자곡동 쟁골마을에 위치한 허 화백의 작업실에서 이뤄졌다. 원고료를 독자에게 직접 받는 매력 -5년 만에 <식객> 연재를 다시 시작했다. “5년 전에 <식객> 연재를 중단한 것이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꼴>,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이하 말무사) 등의 작품을 연재했지만, <식객>만큼은 계속하고 싶었다. 작가가 평생 작품활동을 하더라도 정말 독자들에게 가깝게 갈 수 있는 작품은 많아봐야 서너편이다. <식객>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준비한 얘기를 아직 다 하지 못했고, 외부 여건만 허락되면 식객은 100권을 목표로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현재 <식객>은 27권 ‘팔도냉면 이야기’까지 출간됐다.) 그래서 지난해 7월 <말무사> 연재를 마치고서 <식객> 연재를 다시 시작하려고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다.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찾아서 온갖 곳을 다녔다. 심지어 매체가 아닌 한식세계화사업단이나 대기업들의 문도 두드렸다. 그런데도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곳을 찾지 못했다. 소재 고갈이 아니라 재정적인 문제로 만화를 못 그린다는 게 참 아쉬웠다. ‘정말 이대로 주저앉아야 하나’라고 낙심하다가 생각난 것이 스마트폰이었다. 화면은 작지만, 해상도가 좋아졌으니 이걸로 충분히 만화를 연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길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김범수 의장과는 원래 안면이 있었나? “아니다. 그냥 내가 만나자고 했고, 단도직입적으로 ‘식객을 연재할 곳을 찾고 있다’고 얘기했다. 김 의장도 바로 같이 해보자고 하더라. 기왕 시작하는 일이니 만화가 무료, 콘텐츠가 무료라는 인식에 도전하고 싶었다. 사실 도전이 아니라, 만화가들이 처한 상황은 막다른 골목이다. 독자들이 만화를 공짜로 보는 상황에서 포털이나 매체가 책정한 원고료로는 작품활동을 할 수가 없다. 웹툰의 경우엔 혼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 꽤 있지만, 내가 하는 작업들은 손이 많이 필요하다. 취재도 해야 하고, 음식과 배경 그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 운영하는 화실에도 문하생이 4명이다. 나를 포함해 5명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허 화백 같은 분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최근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화실 운영하려면 얼마가 든다’고 얘기했더니 말들이 많더라.(허 화백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달 화실 운영비가 3500만원 필요하다고 밝혔다.) 얼마 전에는 집 앞을 지나는데 동네 사람이 ‘허 선생이 그렇게 어려워?’라고 물어봤다. ‘돈이 부족하다’, ‘밥을 못 먹는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겐 만화가 일이다. 빚지면서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빚지면서 일하면 후배 만화가들은 무슨 희망을 가지고 일하겠나. 화실에서 집으로 생활비를 안 가져간 지 꽤 오래됐다. 문하생들 월급 주고, 취재비, 식대, 운영비, 세금 등을 다 떼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 -어려운 상황은 이해하는데 왜 ‘만화 유료화’를 시도하는지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만화 쪽 사람들은 나를 굉장히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성공하나 실패하나 지켜보고 있을 것이고, 내가 성공모델을 만들면 많은 후배 작가들도 새로운 활로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지금 상황은 너무 답답하다. 문하생들도 식사를 하다가 종종 ‘선생님, 이 만화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실력을 키워야 한다. 야구에서도 실력을 키워야 대타 기회가 올 때 배트를 휘두르는 것처럼 실력이 없으면 기회가 와도 날려버린다’고 채찍질한다. 하지만 사실 이런 말을 하는 속내는 복잡하다. 이 친구들의 앞길이 불투명하고, 만화계의 앞날이 어둡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고민 끝에 나온 것이 유료화다. 만화가 무료라는 인식에 도전하고, 독자들에게 직접 원고료를 받겠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독자들도 이젠 바뀌어야 한다. 최소한의 원고료를 지불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만화를 그릴 수 있다. 제작비가 방대하게 들어가는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다. 만화가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측면이 있다. 내 원고료를 신문이나 잡지, 포털업체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직접 받는 셈이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작품에 대한 접근성이 중요한데도 카카오페이지에만 <식객2>를 독점 연재한다고 했다. 이유가 있나? “사실 돈 내고 몇 사람이나 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다고 다른 곳에도 연재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일단 한 곳에 몰빵을 하는 것이다. 물론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나마 포털이나 신문에서 받던 원고료보다도 못 벌 수 있고, 아주 형편없는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결과가 어떻든 이게 마지막 시도다. 이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면 만화 그만할 거다. 혼자서 낙서 같은 만화나 끼적거리면서 여행하며 노후를 보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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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광’인 허영만 화백은 꼼꼼히 취재하는 만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책상 위에는 신작 연재에 필요한 각 지역의 토속음식과 동의보감에 대한 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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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만화가, 생활표어.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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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만화가에게 희망을 줘야
그들도 도전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덤비는 거다
성공 못 하면 만화 안 그린다 웹툰 덕분에 만화가들이
데뷔하기는 쉬워졌다
컴퓨터로 쉽게 그리다보니
그림이 별로 늘지 않는다
작품이 다양해지긴 했지만
장편 극만화 비중도 많지 않다 성과 거둔다면 다른 작가들도 동참할 것 -콘텐츠가 무료라는 인식은 만화뿐만이 아니다. “처음 인터넷이 활성화될 때 콘텐츠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사람들에게 공짜로 보여주고, 광고로 수익을 얻었는데 결국 이 수익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제대로 가지 않았다. 일본 만화잡지 <소년 선데이>의 편집장도 한국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선 단행본을 팔기 위해 1~2권을 인터넷에서 서비스하는 수준인데 한국은 콘텐츠가 무료라는 인식이 강해 판매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콘텐츠도 상황이 비슷하지만, 만화가 처한 환경은 심각하다. 음악 역시 한동안 무료였는데 요즘은 어떠냐.” -노래 150곡 정도를 1만원대에 판매하고 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최근 신문을 보니까 가수 장기하씨가 소비자들에게 자발적으로 가격을 매기라고 했더니 한 곡당 900원이 넘었다더라.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통해 콘텐츠가 제값을 받는 문화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정말 소중한 고급 콘텐츠는 사라질 것이고, 만들려는 시도조차 없어질 것이다. 한 사회에서 콘텐츠가 차지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다방면에 영향을 준다. 고급 콘텐츠가 계속 나와야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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