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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15일 오후 충남 홍성군 홍북면 충남도청 새 청사 집무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소개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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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커버스토리]안희정 충남지사 인터뷰
▶ 안희정 충남지사는 1989년 1월 당시 통일민주당 김덕룡 의원 비서관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정치 인생 24년째를 맞는 안 지사는 2010년 지방선거 출마 전까지 지도자와 주연이라기보다 참모와 조연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앞두고 안 지사를 만나봤습니다. ‘노무현의 적자’를 넘어 ‘정치인 안희정’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그는 참여정부 5년과 노무현, 그리고 친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수록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듯
특권과 반칙이 여전할 때
우리는 노무현을 떠올린다 친노라는 이름으로
이득 보려는 정치도 말고
과거를 공격해서 덕보려는
정치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못난 후손의 전형 “안희정 당신은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해달라.” ‘친노와 비노’, ‘참여정부의 공과’에 관한 질문과 답변이 몇 차례 오간 뒤 안희정 충남지사는 이렇게 말을 잘랐다. 안 지사는 ‘노무현’으로부터 ‘안희정’을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 “노 전 대통령에게 해야 할 인간적 의리와 도리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약속과, 그러나 이제는 ‘정치인 안희정’으로서 “대한민국이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의 과제를 뛰어넘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5월23일)를 맞아 지난 15일 충남 홍성군 홍북면에 있는 충남도청 새 청사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난 안희정 지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특권과 반칙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성실히 받든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자신을 가리켜 ‘노무현의 적자’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봉건시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 표현이 너무 안 좋다”는 말도 했다. 안 지사 인터뷰는 충남도청 새 청사에서 약 2시간30분간 진행됐다. 안 지사는 내년 충남지사 선거에 다시 나설 것인지 묻자 “말을 아끼겠다”고 대답했다. 2017년 대권 도전에 대해서는 “그만한 역량과 기대가 모인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갑을관계에도 역사는 전진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에 대한 안희정 충남지사의 소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 내려가서 ‘야 기분좋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노 대통령이 공적 업무에 대한 무거운 부담감을 내려놓은 홀가분함을 말씀하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많은 정쟁과 싸움으로부터 비로소 벗어났다는 해방감의 표현이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을 온전히 기념할 수 있게 그분을 역사 속으로 잘 놓아드렸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을 역사 속에 놓아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건가? “그렇다. 아직도 보수 진영의 많은 분들은 친노-비노 프레임을 이야기하며 이를 통해 우리 쪽을 분열시키려 하는데, 사실 이런 공격이나 과거 민주당을 호남정권이라고 공격했던 것이나 지나치게 정략적·정파적 논리다. 지난 5·4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많은 분들이 모두 김대중-노무현을 잇겠다고 선언했는데도 굳이 친노-비노를 가른다.” -한국 사회가 기억해야 할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도 있을 텐데?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은 각각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각각 단독정부 수립과 국가적 경제부흥전략 추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랐다. 다만 두분 모두 집권 말기 부정선거 등 선거제도 무력화나 유신헌법을 통한 장기집권 획책 등의 오점도 남겼다. 그 뒤 김대중 정부는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책무를 잘 마무리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의 시대적 과제는 특권과 반칙 청산이었다. 노무현은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특수한 권력 및 신분을 용납하지 말라는 시대적 요구를 성실히 받든 대통령이었다.” -최근 남양유업 사태 등을 통해 드러난 갑을관계의 폐해를 보면, 특권과 반칙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볼 때 그건 지나친 자학이다. 대한민국은 잘 전진하고 있다. 물론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가, 시장에서 많은 사람이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는가, 이렇게 따지면 아직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는 억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수록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듯, 특권과 반칙이 여전할 때 우리는 노무현을 떠올리지 않나. 특권과 반칙 청산이라는 가치를 자기 자신에게 먼저 적용한 노 대통령의 민주주의적 리더십은 그렇지 못한 현실이 우리 앞에 펼쳐질 때마다 우리 사회의 꼭 필요한 가치로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대한민국은 전진하고 있다’는 말은 공허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고통과 과제가 없는 시대는 없다. 오늘 청소했다고 내일은 청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질곡의 역사는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조금씩 진전된 과제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내하청의 문제,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부조리한 갑을관계의 문제보다 더 큰 기득권 질서와 싸워야 했다. 예전에 갑을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면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차가운 반응이 돌아왔겠지만 이제는 ‘그건 옳지 않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역사의 진전이다. 노 대통령은 그런 국민의 명령에 따라 대통령이 된 분이라고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 사회를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 진보와 보수, 여와 야 등으로 끊임없이 편가르기 했다는 지적을 일부로부터 받기도 한다. “노무현 리더십을 편가르기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노 대통령이 옳지 못하다고 지적한 지점은 정말 대한민국이 극복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해주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 과거 노 대통령이 군 장성에게 아주 쓴소리를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 똥별들만 있었단 말입니까.’ 그 말을 들은 당사자로서는 굉장히 마음 아팠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대한민국을 위해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 아니었나. 자주국방을 외친 지가 언제인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해) 한미연합 전력에 계속 의존해야 하나.” -1980년대 운동권 시절, 안 지사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봐도 그렇지 않나. 아무리 바람직하고 옳은 가치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이들에게는 당위성만 강조하면 안 된다. ‘불통’은 그래서 빚어지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그런데 그분을 모셨던 내 입장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담담히 하기란 참 쉽지 않다. 다른 분들이 그런 평가를 하면 나도 ‘맞아, 그분 리더십에서 그런 건 부족했어’ 이렇게 회상하게 된다. 그걸 내가 직접 대답하기는 참 마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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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29일 서울 경복궁 뜰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앞줄 가운데) 등이 침통한 표정으로 슬픔을 달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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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서 ‘친노’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용섭 후보(왼쪽)는 김한길 새 대표에게 큰 차이로 밀려 고배를 마셨다. 고양/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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줏대있게 정치해야 한다
앞으로 호남정권론이든,
종북좌파정권론이든
그런 식의 올가미에 갇혀
당이 분열되는 상황 막겠다 박원순 시장께 축하드린다
원래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정보기관이 제거하려 했던
지도자는 늘 위대하게 됐다
길게 보면 다 부질없는 짓을… 국민은 ‘땅 위의 사람들’…대권 도전 안 피할 것 -안 지사도 이제 곧 취임 3년을 맞는다. 직접 도정을 운영해보니 어땠나? “도민의 높은 기대와 요구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자세로 어떤 문제든 해결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못해서 늘 미안하다. 다만 나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모든 도민에게 공정한 도청, 그런 도정을 이끌어가려고 노력했다. 법과 제도 앞에 모든 사람이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정치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24년 정치 인생의 상당 기간을 지도자보다는 참모 역할을 하며 보냈다. 참모의 길과 지도자의 길은 어떻게 다르던가? “내가 과거에 알던 정치는 역사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갖고 그 소신에 입각한 지지자를 결집시켜 사악한 사람과 싸워 이기는 것이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참여정부 시절과 도지사를 거치면서 느낀 것은 국민은 원래 네 편 내 편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은 모두 ‘땅 위의 사람들’일 뿐이다. 이건 도지사 되고 나서 조금 더 넓어진 마음이기도 하다.” 안희정 지사가 자신의 ‘두번째 패배’로 기억하는 사건은 1988년 벌어졌다. 당시 그는 고대 안에 난립했던 14개의 운동권 서클을 해체해 단일한 지하조직, 애국학생회를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 서울대에는 구국학생연맹이, 연세대에는 반제학생동맹이 꾸려졌다. 그리고 각 대학의 통합 서클조직을 전국 대학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 1987년 출범한 반미청년회였다. 반미청년회는 곧 전국대학총학생회협의회(전대협)로 발전했다. 운동권에서는 반미청년회 조직을 만든 안 지사를 ‘전대협의 대부’로 불렀다. 전대협 출범 이듬해인 1988년 그는 반미청년회 사건(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구성 혐의)으로 검거됐다. 서울 남산(안전기획부 조사실)으로 끌려간 안 지사는 한달간 구타와 고문을 당하며 학생운동 지도자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결국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같이 활동했던 동지 두세명의 실명을 자백하고 말았다. 스스로 처절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패배해버린 것이다.”(안희정, <담금질> 58쪽) 그때 안 지사는 “앞으로는 능력이 딸리고, 준비가 안 된 자리는 절대 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지도자나 주역이 아닌 ‘후방 조력자’, ‘협력자’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 출마로 후방 조력자가 아닌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그에게 정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계기를 물었다. 그는 그럴듯한 대답 대신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솔직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충남지사 선거에 다시 출마할 건가? “그 질문에 대해서는 현재 말을 아끼고 있다. 앞으로도 도지사로서 계속 업무를 추진해야 하는데 출마 여부를 밝히면 공정한 도정을 이끄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답변은…” -그럴 줄 알고 이 질문을 준비했다. 대권에 대한 도전은 준비하고 있나? “내가 감히 다음 대권 도전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을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 내 처지를 보면 내가 앞서 말한 주요 의제들,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내가 자신감있게 ‘이렇게 가봅시다’ 하는 확신과 그만한 역량이 생긴다면, 또 그런 문제에 관한 사람들의 기대가 모아진다면 당연히 그건 해야 한다. 그건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현재로서는 그런 것들에 대한 충분한 자신감이 없다.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대한 해법도 그렇고, 많은 청년 실업자와 은퇴자가 ‘내게도 일자리를 달라’고 하는데 이런 문제에 관한 완전한 해법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해봅시다’ 하는 확신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는 것, 그 정도가 지도자의 몫 아닌가. 어떻게 해법까지 직접 다 내놓을 수 있나? “그렇다.(웃음) 내가 지금 거기까지는 왔다. 문제의식만 분명하다면 해법은 많은 전문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면 된다. 그런데 이 문제의식이 포함해야 할 철학적 가치만큼은 지도자로부터 나와야 한다. 국민, 역사와의 대화를 통해 형성된 철학과 소신이 없는 지도자라면 국가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홍성/최성진 기자 csj@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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