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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twitter)는 ‘재잘거리다’는 뜻을 담고 있다. 트위터는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읽고 말하는 게 제일 좋다. 허재현 한겨레 토요판팀 기자가 11일 한겨레신문사 휴게실에서 아이패드로 자신의 트위터 타임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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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트위터의 사람들
▶ 트위터는 2009년 “혁명적 소통 문화를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으며 우리 사회에 빠르게 뿌리내렸습니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뒤 적극 이용층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습니다. 트위터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한 걸까요. 파워 트위터리안 20여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 사회 트위터의 현주소를 짚어보았습니다. 딱히 정답이 없는 주제여서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여러분과 대화하듯 구어체로 기사를 썼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트위터로 많은 대화를 해왔던 허재현 기자(@welovehani)가 취재를 맡았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트위터 실이용자 29만명 줄고
휴면 계정은 109만개 늘어
대통령선거 후유증으로
트위터를 중단하는 추세 김두식
“학생 때 데모하다 보면
신입생들은 뒷줄에 서잖아요
최루탄 터지면 다 도망가고
신입생들이 맨 앞에 서잖아요
제가 요즘 트위터 신입생 같아요” 트위터 아이디 @badromance65를 쓰는 누리꾼 ‘무지개 승리’(남·40대 직장인·서울)는 트위터를 참 열심히 합니다. 2011년 6월부터 지금까지 15만8000개의 멘션을 남겼습니다. 자신이 집에서 직접 만든 닭요리 사진을 올리는 등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해 빠지지 않고 관심을 표하기도 합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농성하고 있는 서울 대한문 앞에 가끔 촛불을 들고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이 누리꾼은 아쉬운 게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올해 1월부터 트친(트위터 친구의 줄임말)들 활동이 많이 줄었어요. 최근 제 트친들(2만2800명)의 트위터를 살펴보니 30% 정도는 아예 글을 안 쓰고 있더라고요. 대통령선거에서 야권이 패배하니 정치적 허무감에 빠진 게 아닌가 싶어요. 트위터 이용자가 줄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국민이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길 바라는 분들이 가장 좋아할 겁니다.” 이 누리꾼은 트위터야말로 ‘알바’(특정한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글을 남기는 이)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공간이었는데 이제 서서히 활동 주체가 바뀌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트위터가 알바의 영향력이 무시되고 여론의 신뢰할 만한 척도로 남을 수 있었던 데는 정보를 선별하는 편집자가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트위터에서는 누리꾼이 퍼뜨리고 싶은 정보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리트위트 버튼이 일종의 편집자 기능을 하는 겁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 편집권이 주어진 최초의 매체가 트위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괜히 말 한마디 했다가 잡혀갈라 하지만 트위터를 활발히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면서 ‘특정한 목적’을 갖고 활동하는 이들만 남게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소셜네트워크 분석업체 사이람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트위터에 한번 이상 글을 남기는 실이용자는 124만명이었는데 올해 5월에는 95만명까지 떨어졌습니다. 8월에는 조금 회복돼 103만명 정도입니다. 누리꾼 사이의 대화도 줄었습니다. 트위터 글은 보통 멘션(일반적인 혼잣말), 리플라이(다른 이에게 보내는 대화글), 리트위트(퍼나르는 글)의 비율이 각각 25%, 65%, 10%입니다. 트위터 글의 절반 이상이 누군가와의 대화인 셈입니다. 그런데 8월에는 리플라이 비율이 38%, 리트위트 비율이 23%였습니다. 트위터 이용은 하되 활발한 대화보다는 단순히 타인의 글을 읽거나 퍼나르는 경향이 커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만 놓고 활동하지 않는 휴면 계정의 비율도 계속 늘어 지난해 12월 55.6%(349만개)에서 올해 8월 기준 63.6%(458만개)로 변화했습니다. 트위터를 지켜보면 누리꾼들이 대통령선거 결과에 대한 후유증으로 트위터를 중단했다고 느껴집니다. 야권 성향의 트위터 이용자 사이에서는 지난해 말까지 ‘뭔가 바꾸어보자’는 열망의 기운이 컸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사라지자 일종의 ‘멘붕’(멘탈 붕괴: 심리적 공허감을 지칭하는 누리꾼 용어)이 온 것 같습니다. 트위터뿐 아니라 뉴스도 안 본다는 분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2011년 트친들의 응원으로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고된 시간을 이겨낸 김진숙(@JINSUK_85)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대선 이후) 너무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곧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큰 변화가 좌절되니까 ‘에이, 안 보고 말지’ 하고 트위터를 떠난 것 같습니다.” 19만명의 팔로어가 있는 탁현민(@tak0518)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는 여전히 트위터를 하고 있지만 최근 한달여간 활동을 쉬었습니다. 그는 “요새 솔직히 트위터 재미없다”고 말합니다. “트위터 세계에 패러디와 위트가 사라진 느낌이에요. 저는 ‘진지한 고민’도 어떻게 하면 가볍게 알릴 수 있을까 노력해왔는데 (대선 이후) 요즘은 끝없이 슬퍼지고 비장해지는 게 트위터 주류 정서가 된 것 같아요. 물론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는 2013년 현실의 반영이겠지만 그래서 더욱 트위터를 살펴보는 것을 저어하게 되지 않나 싶어요.” 눈치가 보인다고 할까요? 세상이 너무 엄혹한데 가볍게 재잘대는 글을 쓰면 비난받을 것 같은 느낌을 저 역시 받습니다. 국가정보원 개혁을 염원하는 촛불이 켜져 있고, 대한문 앞에서는 해고노동자들이 단식을 하고 있는데 한가롭게 ‘오늘 스파게티 먹고 돌아왔다’는 등의 글을 쓰는 게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며칠간 트위터에 아무 글도 안 쓰게 된 적이 있습니다. 탁현민 교수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정치적 허무주의 또는 엄숙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트위터 이용이 줄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습니다.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갈 것 같은 두려움입니다. 이것은 자기검열로 이어집니다. 북한의 대남 선전 누리집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글을 조롱하는 의미로 몇차례 리트위트했다가 2012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던 박정근(@seouldecadence)씨. 지난달 8일 2심 재판에 이르러서 겨우 무죄 판결을 받은 그는 이제 북한과 관련한 농담을 이전처럼 쉽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뒤 터진 몇몇 공안사건들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를 못하는 것 같아요. 국정원의 이석기 의원 수사 건에 대해서도 ‘나는 이석기와 다르지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보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두식(@kdoosik)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일 “트위터에 실명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올리는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갈수록 그런 분들이 줄어들고 있어요. 안타깝습니다”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적었습니다. 박정근씨의 우려와 비슷한 맥락에서 쓴 글 같습니다. 김 교수는 심지어 요즘 이런 생각까지 든다고 하는군요. “학생 때 데모하다 보면 신입생들은 제일 뒷줄에 서잖아요. 최루탄이 터져요. 눈 뜨고 보면 다 도망가고 신입생이 대열 맨 앞에 서 있게 된 경우가 있지요. 요즘 유명 인사들은 사회적 발언을 조심스러워해서 저 같은 사람들만 덜렁 남은 것 같아요.” 페이스북으로의 이동은 치유의 몸부림 트위터의 다소 공격적인 문화에 지친 누리꾼들이 요즘 페이스북으로 옮겨 가는 추세도 발견됩니다. 김두식 교수의 트친들도 요즘 페이스북으로 많이 건너갔다고 합니다. 초창기 한국 사회에 트위터를 열심히 알린 사람 중 한명인 고재열(@dogsul) 시사인 기자는 요즘 페이스북에 글을 많이 남깁니다.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 트위터에 연동되어 자동으로 그의 트위터에도 게시되지만, 이제 고 기자의 활동 중심축은 페이스북입니다. ‘희망버스의 기적’을 만들었던 2011년까지 비교적 따뜻한 의사소통이 주를 이뤘던 트위터지만 2012년 대선 정국을 거치며 이용자 사이에 날카로운 설전이 벌어지는 일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진보진영 안에서도 다양한 견해차로 종종 날카로운 ‘말의 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친노진영을 대놓고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이라고 조롱하거나, 안철수 지지자를 ‘안빠’라고 부르며 서로를 공격했습니다.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유명인이 말실수를 하면 그것을 빌미로 독설을 퍼붓는 누리꾼도 많아졌습니다. 백번 좋은 얘기를 해도 한번 말실수하면 그 말실수만 유포해 특정인을 늘 말실수만 하는 사람처럼 만드는 유명인 패러디 ‘봇’(로봇의 줄임말로 가상의 인물이나 대상을 설정해놓고 운영하는 계정)도 하나둘 출현했습니다. 익명성의 두 얼굴이지요. 익명성은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기도 하지만 괴롭힘의 자유를 확대하기도 합니다. 공격의 타깃이 되는 누리꾼들은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아왔습니다. 페이스북으로 건너가는 누리꾼이 많아지는 것은 ‘치유의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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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와 연동을 하지만
요즘은 페이스북 많이 해요
아무리 멘탈이 강한 사람도
1~2년은 욕설 견뎌내지만
수년간 그러면 건강에 안 좋아요” 레인메이커
“정치적 허무감 속에 5년을
더 보낼 수는 없지요
국정원이 또 언제 심리전단을
가동할지 모르기 때문에
뭔가 계속 이야기를 해야죠” 장덕진 교수도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트위터의 영향력이 최대였던 시기를 (희망버스 등이 출범했던) 2011년으로 봅니다. 그때는 트위터에 상식인이 많았습니다. 이후 친여든 친야든 정파의 입장을 반영하는 사람들이 대거 트위터에 몰려들며 트위터에서 상식인들의 발언력이 약화됐습니다. 특정 정파의 이익에 기반을 두지 않고 상식적인 수준의 논쟁이 많아야 트위터가 2011년처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특정 조직의 명령을 받아 선전 행위를 하는 분 또는 서울시 내곡동에 직장을 둔 정보요원들로 보이는 트위터 계정은 과감히 언팔로(친구 관계를 끊는 일)해 여러분의 ‘트위터 타임라인’을 정리해보시면 어떨까요. 진짜 나에게 도움을 줄 만한 사람들과 소통을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소통하는 맞팔로어 규모가 아니라 맞팔로어의 질입니다. 심각한 이야기 외에 트위터의 원래 의미대로 가볍게 재잘거리는 글도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는 분도 많습니다. 진중권 교수가 최근 함께 살기 시작한 고양이 ‘루비’ 이야기를 자주 트위터에 올리는 것도 그러한 바람과 관련이 있습니다. “루비 이야기를 일부러 많이 쓰고 있어요. 살면서 소소한 이야기들도 하고 살아야지요. 유명한 사람들도 똑같이 ‘찌질’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요. 그게 민주주의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기, 조직적인 활동으로 트위터 여론을 왜곡하지 않기, 마음껏 재잘거릴 수 있도록 국가와 직장이 압박하지 않기. 이 조건들이 잘 충족된다면 우리의 트위터 세상은 2011년처럼 긍정적인 에너지를 쏟아내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파워 트위터리안 20여명과 인터뷰한 뒤 내려보는 결론입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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