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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보내는 눈물. 11일 울산시 울주군 구영공원에서 열린 이서현양의 49재에서 친모 심아무개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심씨는 헌화를 하러 일어섰지만 다섯 걸음을 채 떼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울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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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 서현이의 죽음
▶ 영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클림비 사건’은 최악의 아동학대 사례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바로 2000년 2월25일 빅토리아 클림비라는 9살 여자아이가 아동학대로 인해 온몸에 128개의 상처를 남기고 죽은 사건이죠. 영국 정부가 작성한 ‘클림비 보고서’를 보면, 클림비를 살릴 수 있는 기회는 최소 12번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난 이서현(8)양을 살릴 수 있었던 기회는 몇번이 있었을까요. 운동장에선 한눈에 새파란 바다가 보였다. 13일 낮 12시께 찾은 경북 포항 영일만 인근의 한 초등학교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야트막한 학교 건물 밖을 오가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고, 건물 사이로는 살을 에는 듯한 해풍이 불었다. 전교생이 25명뿐인 이 학교는 마치 방학 중인 것처럼 조용했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 아이들 두세명이 있었다. ‘유치원이 어디인지’를 묻자, 아이들은 따라오라며 장난스레 뛰어다녔다. 그들을 따라 다른 건물로 이동하자 한창 수업을 하고 있는 유치원이 보였다. 이 유치원이 10월24일 오전, 울산에서 의붓어머니에게 폭행을 당해 갈비뼈 16개가 부러지며 사망한 이서현(8)양이 1년여간 다닌 곳이다. “가족 일이니 신경쓰지 말라”던 아빠 서현이는 2010년 9월 이 유치원에 왔을 때부터 ‘이상한 아이’였다. 당시 교사들은 서현이를 팔다리에 자주 상처가 났던 애로 기억하고 있다. 한 유치원 교사는 서현이를 이렇게 기억했다. “애가 유치원에 처음 올 때부터 자주 상처가 났어요. 이틀에 한번꼴로 팔다리를 다쳐 밴드를 붙여 왔고,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죠. 아침에 유치원 오면 풀이 죽어 있다가, 친구들이 오기 시작하면 싹 잊고 같이 뛰어다니며 놀았어요. 그러다 집에 갈 시간이 되면 낯빛이 확 변해 표정이 굳었죠.” 서현이는 선생에게 거리를 두는 애였다. 한 선생은 “애들이 선생에게 안기고 엉겨붙는데, 그 아이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치원에 오고 한달 뒤인 그해 10월, 유치원 교사들은 서현이에게서 눈에 띄는 타박상을 발견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누워 있었다. 아이를 달래주며 다가가 머리를 빗어준 한 교사는 두피에 난 피멍을 발견했다. “애가 검도할 때 쓰는 죽도로 맞았다고 했어요. 직경 5㎝ 이상 되는 큰 멍이었죠. 멍의 가장자리엔 핏대가 서 있었고요. 그리 큰 멍이 났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했어요.” 서현이는 이때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고발을 했다. 유치원 선생이 ‘어떻게 다쳤는지’를 묻자 서현이가 ‘검도장에서 초등학교 1학년 오빠에게 맞았다’고 답했다. 다시 선생이 ‘1학년 오빠가 누군지’를 묻자 아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여긴 선생은 재차 누구에게 맞았느냐고 물었고, 아이는 “엄마에게 맞았다”고 실토했다. 선생은 ‘그럼 왜 1학년 오빠에게 맞았다고 말했느냐’고 더 캐물었고, 아이는 ‘엄마가 시켰다’고 털어놨다. 팔다리에 자주 상처 났던 애머리 아프다는 말도 하던 애
집에 갈 때 낯빛이 변하던 애
등에 고루 퍼진 피멍을 보고
유치원 교사는 신고를 했다 기관은 학대라고 판정했지만
학대행위자가 잘못 인정하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며
격리않고 집으로 돌려보냈고
아이가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유치원 교사는 서현이의 의붓어머니 박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만 해도 친어머니가 아닐 거란 의심을 하지 못했다. 당시 박씨는 유치원 교사에게 “검도학원에서 다친 것이 맞고, 저녁에 학원 선생이 찾아와 용서를 빌고 갔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교사는 이상하게 여겼지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어느 날 서현이는 교사에게 “아침에 일어나 책 읽고 발표한 뒤에 유치원에 오는데, 제대로 발표하지 못하면 발바닥을 맞는다”고 말했다. 이 일로 교사는 다시 박씨에게 전화를 걸어 “체벌을 삼가달라”고 당부했고, 점점 아이의 팔다리에서 상처가 발생하는 빈도가 줄었다. 줄어든 것은 상처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말을 아끼기 시작했고 간혹 발견되는 상처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아이가 그렸던 그림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족을 그리라고 하니, 아이가 자기랑 아빠는 작게 그리고 엄마는 훨씬 크게 그렸어요. 찢어진 눈에 눈꼬리가 올라간 엄마가 손에 회초리를 들고서 혼내고 있었고, 아이는 그 앞에서 울고 있었죠. 아빠는 뒤에서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어요.” 서현이를 눈여겨봤던 유치원 교사들은 2011년 5월13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타박상 흔적을 발견했다. 바로 아이의 등판 전체에 고루 퍼진 피멍이었다. 교사는 박씨가 아닌 친아버지 이아무개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이씨는 “가족 일이니 신경쓰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 교사는 바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확인에 나섰다. 아이에 대한 건강검진을 실시했고 가정을 방문했다. 박씨는 자신이 때렸다는 것을 인정했으나 “훈육 차원의 체벌”이라고 변명했다. 이 기관의 권아무개 관장은 “박씨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아동학대로 판정했다. 판정 결과를 학대행위자에게도 분명히 알렸다”고 밝혔다. 아동학대로 판정된 이후 아이는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졌다. 권 관장은 ‘격리보호’ 조처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아동학대 판정이 난 이후에 격리 여부를 결정하려면 두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수십개의 질문을 통해 아이의 위험 정도를 계량적으로 측정한 이후, 학대행위자의 의지와 제반상황을 두루 고려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서현이의 경우, 학대행위자가 잘못을 인정했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여 격리보호 조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학대 신고 이후 서현이는 두달 반 동안 포항에 거주했다. 이 기간 동안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대행위자 상담 13차례, 주변인 조사 10여차례를 진행했으며 아이가 좋아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기관의 관계자는 “아이가 또래답지 않게 치마를 한번도 입지 않았는데, 기관의 개입 이후 치마를 입고 오고 표정이 밝아지는 등 문제행동이 개선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유치원 교사가 전해주는 얘기는 달랐다. “아이가 몸집이 작은데도 유치원에 오면 유난히 식탐이 많았어요. 점심식사를 하거나 간식을 먹을 때 허겁지겁 먹곤 했죠. 그런데 학대 신고를 한 이후엔 아이가 잘 먹지 않았어요. 결국 이사 때문에 유치원 그만둘 때쯤엔 아이가 꽤 말랐죠. 애가 이사가고도 잘 먹을까 걱정을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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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에 참석한 한 시민이 어린 딸과 함께 이서현양의 사진을 보고 있다. 울산/강재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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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응급구조대에 신고한 엄마는
컴퓨터로 ‘멍 지우는 방법’을
검색하고 멍 자국 없애기 위해
죽은 아이를 뜨거운 물에 담갔다 엄마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찬
동시를 쓴 서현이는 그 아래에
예쁘장한 엄마 그림을 그렸다
살아남으려는 간절한 몸부림 해당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현 법제도에서 친어머니에게 학대 사실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기관의 관계자는 “친어머니의 연락처나 주소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기관은 학대행위자가 친어머니인지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기관의 관계자는 “학대행위자가 친어머니라고 주장하고, 주변 사람들도 맞다고 증언해 그런 줄로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식 문서를 통해 친어머니 여부를 확인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아이가 거주하는 지역의 동사무소에 협조 공문을 보내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를 열람했지만 학대행위자의 이름을 (문서에서) 찾을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공식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없었는데도 친어머니라고 믿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답변인 셈이다. 친어머니가 2009년 6월 친아버지와 이혼한 이후 아이를 한번도 만나지 않은 점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생활력이 있는 친아버지 이씨가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심씨는 친권을 순순히 포기했고, 본인이 갖고 있는 면접교섭권도 행사하지 않았다. 심씨는 “이혼 뒤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렸고 면접교섭권의 행사 절차가 복잡한 줄 알았다.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만나지 않은 내 잘못이 크다”고 말했다. 심씨는 아이의 이름이 ‘서현’에서 ‘채우’로 바뀐 것도 알지 못했다. 아이는 2010년 8월5일 개명했다. 박씨가 양육을 맡은 지 9개월 만이었다. 박씨는 아이의 이름을 바꾼 이유를 여러차례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개명 당시 서현이를 돌봤던 한 대학 부속 유치원 교사는 “박씨가 아이 이름을 바꾸고 새 출발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로 유치원도 옮겼다”고 기억했고, 울산의 한 이웃 주민은 “박씨가 아이를 씩씩하게 키우고 싶다며 중성적인 느낌의 이름으로 바꿨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포항에서 학대 판정을 받은 서현이는 불과 두달 반 뒤인 2011년 7월30일 인천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인천에 있는 기관으로 ‘해당 사건’을 이관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전 기관의 관계자는 “사건을 종결 처리하지 않았고, 새 거주지의 기관에서 상담과 치료를 이어가도록 조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건을 이관받은 기관의 관계자는 “아동에 대한 서류에 ‘재학대 여부 확인, 주의 요망’ 등이 아닌 ‘친모상담 요망’ 정도의 내용만이 있어, 사건이 경미하다고 파악했다. 박씨와는 두차례 통화를 했고, 두번 모두 ‘기관의 개입을 원하지 않고, 아이와 잘 지내고 있다’는 답변만 받았다. 그 이후론 전화 자체를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고 볼 근거는 없었다. 오히려 아이는 인천으로 이사를 가고서 6개월 뒤인 2012년 1월27일 머리를 다쳐 진료를 받았다. 이 아이의 ‘건강보험 요양급여 내역’을 보면, 이날 ‘상세 불명의 두개 내 손상’(이유를 알 수 없는 머리 안쪽의 손상)으로 진료를 받고, 환자 본인부담금으로 진료비 5만4700원을 지급했다. 이 상처에 대해 박씨는 ‘넘어져 다친 것’이란 입장이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박씨가 아이 사망 이전에 골절상, 화상 등의 상해를 입힌 것을 인정했지만, 머리 쪽의 상처에 대해선 혐의를 부인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아이가 도벽이 있다고 얘기했죠” 서현이는 2012년 2월 울산시 울주군으로 이사와 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서현이를 접한 교사, 이웃 주민들은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밝고 건강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들의 기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부분들이 적지 않다. 서현이는 초등학교 1, 2학년생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조숙한 편이었다. 학교를 오후 1, 2시에 마치면 서현이는 아파트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2~3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11일 오후 이 아파트의 도서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서현이를 기특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애가 학교 끝나자마자 혼자서 도서관에 왔어요. 아이가 한번 자리에 앉으면 두시간, 세시간이고 바른 자세로 앉아 책을 읽어요. 저도 아이가 있는 엄마지만, 그 나이 때 아이들이 절대 보일 수 없는 행동이에요.” 다른 주민은 서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돌이켜보면 이 도서관이 그 아이에게 편한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일주일에 하루씩 학교 도서관에서도 봉사를 하는데요. 거기선 그 아이가 만화책, 그림동화를 읽고 있었어요. 여기선 글씨가 가득한 책들만 읽었거든요. 이 아파트 도서관은 동네 아줌마들 사랑방이나 다름없어요. 만나면 자녀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죠. 평소에 박씨에게 ‘아이가 의젓하게 책을 잘 읽는다’, ‘글씨 많은 어려운 책들을 곧잘 읽는다’고 칭찬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일러바친 꼴이에요. 참 미안하네요.” 아이가 아파트 도서관에 매일 온 것도 자발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서현이가 1년 넘게 다닌 피아노학원 교사 이아무개씨는 아이가 철저히 엄마의 계획대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학원으로 오는데요. 그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피아노학원으로 오고 싶어했지만 아쉬워하며 혼자 아파트 도서관으로 향했어요. 그러다 가끔 박씨로부터 ‘아이가 도서관 가지 않고 바로 학원으로 가도 좋다’고 연락이 와서 아이에게 알려주면 뛸 듯이 기뻐했죠. 아이가 스스로 도서관에 간 것은 아니었어요.” 인근 상점의 주인들도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미용실 원장 권아무개(33)씨는 남다른 아이로 서현이를 기억했다. “박씨가 한달에 한번꼴로 머리를 하러 오는 단골손님이었고, 아이를 세번 미용실에 데려왔어요. 그때마다 다른 아이와는 너무 달랐죠. 보통 미용실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빨리 집에 가자고 투정을 부려요. 그 아이는 3시간 넘도록 얌전하게 기다렸어요. 제가 착하다며 음료수를 주면 아이는 놀란 듯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받았죠. 아이의 머리 상태를 보면, 최소 6개월은 미용실에서 자른 적이 없어요. 그때마다 속으로 ‘엄마는 저리 자주 머리를 하면서 왜 예쁜 딸아이는 머리를 안 해주노’라고 생각했죠.” 인근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최아무개(54)씨는 “아이가 엄마랑 와서 밥을 먹는데, 자꾸 고개를 꾸벅꾸벅하면서 ‘예예’ 했다. 그래서 음식을 가져다주며 ‘야야, 엄마에게 왜 예예 하노. 엄마에겐 친하게 말 놔야지’라고 했더니, 그 엄마가 ‘어릴 때부터 교육을 똑바로 시켜야 하고, 그래서 이름도 서현에서 채우로 바꿨다’고 정색을 했다”고 전했다. 피아노학원 교사 이씨는 아이가 의붓어머니의 학대로 사망했단 소식을 접하고 믿기가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친어머니가 아닌 줄 몰랐을 뿐 아니라 다른 학부모에 비해 박씨가 아이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교사에게도 친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충격을 추스르고 돌이켜보니 의아한 대목들이 여럿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학원에 오면 하루도 빠짐없이 물을 한두잔씩 벌컥벌컥 마셨어요. 박씨는 아이가 도벽이 있다고 여러번 얘기했죠. 학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두번 사줬는데, 그때마다 나중에 연락이 와서 ‘학원에서 사준 것이 맞느냐’며 연락이 왔어요. 아이가 도벽이 있어 확인한다는 거였죠. 하루는 아이가 왕소라 과자를 학원에 사왔는데, 나중에 박씨에게 전화가 오더니 ‘아이가 훔친 과자’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아이가 선생님들에게 고마워 순간 실수를 한 모양이니 너무 혼내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다른 주민은 아이에게 가혹했던 박씨의 모습을 기억했다. “박씨가 아이를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게 해 30분 동안 러닝머신을 뛰게 한다고 했어요. 하루는 아이에게 ‘너 아침에 러닝머신 뛰는 거 안 힘드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안 힘들어요’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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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울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한 이서현양의 의붓어머니 박아무개씨가 재판을 마치고서 호송 버스에 오를 때 인터넷 카페 ‘하늘로 소풍간 아이를 위한 모임’ 회원들이 뿌린 물을 맞고 있다. 이날 법정에서 박씨는 아이를 사망에 이를 정도로 때린 것은 사실이지만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며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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