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청소년을 위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많은 청소년 여러분도 유우성이라는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주인공, 그 유우성 말입니다. 도대체 유우성은 누구이길래 이런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게 됐을까요. 아니, 그는 정말 간첩이 맞는 걸까요. 저는 이 글에서 유우성은 누구인지, 그가 어떻게 간첩 조작사건의 중심에 서게 됐는지 여러분과 함께 찬찬히 짚어보려 합니다.
북에 남겨둔 부모님을 그리워했답니다
유우성은 북한에서 3대째 태어나고 자란 화교입니다. 화교란 중국 이외의 외국에 사는 중국인이나 그 자손을 가리키는데요, 유우성은 북한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북한국적법상 북한 국적을 취득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른 북한 주민과 함께 그들 속에서 ‘북한 사람’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왔으니, 중국인보다는 한국인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유우성이 북한을 탈출한 건 10년 전인 2004년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준의사’로 병원에서 근무했던 유우성은 많은 탈북자와 마찬가지로 북한 사회에 대한 환멸, 그리고 남한에 대한 동경을 품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질수록 남한 사회를 그리는 마음은 커졌고, 결국 그는 위험을 무릅쓴 채 북한을 탈출하게 됩니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남한이었습니다.
혼자 북한을 빠져나온 유우성은 남한에 사는 동안 북한에 남겨두고 온 부모님을 몹시 그리워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그는 북한에 있는 부모님과 전화통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실제로 수차례 전화로나마 부모님을 만나기도 했고요. 사실 남한에서 전화로 북한에 있는 가족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는 엄연히 현실입니다. 방법도 간단합니다. 북한에 있는 가족이 중국과의 접경 지역에 살고 있다면 중국 휴대전화를 갖고 남쪽과 전화통화를 시도하는 것이지요. 국가정보원 직원들도 종종 탈북자를 시켜 북한의 가족과 전화통화를 하도록 합니다. 마침 유우성의 가족도 중국과 가까운 북한 회령시에 살고 있었으니 전화통화는 어렵지 않았어요.
유우성은 2006년 5월22일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이렇게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불의의 사고를 경험하게 됩니다. 남쪽 유우성과 몰래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던 어머니가 통화중 북한 국가안전보위부(한국의 국정원과 비슷한 곳)에 적발된 것이었습니다.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어머니는 당시 충격으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습니다.
전화가 연결돼 있는 동안 북한에서 뭔가 급박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만 알았지,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었던 유우성은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또 한번 모험을 시도합니다. 한국의 승인 없이 북한을 다시 찾아간 겁니다. 이렇게 몰래 북한에 들어가 어머니 장례를 치른 유우성은 이후 중국 친척집 등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이때 일로 유우성은 몇 년 뒤 검찰에 적발(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됐지만 불기소 처분을 받고 넘어갔습니다. 검찰은 대개 혐의가 무겁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법원에 유무죄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피의자를 기소하는데요, 유우성이 정부의 허락 없이 북한에 다녀온 것은 그렇게 무거운 범죄는 아니었다고 본 것이죠.
그 뒤 유우성은 남한 사회에 뿌리를 내리려고 공사장 인부일 등을 하며 어렵게 살았는데요,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노력은 멈추지 않았어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죠. 돈벌이에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는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고,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이후 2011년 6월께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유우성이 남한 사회에 뿌리를 내리려고 애쓰는 동안 북한에 있던 아버지와 여동생도 변화를 겪게 됩니다. 유우성처럼 북한을 떠나기로 결심한 겁니다. 2011년 7월9일 두 사람은 그렇게 북한을 떠났습니다. 그 이후 유우성의 아버지는 중국 땅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여동생은 남한행을 선택했습니다. 그때가 2012년 10월 말께였는데, 물론 이때 도움을 준 건 오빠인 유우성이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여동생은 모든 탈북자들이 거쳐가는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라는 곳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그녀는 갑자기 자신과 오빠 유우성이 간첩행위를 했다는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여동생이 털어놓은 유우성의 간첩행위는 그가 어머니 장례식 이후 네차례 북한에 밀입북했고, 세차례에 걸쳐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여기서 잠깐, 우리는 그녀에 대한 국정원 조사과정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다음은 그녀의 주장을 종합한 내용입니다.유우성의 간첩 혐의 증거는
6개월 동안 중앙합동신문센터
독방에 갇혀 거짓말을 강요당한
여동생의 진술이 유일했는데
법정에서 증언을 부정했어요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자
검찰과 국정원은 북한에 다녀온
유우성의 출입국 기록을 제출해
‘간첩이 맞다’고 계속 주장했지만
중국은 위조문서로 인정했어요
폭행·욕설·전기고문실로 데려가겠다는 협박 여동생은 약 6개월 동안 중앙합동신문센터 독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훗날 법정에서 그 조사과정을 상세하게 증언했는데요, 그 내용을 보면 기가 막힌 내용이 많습니다. 여동생은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입소하자마자 1인실에 들어갔습니다. 첫 5일 동안은 괜찮았습니다. 자신의 탈북 경위 등을 듣는 국정원 직원은 친절하기만 했습니다. 그 5일이 지나자 상황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그녀를 화교로 의심하기 시작한 겁니다. 여동생은 자신이 화교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이미 한국에서 공무원으로 살고 있는 오빠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몰라 한사코 아니라고 발뺌했어요.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여동생은 자신이 화교라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우성의 여동생이 화교라는 사실을 파악하게 된 국정원 조사관들은 그녀를 강제출국 시키지 않았어요. 대신 갑자기 오빠의 과거 밀입북 사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겁니다. 여동생이 알기로는 어머니 장례식 이후 오빠가 한번도 북한에 간 적이 없어 이를 사실대로 말했어요. 그러자 국정원 직원 2명은 여동생을 폭행하고, 욕설을 하며, 전기고문실로 데려가겠다고 협박하는 등의 가혹행위를 했다고 합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여동생을 몰아붙이면서도 오빠의 밀입북을 인정하면 자신들이 도와 줄 수 있는 것처럼 그녀를 회유했어요. 오빠도 이미 밀입북을 인정했다는 거짓말까지 덧붙이면서요. 여동생은 국정원 직원들의 폭행이 두렵기도 했고, 한편으로 오빠도 이미 인정한 만큼 오빠를 돕겠다는 국정원 직원의 말을 믿고 거짓 진술을 하게 됐습니다. 여동생은 처음에 오빠가 약 15차례 밀입북했다고 허위 진술했다가 나중에 4차례 정도로 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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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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