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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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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 여자 크리켓 대표팀 도전기
아름다운 오합지졸
한국 최초의 여자 크리켓 대표팀
현수막 모집에서 아시안게임까지
인천 아시안게임이 4일 폐막한다. 경기장 곳곳에서 15일간 펼쳐진 ‘땀과 열정의 콘서트’는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경기 결과가 어떻든 참가한 모든 선수들의 도전은 아름답다. 한국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은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크리켓은 비인기 종목 정도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영역’의 스포츠였다. 선수들은 그러나 도전을 선택했다. 1년 전 크리켓 배트를 처음 구경(?)했고, 6개월 전 배트를 들었다. 다시 6개월 뒤 이들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당당히 맞섰다. 피땀을 흘린 훈련의 결과였다. 예선 1, 2차전에서 중국과 홍콩에 잇따라 패하며 경기를 마쳤지만 짧은 기간에 키운 놀라운 실력에 크리켓 관계자들은 놀랐다. “다시 경기장에서 뛰고 싶어요.” <한겨레>와 만난 크리켓팀 여자 선수들이 말했다. 기회는 다시 올 수 있을까? 스포츠 정신이란 무엇일까? 9월29일 인천 연희 크리켓경기장 대기실에서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이 밝게 웃으며 뛰고 있다. 왼쪽부터 안나(27), 송승민(19), 정아람(23), 이진아(21)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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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은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패만 당한 채 경기를 끝냈지만 ‘크리켓의 ㅋ’도 모르던 이들이 6개월 훈련 끝에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를 펼친 것 자체만으로도 격려받을 만하다. 선수들이 9월29일 오후 인천 연희 크리켓경기장에서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감독 나시르 칸, 정아람, 송승민, 안나, 이진아 선수. 개인 일정 탓에 대표팀 13명 모두가 이날 다 모이지는 못했다. 지면 상단의 작은 사진은 인천크리켓협회가 지난해 내건 ‘국가 대표 여자 크리켓팀 지망생’ 모집 펼침막. 인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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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전지훈련 때 연습게임 중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박세미(왼쪽), 전순명 선수(오른쪽). 인천크리켓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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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참여하지 못한 종목
선수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대학 캠퍼스와 경기장에
선수 모집 현수막을 걸다 고교 때 배구선수의 꿈을
키우다 접은 46살 전순명
평범한 회사원이던 안나
체대입학 실패한 송승민
골프선수 출신의 오인영 최고참 전순명에게 다들 “엄마” 한국도 아시아인들이 즐겨 하는 운동을 배워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광저우 대회 때 유일하게 한국이 참여하지 못한 종목이 크리켓이었다. 인도 등 남아시아권에서는 축구보다 훨씬 인기있는 스포츠이지만 한국에서는 크리켓 인구가 거의 없어 참여할 선수를 찾지 못한 탓이었다. 김남기(49·전 인천시 아시안경기대회 지원본부 정책조정관) 인천크리켓협회 전무이사가 여자 크리켓팀 출범의 산파 구실을 맡았다. “제가 놀란 게,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과 귀화자들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해오던 크리켓 경기를 여기서도 하고 있더라고요. 크리켓 운동장도 제대로 없는데 말이죠.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 대학생 일부가 팀을 구성해 매년 리그전도 하고 있어요. 남자 아마추어팀은 13개나 있습니다. 다양한 아시아 문화가 국내에 꽃을 피우려면 크리켓 전용 경기장 하나쯤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45억의 꿈 하나되는 아시아’가 아시안게임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인천시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에 크리켓 변방국인 한국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고 인천시도 예산을 보탰다. 국가대표 크리켓팀을 꾸릴 예산을 확보한 인천시는 파키스탄 출신 귀화자인 나시르 칸(45)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나시르 칸은 20년 전 파키스탄에서 크리켓 선수로 뛰었고 한국에서도 크리켓 확산에 노력해왔다. 예산과 감독을 마련한 인천시는 크리켓팀 선수를 사방팔방 찾아다녔다. 체육대학이 있는 대학의 캠퍼스와 전국체전이 열리는 경기장에 선수 모집 펼침막을 걸었다. 체육대학 교수들에게도 제자 추천을 의뢰했다. 지난해 10월 말이 되자 연습을 할 수 있는 규모로 간신히 지원자들을 모았다. 팀에 합류하겠다고 해서 무조건 국가대표가 되는 건 아니었다. 훈련을 거치고도 출전할 실력이 되지 않으면 최종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덤빈 것이었지만 역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공을 던지는 방법도 생소하고, ‘위킷’이라 불리는 이상한 나무 막대 세개를 지키는 것도 낯설고, 빨랫방망이처럼 생긴 배트로 공을 쳐내는 것까지 모든 게 어려웠다. 크리켓 전용 경기장이 없어 선수들은 야구장과 축구장을 전전했다. 크리켓은 피치라고 불리는 딱딱한 흙바닥 공간(길이 20m, 너비 2.64m의 직사각형 모양)에서 벌어지는 운동이다. 너른 잔디 구장 한가운데에 피치가 펼쳐져 있다.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은 국내에 피치가 갖춰진 운동장이 없어 직접 플라스틱 장판 따위를 피치 대용으로 구해와 운동장에 깔고 연습을 했다. 송도 엘엔지 실내야구장, 인천대 캠퍼스, 문학경기장 등을 돌아다니며 운동장이 비는 시간을 찾아 연습을 이어갔다. “연습할 공간이 없어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가 많았는데 좀 처량했지요. 그래도 즐겁게 했어요. 하고 싶은 운동을 하는 게 중요한 거지 번듯한 운동장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팀의 막내 송승민 선수가 어른스럽게 말했다. 얼굴이 보름달처럼 둥글둥글하고 잘 웃는 송승민 선수였다. 인천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은 다 했지만 부상만큼은 피해가기 어려웠다. 김남기 이사는 선수들의 부상이 심해 과연 출전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6~7월에 네팔에서 전지훈련을 했어요. 여물지 않은 선수들이 강도 높은 훈련을 하다 보니 부상이 속출했어요. 정아람 선수는 투수를 하면서 발을 바닥에 많이 굴렸는데 무릎 인대에 문제가 생겼고, 정혜진 선수는 주요 타자였는데 손가락뼈가 골절됐고요. 전지훈련 끝날 때쯤 되니까 열의 여덟은 다 여기저기 깁스를 했지요. 그래도 포기하는 선수가 한명도 없었어요.” 정아람 선수는 대회 2주를 앞두고 무릎 통증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절대 경기에 나서지 말라”고 했다. 정 선수는 펑펑 울었다. 무릎이 깨져도 좋으니 제발 경기에 나서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결국 출전했다. 팀의 최고참 전순명 선수를 후배들은 ‘엄마’라고 불렀다. 전순명 선수는 ‘인생의 엄마’로서 힘들어하는 팀원들을 다독였다. “애들에게 그랬어요. ‘사람에게는 기회가 자주 오지 않아. 나는 46년 만에 이런 기회를 잡았지만 너희들은 나보다 20년이나 빨리 기회를 잡았으니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 함께 발전하자’고요. 우리 팀 선수들은 크리켓 국가대표팀으로서 연습한 것처럼만 하면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네팔 팀과 10번 중 2번 이긴 값진 경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도운 것처럼 선수들의 부상은 이를 악물면 견딜 수 있는 수준에서 더이상 악화하지 않았다. 선수들은 종일 계속된 훈련 시간이 끝나면 자발적으로 연습을 하고 실력을 끌어올렸다. “(이)진아가 네팔 전지훈련 때만 해도 배팅 실력이 좋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확 늘어 있더라고요. 나중에 물어봤더니 숙소 문 닫아놓고 혼자서 스윙 연습을 계속했더라고요. 다들 밤에도 쉬지 않고 그렇게 연습을 계속했어요.”(전순명 선수) 이진아 선수는 가장 힘든 포지션으로 불리는 ‘위킷 키퍼’(야구의 포수와 비슷한 역할)를 자원해 주전 자리를 꿰찼다. 피나는 연습 끝에 선수들은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갔다. 네팔 전지훈련 때 열차례 정도 현지 팀과 연습경기를 치렀다. 두번을 이겼다. 아시안게임 1승이 목표인 대표팀으로서는 ‘값진 경험’이었다. 네팔은 크리켓 실력이 중하위권으로 분류된다. 최선을 다하면 아시안게임에서 하위팀과 맞붙어 1승 정도를 할 수도 있다고 대표팀은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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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람 선수는 고등학생 때 무릎 부상으로 운동의 꿈을 접었다가 카페 서빙, 영화관 알바, 태권도장 사범 등의 일을 전전하다 지난해 크리켓을 만났다. 대회 직전까지도 병원의 의사는 정 선수에게 경기에 나서지 말라고 권했지만 그는 출전했고 멋진 경기를 펼쳤다. 9월22일 오후 인천 연희 크리켓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한국과 홍콩의 경기에서 정아람 선수가 공을 던지고 있다. 인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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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야구장 전전하며
플라스틱 장판 깔고 연습
인천대 캠퍼스, 문학경기장
비는 시간에 간신히 이용 정아람은 무릎 인대에 문제
정혜진은 손가락뼈 골절
네팔 전지훈련 끝날 때쯤
열의 여덟은 깁스했지만
아무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스스로에게 수여한 ‘마음의 메달’ 열아홉 소녀 송승민 선수가 말했다. “비인기 종목이라고 해서 국가대표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 비인기 종목이라고 해서 덜 연습하는 것도 아니고요. 나라를 대표해 뛰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지요. 게다가 우리는 (국제대회에 처음 참가한) 크리켓의 새 역사를 쓴 주인공들이잖아요.” “경기장에서 박수를 받고 싶었어요. 메달도 좋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격려해주는 관중의 박수요. 스포츠 정신은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몇 등을 하건 간에 자신만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박수를 받았기에 저희는 뿌듯해요.”(안나 선수) “대회 조직위가 주는 메달은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선수 스스로가 자신에게 주는 ‘마음의 메달’이라는 게 있어요. 피땀 흘려 노력한 만큼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뿜어내면 그 메달을 받게 되는 겁니다. 우리 팀은 그 메달을 받은 거예요.”(전순명 선수) “아픈 무릎 때문에 난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 운동을 그만두고 음식점 서빙, 영화관 알바 등의 일만 해왔던 제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어요. 크리켓은 저에게 인생의 희망을 주었어요.”(정아람 선수)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 스타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연아·박태환 선수 역시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때부터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을 해왔고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여자 크리켓팀의 아시안게임 출전에 주목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이들 역시 최선을 다했기에 김연아·박태환 선수처럼 아름다운 웃음을 지을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은 4일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해 또 한번 활짝 웃을 예정이다. 29일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은 중국과 일전을 치르는 남자 대표팀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에 모였다. 남자 선수들이 6점짜리 거포를 연거푸 쏘아대자 여자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와, 대박, 감동” 등의 말을 외치면서 폴짝폴짝 뛰었다. 이날 남자 대표팀은 중국에 88 대 82로 이겼다. 국제대회 참가 사상 첫 승리였다. 여자 선수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 흥분한 안나 선수가 “저도 저렇게 다시 뛰고 싶어요”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여자 크리켓팀은 앞날이 불투명하다. 인천시가 여자 크리켓팀을 더 운영할지 알 수 없고, 이번에 마련된 첫 크리켓 경기장이 아시안게임 폐막 뒤 유소년 축구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나시르 칸 여자 크리켓 대표팀 감독은 “비록 2패를 했지만 여자 크리켓팀의 국제대회 출전 경험은 한국 크리켓 역사의 중요한 자산이다. 부디 이 자산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도전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인천/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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