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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사병들이 그들이 건설한 소왕국에서 젊은 군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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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김종대가 본 윤 일병 사건 재판
윤 일병 사건의 선고 법정에서
군사전문가 김종대는 말한다
다섯 명의 사병들이 그들이 건설한 소왕국에서 젊은 군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를 감독해야 할 하사관은 수수방관했다. 간섭, 통제, 교화, 처벌 등 지배의 규율만 통하는 한국 군대는 외부와 단절된 ‘사병들의 소왕국’들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10월30일 군 법원은 이른바 ‘윤 일병 사건’으로 기소된 이들에게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윤 일병 재판을 처음부터 지켜보면서 말끔히 씻기지 않은 사건 은폐 의혹, 폭력을 조장하는 군대문화 등을 뒤돌아봤다.
▶ 재판은 휴정되기 일쑤였습니다. 윤 일병의 영정이 나뒹굴고 헌병의 모자가 벗겨져 날아갔습니다. ‘나쁜 놈’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군대, 윤 일병은 그 대열에 들지 못해 세상을 떴습니다. 제14, 15, 16대 국회에서 국방위 소속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지낸 군사전문가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이 윤 일병 사건 재판을 지켜봤습니다.
‘지배하는 군대’가 악마를 양성한다
10월30일. 긴장이 감도는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정의 선고공판은 개정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긴 2시34분에야 시작되었다. 법정의 자리 배치도 평소와 달랐다. 헌병 10여명이 방청객을 제지할 요량으로 방청객을 향해 줄지어 앉아 있고, 바깥 주차장에는 경찰 상당수가 대기하고 있었다. 재판장의 개정 선언에 이어 주심 판사가 양형기준을 낭독하였다.
“폭행 정도가 가히 충격적일 만큼 잔혹했다…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피해자가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가혹한 상태로 몰아갔다… (범행) 이후에도 자신들의 범행을 숨기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피고인들의 행적들은 피해자의 죽음 이후 피해자의 죽음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행동으로 보기 어렵고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군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던 건장한 아들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피해자의 유족들로부터 전혀 용서받지 못하고 유족들이 피고인들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이렇게 양형의 이유가 열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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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윤 일병의 납골이 안치돼 있다. 윤 일병 죽음의 진상은 아직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김태형 기자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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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본질이 무엇인가다
여기서부터 말이 꼬였다
애매하고 난해한 말뿐이었다
방청객들은 순간 혼란에 빠졌다 무언가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살인죄 아닌 상해치사죄 선고
유족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나
유족을 말리던 헌병장교의
눈에도 순간 이슬이 맺혔다 아직도 은폐는 계속된다 우리는 납득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을 맞이하면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지나간 과거를 수없이 되새긴다. 위로받을 수 있는 희망의 한 조각을 건지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과거를 알고 싶어한다. 윤 일병 사망사건에서 우리가 알고자 하는 바는 “이 죽음의 진정한 배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군이 사건 직후부터 말을 하기를 꺼리는 은폐된 진실은 무엇이며, 왜 이 거대한 조직은 아직도 그 은폐를 이어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군은 28사단 한 포대의 의무대에 있던 여섯명의 피고인들이 살인의 의도가 없이, 어쩌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나약한 한 동료를 잔혹하게 때려서 숨지게 했다는 사실 외에는 특별히 더 말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마저도 은폐하려고 음식을 먹다가 생긴 질식사라고 주도면밀하게 짜맞춰놓고 유족에게는 수사자료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목격자인 김 일병과의 접촉도 차단했다. 그러다가 7월 말 군인권센터가 잔혹한 폭행 사실을 폭로하고 나서야 마지못해서 28사단에서 3군사령부로 관할 법원을 이관하고 공소장을 살인죄로 변경했다. 그러나 3군사령부에서 열린 여덟 차례의 공판에서도 검찰은 28사단에서의 재판과 다른 법률적 판단만 했을 뿐 적극적인 사실 규명을 하지 못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국방부는 윤 일병이 숨진 4월7일 오후에 윤 일병 사망 원인을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뇌손상을 일으킨 것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이미 발표한 상황이었다. 시신에 대한 부검도 하기 전에 사인을 먼저 발표하는 이상한 행태였다. 여기서 아직도 풀지 못한 의혹이 있다. 질식사로 사건이 발표된 뒤 윤 일병을 부검한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의 계약직 법의관인 윤아무개 과장이 어떤 근거로 ‘질식사’라고 추정하는 감정서를 5월12일이 되어서야 작성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조사본부 쪽은 “떡 먹다가 기도에 걸렸다는 말을 윤 일병이 안치된 병원에서 들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사망 당일로부터 윤 일병이 거쳐 간 3개 병원 중 어떤 기록물에도 음식물에 대한 기록이 없고 조사본부에 그렇게 말한 사람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윤 일병이 쓰러졌을 때 입안에서 음식물을 꺼냈다는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이상하게 의무대를 관할하는 포대장의 진술에 이 이야기가 처음 나온 사실을 주목하며 9월1일 그 경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초기 수사에서 바로 이런 방향으로 대부분의 증거가 맞춰지고 일부 부검자료 등이 조작된 의혹마저 있다고 보도했다. 부검의는 시신에 골절, 피하출혈과 같은 숱한 상처가 있어 외관상 폭행의 흔적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어째서 이를 간과하고 질식사로 몰고 갔을까? 이 소견서와 “음식을 먹다가 질식했다고 들었다”는 포대장 진술 때문에 헌병 수사는 처음부터 갈피를 잡지 못했으며, 군검찰 역시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정하려는 의지 없이 질식사로 사건을 처리하려 했다. 아마도 7월 말 군인권센터가 실상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8월4일 28사단 법정에서는 상해치사죄로 징역형을 선고했을 것이다. 결심 공판을 닷새 앞두고 이루어진 폭로는 사건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다. 여기에는 “국방부로부터 28사단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조작·은폐의 배후가 존재할 것”이라는 의혹을 갖게 만들지만 이번 재판 과정에서 이 점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지나갔다. 이 역시 검찰이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규명하려는 의지가 박약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지금 유족과 시민단체가 가장 반발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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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낮 경기도 용인 3군사령부 군사법정에서 열린 윤 일병 사건 선고공판이 끝난 뒤 윤 일병의 어머니가 아들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고 있다. 오른쪽은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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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 김태권 촬영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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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은폐·축소했던 세력에게
새로운 책임 물어야 해서인가
그것이 바로 윤 일병 죽음의
진정한 배후일지도 모른다 한국군의 ‘지배하는 군대’ 문화
구성원을 불완전 인격체로 보고
간섭·통제·교화·처벌을 위한
개인 통제장치들 범람하고
권위 복종의 의무만 부과돼 무시당하지 않고 생존하는 방법 4월7일에는 의무대원들에 의한 조직적인 사건 조작·은폐가 자행되었다. 윤 일병의 노트와 찢어진 러닝셔츠, 유 하사가 윤 일병에게 내리쳐 부서진 스탠드가 분리수거되었다. 특이한 것은 약 50장에 이르는 중간고사 문제지가 소각되었다는 점이다. 중간고사란 이 병장의 음식 취향과 여자친구, 좋아하는 축구팀, 선임 연명부, 의약품 명칭이 적힌 것으로 이 병장이 전능한 통치자로 후임을 통치하는 데 매우 요긴한 수단이다. 재판에서 이 내용이 이 상병에 의해 폭로되는 순간 이 병장은 좌절한 듯 고개를 떨궜다. 이제까지 후임을 폭행한 자신을 ‘나쁜 놈’(bad guy)이라고 해도 참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 질서는 “나쁜 놈이 되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이 병장에게는 자신을 방어하는 핑계, 즉 공적인 논리였다.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세계다”라면서 그의 내면은 여전히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쁜 놈이 아닌 ‘더러운 놈’(dirty guy)이 되면 이건 무시당해도 무방한 일종의 ‘지질이’가 된다. 그렇게 더러운 놈이 되면 이 질서의 추악성과 허구성이 드러나게 되며 여기에는 어떤 자기방어의 논리가 없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여기에서 피해자인 윤 일병은 의무대 대원들에게 세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는 그들의 감정노예다. 지배자들이 괴롭히면 고통스러워함으로써 그들의 전능함을 확인시켜 주어야 했다. 그런데 사소한 명령이라도 위반하거나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해주지 않고 약간의 불쾌감이라도 준다면 그들은 걷잡을 수 없이 분노했다. 이 과정에서 때리는 건 일종의 놀이로 전환되었다. 지 상병이 윤 일병의 부은 다리를 웃으면서 “×나 신기하다. 무릎이 없어졌다”며 20여회 찌르는 가혹행위를 한 것은 유희라고 할 수 있다. 이 증언이 나올 때 유족의 분노는 또 폭발했다. 둘째는 지배자의 ‘확장된 육신’이다. 이 병장은 하 병장을 자신의 좌뇌, 지 상병을 자신의 우뇌, 이 상병을 자신의 칼자루라고 했다. 통치 질서라는 것은 이 왕국이 통치자의 확장된 육신이라는 의미인 것이고, 이 왕국의 신민들은 그걸 믿고 복종해야 한다. 셋째는 그들의 노동력이다. 끝없는 잡역과 그들의 사적인 심부름을 수행해야 하는 후임의 처지다. 이 의무대에서는 누구나 이 병장의 권위를 의심하지 않았으며, 의무지원관(하사), 분대장(병장)까지 운전병인 이 병장에게 복종하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절차가 있었다. 먼저 ‘군대는 원래 이런 곳’이라는 정보가 제대로 입력되어야 한다. 의무지원관인 유 하사는 “군대는 구타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인터넷 글을 휴대폰으로 의무대원에게 보여주면서 이 병장의 가혹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이들에게 군대는 때리는 곳이고, 원래 그런 곳이었다. 그다음으로 때리기를 실제로 실행해보는 ‘강요된 학습과정’이 따라온다. 병사들은 이 병장을 두려워하며 윤 일병에 대한 폭행에 전원 가담하였다. 이들은 예전에도 폭력을 감수하는 체계적인 질서화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누군가로부터 폭행을 당하면 그것은 언젠가 자신이 누군가를 때릴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과정으로 학습되기 시작했다. 셋째는 폭력의 강화 과정이다. 폭행이 구성원 전체에 의해 합의되고 나면 조직의 가장 힘없는 자에게 그 폭력이 몽땅 집중되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책임이 사람 수만큼으로 등분되는 순간 죄책감은 사라지게 되며 더 이상 도덕적 명령이나 규범으로부터 구애되지 않고 자유로워진다. 이때 조직은 그러한 구타와 폭행을 감수함으로써 스스로 강해진다고 믿는다. 넷째는 폭발 과정이다. 이런 통치 질서가 완벽하다고 믿는 순간 후임의 사소한 말실수는 이 전체 질서에 대한 배신이자 신성모독이다. 이것은 가장 엄중한 처벌을 불러온다. 그런데 이들 신상을 보면 하나같이 사회와 가정에서는 잘 교육받은 정상적인 청년들로서 범죄에 가담할 사람들이라고 선뜻 인정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들의 생활기록부를 보면 한결같이 “군대 생활에 잘 적응할 것으로 사료된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하며 리더십이 뛰어나다”, “자대 적응에 별문제가 없다”는 기록이 태반이다. 이들은 원래부터 짐승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었다. 그러나 한번 잘못 조성된 의무대 질서는 그들을 끔찍한 상태로 내밀었다.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려면 질서에 복종해야 하고 누군가를 가혹하게 폭행해야 내가 살아남는다. 이 과정에서 사리를 판단할 수 있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맙소사. 이들은 어떤 양심의 소리, 도덕적 명령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을 이미 배워버렸다. 그러므로 인간성을 철저히 파괴하는 데 놀랄 정도로 성공한 이 통치 질서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작동되었다. 간부들로부터 묵인되거나 방치된 일종의 전체주의 체제였다. 그것도 매우 성과와 효율이 뛰어난 우수한 조직이었다. 이 병장은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 2학년 때 휴학을 하고 군대에 왔다. 동생이 군대에서 제대할 때를 기다려 자신이 군대 간 것은 부모님 때문이었다. 나이를 먹고 뒤늦게 군대를 온 후임 시절에 선임의 구타 사실을 상급기관의 설문조사에서 밝혔다가 “고자질한 놈”으로 낙인찍혀 그 부대에서 견디지 못하고 이 의무대로 전출되어 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는 후임 시절에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선임을 협박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면 대부분 자신보다 어린 동료들을 장악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어떻게든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원래 분노가 잘 조절되지 않는 그는 원소속인 수송대에 거의 가지 않고 의무대에 눌러앉아 버렸다. 이것은 의무대 전체에 매우 심각한 재앙이었다. 지 상병은 어릴 때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를 보며 살았다. 이야기를 듣기로는 어머니가 아들 돌을 챙기지 못해 이모들이 대신 차려주었다고도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비만으로 놀림감이 되었고, 이를 악물고 살을 빼 대학에 다니던 중 군대에 왔다. 군 생활 도중에 어머니는 단 한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군대에 와서 누군가가 가혹행위를 당한 걸 외부에 발설하고 제보했다가 정작 그 자신이 영창에 가는 걸 보았다. 그런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폭력을 학습하게 했다. 폭행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오직 폭력을 망설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게 생존 방식이라고 믿을 뿐이었다. 지 상병에게는 이 병장은 모든 두려움의 원천이자 제왕이었다. 윤 일병이 사망한 다음날인 4월7일 중대 지휘통제실의 김아무개 일병을 만난 지 상병은 윤 일병이 폭행으로 숨진 사실을 털어놓으며 “내가 이걸 발설한 걸 이 병장이 알면 나 맞아죽는다”고 했다. 지 상병은 윤 일병이 구급차에 실려 간 직후부터 너무 무섭고 당황스러웠다고 진술한다. 계속 유 하사에게 전화를 하여 “어떡하면 좋으냐”고 물어보았지만 유 하사는 “기다리라”고만 했다. 그런데 이 병장이 유 하사 휴대폰으로 지 상병에게 전화하여 “윤 일병은 음식 먹다가 질식으로 죽은 거다”라고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는 입실 환자였던 김 일병이었다. 이상하게도 윤 일병을 때릴 때마다 망을 보던 이 의무대 병사들은 정작 입원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유일한 외부인인 김 일병을 의식하지 않았다. 지 상병은 이 병장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김 일병에게 “김 일병은 자고 있었던 거예요”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본 것이 없는 것으로 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의무대에 돌아온 이 병장은 지 상병을 비롯한 의무대원을 불러들여 입을 맞췄다. 이 당시에도 이 병장과 지 상병은 상황이 심각해진 걸 의식하고 주도면밀하게 증거를 인멸해 나갔지만 정작 자신들이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미 마비된 도덕의식은 자신들에게 가해질 엄청난 분노와 형벌까지도 의식하지 못하게 했다. 막상 재판정에서는 주범인 이 병장과 하 병장, 지 상병은 거의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거나 울었다. 하 병장은 분대장 교육을 받은 의무대의 형식적 선임에 불과했다. 그는 항상 이 병장에게 장악되었고 무시를 당했다. 이 병장은 “우리 의무대의 분대장감은 이 상병”이라며 이 상병을 ‘군기 담당’으로 임명해버렸다. 공적인 계급과 역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오직 이 병장이 정한 헌법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 병장이 하 병장에게는 그에 알맞은 대우를 해줌으로써 이 왕국이 전복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마련되었다. 이 병장과 하 병장, 그리고 유 하사는 같이 휴가를 나가 피시방에도 들르고 노래방도 갔다가 성매매도 함께 했다. 이들은 형과 아우로 서로를 불렀다. 사람을 ‘지배하는’ 한국 군대 이런 모든 지배질서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한국 군대의 문화였다. 선진국 군대가 ‘조작하는(manipulate) 군대’라면 한국군은 ‘지배하는(rule) 군대’였다. 지배하는 군대는 구성원을 불완전한 인격체로 간주하고 간섭, 통제, 교화, 처벌, 교정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도록 허용하지 않아서 구성원이 자기 인생을 살 수 없고, 어떤 실수나 예외를 인정하지 않은 채 조직이라는 권위에 복종해야 할 의무만이 부과된다. 이런 조직에서는 개인에 대한 통제장치들이 범람하게 되는데, 먹고 자고 입는 것, 심지어 생각하는 것까지 공적·사적 통제의 대상이 되며, 이를 강화하기 위해 수많은 규율이 강조된다. 예컨대 복장, 태도, 예절과 같은 외형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규율이 범람하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수양록, 반성문, 암기사항 점검을 통해 내적 질서 유지 상태도 점검된다. 또한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각종 통신수단도 제한되고 부대의 울타리가 높게 형성되며 과도하게 보안이 강조된다. 특히 병사 개인에게는 간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임무를 인정하지 않는다. ‘조작하는 군대’는 구성원을 하나의 인격체로 가정하고 구성원에 대한 충성심과 헌신성을 요구하며 적절한 보상과 처벌로 협력을 유도한다. 구성원은 비록 집단에 복종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이며, 공동체에 소속된 것도 바로 자신의 선택이다. 이런 조작적 집단은 개인의 인격을 통제하는 규율과 통제 장치를 남발하지 않으며 단지 집단의 정체성, 단체성, 책임성,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율을 유지할 뿐이다. 새뮤얼 헌팅턴에 의하면 근대의 파시스트 군대는 19세기의 유산을 계승한 ‘지배하는 군대’이고 현대 민주사회에 부합하는 군대는 전문성, 직업성에 기초한 ‘조작하는 군대’다. 지배하는 군대는 개인에 대해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인간관을 전제로 한다. 국가와 군대라는 신성한 집단에 비해 개인은 불완전하고 나약하며 취약한 존재이다. 그러한 개인은 국가와 조직에 소속됨으로써 비로소 숭고한 가치를 달성할 수 있다. 국가의 표상으로서 군대는 신성하고 국민에 대한 우월한 가치의 전파자이자 통제 권력이다. 여기서 군대는 단지 전투를 하는 조직으로서의 본연의 의미를 초월하여 불완전한 개인을 국가가 요구하는 인간으로 개조하고 변형하는 수준까지 통제력을 발휘하는 전능한 권위체가 된다. 본래 군 조직의 특성은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와 함께 지휘관을 중심으로 조직적·체계적 전투행동을 통해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대는 사회집단에 비해 더 많은 통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군대의 통제 방식이 전인격적인 범위로 확대되어 개인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전면적인 통제로 개인의 자존감까지 위축되면 지배하는 군대가 된다. 이것이 ‘군대는 원래 그런 곳’, ‘구타가 있을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인식으로 자연스럽게 확대될 때 28사단 의무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로 인간을 양분하는 질서를 창조해 냈다. 이런 의무대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과 동일한 세계이다. 이 소설에서 섬에 불시착한 소년들은 그들만의 전체주의적 질서를 만든다. 필자의 페이스북 친구인 ‘원시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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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사건 선고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30일 낮 용인 3군사령부 군사법정을 찾은 김종대 군사평론가. 강재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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