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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교수.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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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정희진이 만난 ‘저술가 강준만’
25년간 책 200여권 낸 저술가의 비밀은
수만권 꽂힌 서가에서 정희진과 인터뷰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가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에 있는 자신의 저술공간이자 도서관에 섰다. 50여평 되는 공간에 어림잡아도 200개가 넘는 책장과 2만권 이상의 책들이 빽빽했다. 강 교수가 집필한 200여권의 책 전부가 온전히 보관된 곳이기도 하다. 강 교수는 한때 한달에 책값으로만 250만원을 썼고, 중앙일간지와 지역언론을 포함해 신문 20여개와 언론사 노보마저 챙겨 보며 자료를 모았다. 지난 1일 강 교수가 <한겨레> 취재진을 전북대학교 연구실에 이어 저술공간으로 안내했다. 25년간의 왕성한 집필의 비밀이자 원천인 이곳을 언론에 공개하기는 처음이다. 인터뷰어로 나선 정희진 여성학 강사가 ‘저술가 강준만’을 탐구했다.
“내 글쓰기의 원천은 고립과 중독”
▶ <정희진처럼 읽기>의 저자 정희진은 강준만 교수의 저작 <싸가지 없는 진보>를 다룬 ‘어떤 메모’(한겨레 토요판 11월15일치)에서 “찬반을 떠나 한국 사회를 파악하고 성찰하는 작업에서 그에게 빚지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될까”라고 적었다. 한국 사회의 콤플렉스에 천착한 200여권의 책은 이미 ‘강준만학(學)’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강준만처럼 쓰기’를 탐구했다. 강 교수 역시 평소 ‘정희진의 어떤 메모’의 애독자라고 했다.
강준만은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하다. <한겨레>는 작년부터 ‘강준만의 글쓰기’를 주제로 여러 차례 인터뷰를 제안했으나 그는 “특이체질이라 인터뷰는 정말 피하고 싶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모두 거절했다. ‘4수’ 끝에 인터뷰가 성사됐다.
인터뷰어 제안을 받은 나는 바로 동의했다. 그때부터 20여일 동안 ‘강준만 월드’에서 살고 있다. 일단 그가 쓴 책을 다 읽는 것이 기본인데 쉽지 않았다. 독서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지친 채, 다 읽지 못하고 그를 만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읽고 있는 ‘신세’다.
첫눈이 내린 12월1일. 네 시간에 걸쳐 그의 연구실에서 시작된 대화는 이후 세 시간가량 개인 집필실(자료실), 저녁식사 장소, 기차역까지 이어졌다. 그가 근무하는 사회과학대 건물은 증개축을 해 깨끗하고 편리했지만 연구실은 소박했다. 격자무늬 홑겹 창문에 환풍기는 대화를 방해할 정도로 소음이 컸다. 1989년 처음 부임할 때 배정받은 연구실을 25년간 계속 사용하고 있단다.
짧은 질문을 던지고 경청에만 충실한 대화가 좋은 인터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 역시 전형적인 인터뷰 기사는 아니다. 대화는 흥미진진했지만 우문현답에 토론과 인터뷰를 넘나들다 보니 녹취록 분량은 엄청났지만 막상 글을 쓰자니 막막했다.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플레이가 시작됐다.
한번 쓰면 다시 안 봐…장르 바꾸기는 탈출구
정희진 최근 <인물과 사상> 200호 인터뷰는 ‘별로였습니다’. 동의하신다면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준만 당연히 제 문제죠. 제 콘텐츠가 그것밖에 없는 거죠.
정 겸손하게 말씀하지 마시고….
강 그게 아니라 질문이 어떻든 간에 대답하는 사람이 연계 고리 찾아서 얼마든지 자기 메시지를 이야기할 수 있죠.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정 자기 검열, 사회적 검열, 표현력 등의 문제로 자기 생각을 온전히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선생님의 경우 몇 %까지 재현 가능하십니까?
강 사전 질문지에서 표현력이란 단어 보고 가슴이 아팠죠. 저는 표현력이 안 되잖아요. 저는 섬세하고 심오하게 못 들어가잖아요. 정치적인 문제는 제가 반체제 인사도 아니고. 리얼리스트니까 운 좋게 자유롭고. 요즘 와서 뜻밖에도 자기 효능감 문제가 걸려요. 예전보다는 글쓰기에 대한 효능감이 떨어지니까. 그런데 좋은 탈출구가 있더라구요. 장르를 바꾸면 돼. 지금까지와 다르게 이야기하면 되죠. 다른 방식.
정 아, 아니요. 제 질문은, 써 놓고도 논란이 두려워서 주저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선생님은 그런 경험이 없으신지,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원래 생각이 만족스럽게 표현됐다고 생각하세요?
강 처음부터 만족했다기보단 만족하는 쪽으로 저를 몰아간 것 같아요. 예전에 깜짝깜짝 놀랐던 필자가 있는데. 리영희 선생님은 한겨레에 글 보내면 담당 기자를 그렇게 괴롭혔다며. 자기 문장 하나하나에…. 그런데 저는 글 한번 쓰고 다시 안 봐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구요. 이렇게 해서 달라지는 게 얼마나 될까. 쓰고 나서 집착하느니 다른 일을 하자.
정 그럼 선생님은 자신의 글이나 인생에 대한 불만이 별로 없으신 거예요?
강 없죠. 처음부터 없었다기보다는 저를 그렇게 만들어 갔죠.
정 제 경우에는 문제제기는 꼭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 제가 지나치게 회자될까봐 두려워서 못 내는 글이 있거든요. 소통이 안 될까봐 좌절스럽고…. 그런 걸 여쭤본 거예요.
강 저는 그런 주제로는 아예, 논란이 되겠다 싶으면 관심을 안 가지죠.
정 예? 그럼 이제까지 논란이 된 게 그 정도면? 안 쓰신 걸, 다 쓰시면?
강 정 선생도 완전히 무명을 원하는 것은 아니죠? 어느 정도까지만 딱 했으면 좋겠다는 거 아니에요?
정 완전히 무명이면 생계를 못 꾸리죠.
강 제가 공감이 돼서 하는 이야기예요. 저는 지금 수준이 딱 좋아요.
정 너무 유명하셔서 힘들지 않으세요?
강 아니죠. 저는 제가 좀 관리해왔다고 생각하는데요? 더 회자될 수 있었는데 그건 싫은 거예요. 예를 들어서, 제가 여기 전주 시내 나가잖아요? 어쩌다 하루에 한두 명 정도 알아보니까 참 편하죠.
정 방송에 안 나오시니까.
강 그러니까 딱 좋아요. 딱. 그런데 회자되는 것도요. 씁쓸하다고 할까. 이미 정해진 상투성에 의해서 뻔한 길로 가버리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사진기자를 보고 웃으며) 사진을 어떻게 찍으셨나 모르겠지만 나를 찍어 가는 전형적인 얼굴이 있어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사진에 드러나는 꼭 그런 얼굴이 있다니까요!!! 회자돼도 빤한 코스가 있다니까요.
정 흥분하시거나 논쟁하는 그런 얼굴요?
강 예!
정 맞아요.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 것은 폭력이죠.
“쓴 책 백권 넘어가면서부턴카운트 안 해요, 제목 쓰라 하면
몇 개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의도적으로 피하는 쪽이에요
누가 물어볼 때마다 민망해요” “나에게 고립은 선택이고 축복
서울에 있거나 학문 공동체에
있었으면 할 말 다 못했을 거예요
글쓰기도 권태에 빠지냐고요?
중독자가 지치는 거 봤습니까?” 기억 남는 책? 영향 준 지식인? 없음! 강 아, 그리고 분석 좀 해주세요. 저는 뭐가 힘드냐면, 가장 기억에 남는 책, 가장 당신에게 영향을 준 지식인이 누구냐고 많이들 물어 보는데, 딱 하나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그게 너무 어려워요. 정 없으시죠? 강 없어요. 정 선생님은 없으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질문지에 안 넣었어요. 내게 강준만은 읽을 만한 읽을거리를 계속 생산해내는 작가다. 책을 살 때 갈등하지 않는 저자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책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일단 정보량이 많아 메모하느라 읽기가 자주 끊기는데다 문제의식 위주의 독특한 구어체 문장 역시 익숙하지 않다. 한마디로 ‘머리 아프다’. 하지만 이 점이 내겐 구매 요소다. 2014년 12월 현재,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한 자료 중 ‘저자 강준만’을 검색하면 국회도서관은 477건(일반도서 180, 학술지 288), 국립중앙도서관은 251건(단행본 198권), 네이버 도서 검색에서 295건이 나온다. 강준민, 강준막이라는 저자도 있다. 국회도서관의 경우 내가 동명이인 체크를 했으나 모두 강준만(康俊晩)이었다. 공저도 있지만 다른 저자에 비해 매우 드문 편이고 <시사인물사전> 같은 시리즈는 7권이 1건으로 처리되는 경우 등을 고려하면, 350쪽 이상의 단행본만 200여권 정도로 추정된다. 다산(多産)으로 유명한 정약용은 경집(經集) 232권과 문집 267권, 모두 499권의 저서를 남겼지만 유배 중이라 가능했고 대부분 제자들과의 공동 작업이었다. 강준만의 저술을 평가할 때 내용과 더불어 그의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동학(同學)이나 커뮤니티의 산물이 아닌 독자 작업인데다 신문방송학계에 종사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수업과 지역사회에 헌신적인 공무원(국립대 교수)”이란다. 정 1989년 <정보제국주의: 제3세계의 도전과 미국의 대응>을 시작으로 200여권 쓰신 것 같습니다. 학회 논문이나 매체 기고를 제외하고요. 한 달에 거의 한 권입니다. 쓰신 책 제목을 모두 기억하십니까? 강 못하죠. 백 권 정도 넘어가면서부터는 카운트도 안 하고. 저더러 제목을 쓰라고 하면 몇 개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의도적으로 피하는 쪽이에요. 정 피하신다? 강 예. (다작을 알려지게 한) 인터넷이 원망스럽죠. 인터넷이 아니었으면 누가 알겠어요? 나도 모르는데. 누가 물어볼 때마다 민망해요. 정 그래도 목록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강 그걸 뭐하려 리스팅 하겠어요. 난 숨기고 싶은데. 많이 썼다는 것을. 정 선생님 작업을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강 연구 안 했으면 싶죠. 왜 연구를 해요. 독자는 유저(사용자)이고 책은 상품일 뿐입니다. 저는 지식을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정 선생님 책을 다 읽은 분이 있습니까? 강 그걸 왜 다 읽어요? 정 다작에 내용 또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평이 많은데,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아시는 것을 썼다기보다 문제제기 형식의 책이 압도적입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시간이 걸리는 중노동인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하루키처럼 마라톤을 하십니까? 저술가로서 선생님만의 자기 관리, 시간 관리 방법이 있으신가요? 강 (망설임 없이) 고립과 중독이죠! 서울로 상징되는 중심으로부터 고립. 그리고 읽고 쓰기 중독증. 담론 공동체는 저절로 굴러가는 자율적인 자기 강화의 힘이 있잖아요. 그거 굴러가게 해서 담론 헤게모니를 갖는데 바쁠 수밖에 없으니, 현실과의 적합성과 구체적인 것까지 미처 신경이 안 간다고 보고. 저는 그게 아니니까요.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의 함정이죠. 학문적 열정은 학문 공동체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학문적 열정이라는 것도 가만히 보면 기존 공동체와 불화를 일으키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것에 대해 냉소적이고 학부 전공 달라서 스승도 없고 완전히 솔로죠. 혼자죠. 게다가 지식 공동체의 한국적 특성이 있어요. 한국 사회 지식인들 중에서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거의 없어요. 지식 생산은 고립과 관련이 있어요. 학문이 발전하려면 서울에 있는 대학들을 전국의 군 단위로 뿔뿔이 흩어버리면 고립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할 텐데. 서울은 너무 좁죠. 기득권이라고 하면 권력자나 (그 반대로) 금욕자만 생각하지만 사실 작은 영역에서도 자기 정신과 노력을 투자한 기득권이 있잖아요. 기득권 개념을 넓게 쓰면, 모두 기득권 싸움을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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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저녁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자신의 집필실에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대학 연구실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학교 밖 이 저술 공간은 강 교수의 자택에서 가까운 편이다. 그는 수업이 없는 시간이나, 학교 일을 마친 뒤에 틈틈이 이곳에 들러 집필에 몰두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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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는 읽은 책 뒤편에 열쇳말(키워드)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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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주로 나오는 내 표정이 있어”라고 강준만 교수는 말했다.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논쟁을 즐기는, 때로는 강퍅해 보이는 사진들이 주로 언론에 실리고, 그것이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난 1일 전북대 사회과학대학 연구실에서 강 교수와 대화를 나눈 서너시간 동안 그의 표정은 다양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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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운의 산물이라고 봐요
이렇게 생각하면 상처도 덜하고
크게 아웅다웅할 것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기회주의자’” 예전엔 매월 책값 250여만원
2만권 책으로 빽빽한 집필실
이 책들을 과연 다 읽었을까
읽은 책은 맨 뒤에 메모 적어
무작위로 꺼낸 열 권 모두 읽은 책 그가 쓰지 않은 “왜 한국인은 회식 좋아할까” 50여평 크기의 집필실에는 2만권 정도의 책과 예전 자료가 빽빽이 정리되어 있다. 자료 사이로 한 사람만 겨우 통행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예전에는 매월 책값 지출이 250만원, 신문 20종에 언론사 노보(勞報)를 모두 구독했다고 한다. 지금은 인터넷 덕분에 자료를 많이 버렸다고 한다. 나는 ‘촌스러운’ 질문을 참지 못했다. “이 책들을 다 읽으셨어요?” 알고 보니 읽은 책은 맨 뒷면에 메모가 되어 있었다(사진). 무작위로 열권 정도 꺼내서 구경했는데 모두 읽은 책이었다. 개가식에다 내 관심사와 관련된(?) 분야만 모아놓은 자료실은 처음이어서 나는 넋이 나갔다. 원래 여러 사람과의 식사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책을 살펴볼 욕심으로 식사 자리에 빠지고 싶었으나 차마 말 못하고 따라 나왔다. 이것은 그가 <사람들은 왜 분노를 잃었을까>(2000), <한국논쟁100>(2005), <한국인 코드>(2006)에도 쓰지 않은 부분이다. “왜 한국 사람들은 회식을 좋아할까?” 식사 자리에서 그는 실명 비판부터 안티조선 운동까지 자신이 제기했던 의제들의 ‘부작용’과 잘못에 대해 쏟아냈다. “임지현 선생 같은 분들에게 정말 미안하죠, 안티조선은 기본적으로 네거티브였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어요, 제가 생각한 전라도의 이익과 전라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라도의 이익이 그렇게 다른 줄 몰랐습니다, 저에 대한 악플은 자업자득입니다…. 억울할 것은 없어요, 흔쾌히 받아들이죠. 예전에 제가 실명 비판하고 독설했잖아요. 이젠 당하잖아요.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빚 갚는 것 같아요.” 그는 돌이켜 생각(反省)할 일들이 많은 것 같았다. 동석한 강재훈 기자가 그의 반성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선생님이 그동안 잘못하신 것은, 말씀하신 그런 것이 아니라 선생님 같은 분을 10명 이상 못 만들어내신 것이에요. 그게 진짜 반성하실 일이에요.” 강준만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강준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윤형중 기자가 기차역에서 말했다. “결핍이 없네요, 완전 행복한 분이에요.” 그는 얄미울 정도로 낙관적이고 자기 충족적인 사람이었다. 넘치는 호기심과 에너지, 그는 해피 메이커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아파트 주민들도 “교수님을 보면 늘 웃으셔서 기분이 좋아요”라고 인사한다며 흐뭇해했다. 이런 그를 독특한 저술가로 만든 것은 ‘검색어 1위 조현아’가 상징하는 한국 사회 전반의 어처구니없음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개인 강준만’을 더 알고 싶다면 <글쓰기의 즐거움>(2006)을 권한다. ‘지금, 여기’가 고민이라면, 이전 작품에 비해 문체는 아쉽지만 ‘적이 사라진 이후의 민주주의’를 분석한 <강남 좌파-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내가 저자라면 이 책의 제목과 부제를 바꾸겠다), 문화와 감정이 정치의 ‘최종 심급’임을 보여주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추천한다. 전주/글 정희진(여성학 강사·<정희진처럼 읽기> 저자) 정리·섭외 윤형중 기자 기획·진행 고경태 토요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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