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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4일 서울서부지법 건물 옆에서 김경묵 감독(오른쪽)이 자신의 병역법 위반 혐의 재판에 들어가기 전 지인들과 이야기하며 긴장을 풀고 있다. 선배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길수씨(2012~13년 수감·왼쪽)와 이승규씨(2005~06년 수감)가 수형 생활에 대해 알려주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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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국내 병역거부 논쟁
“일선 법원 법관들이 겪고 있는 고뇌와 고통의 무게를 덜어줘야 합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의미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 한건 한건에 담긴 법관의 양심의 무게는, 낡은 눈금으로 저울질할 수 없는 천금 같은 것입니다.”
지난해 12월20일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와 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공동학술대회에 기조발제로 나온 전수안 전 대법관은 눈물을 비치며 기조발제를 마쳤다. 병역법 제88조 1항은 대한민국 남성에게 두가지 선택지만을 부여한다. 군대에 가거나 감옥에 가거나.
2011년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합헌 7, 위헌 2) 이후, 2012년 창원지법을 시작으로 지난 1월 전주지법 정읍지원(형사1단독 강동극 판사)까지 7번의 위헌 제청이 이뤄졌다. 한 사안에 대해 이렇게 연속적인 위헌 제청은 매우 이례적이다. 본인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대법원 판결을 앞둔 백종건 변호사는 5일 “국회, 정부의 입법적 해결이 어려운 분위기이다 보니 법관들도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경묵 감독도 이날 평화운동단체 ‘전쟁 없는 세상’의 여옥 활동가와 함께 행사를 지켜봤다. 여옥씨는 “학술대회에 임한 법관들의 분위기가 매우 심각했고 해결해야겠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행사장을 나오면서 ‘김경묵 무죄 받는 거 아니냐’고 농담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논쟁은 2001년 주간지 <한겨레21>이 여호와의 증인 문제를 처음 거론하면서 촉발됐다. 여호와의 증인은 한해 수백명씩 교도소로 향하고 있었지만, 정치와 거리를 두는 교리상 직접 발언은 삼갔다. 호명의 효과는 강력했다. 다수의 소리 없는 몸짓은 ‘양심적 병역거부’라고 불림으로써 대번에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내면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행위다. ‘그럼, 군대 가는 것은 비양심적이냐’라는 이분법적 질문을 부를 수 있어서, 김두식 경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같은 이들은 양심적 병역거부 대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부르자고 주장한다. 도덕적 가치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집총과 입영은 전쟁을 반대하는 이에게는 자기 양심에 맞서는 문제일 수 있고, 전쟁을 불가피하게 보는 이에게는 양심과 무관한 문제일 수도 있다.
“헌재의 병역법 합헌 결정에도법원의 위헌법률심판제청 계속
그 한건 한건에 담긴 양심의 무게
낡은 눈금으로 저울질할 수 있나” 여호와의 증인 한해 수백명 감옥행
비종교적 이유론 오태양씨가 처음
김경묵 감독은 오씨 이후 65번째
대다수 민주국가는 대체복무 인정 <한겨레21> 보도 직후인 2001년 12월 평화주의자 오태양씨가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부터는 비종교적인 이유의 양심적 병역거부가 줄을 이었다. 김경묵 감독은 오태양씨 이후 예순다섯번째로 총 대신 감옥을 택했다. 여호와의 증인, 한때 집총거부를 했다 돌아선 안식교 신자 그리고 비종교적 이유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까지 포함하면 현재까지 2만명 가까운 이들이 수형생활을 한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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