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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 자택에서 주민 김의균(53)씨가 마당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김씨가 걸어나오는 모습을 투명천막 안에서 촬영했다. 인근 공장에서 날아온 분진에 더럽혀진 천막이 카메라 렌즈를 가려 김씨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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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 김포 거물대리 김의균의 투쟁
국제사회에 호소한 죽음의 마을
김포주민 김의균의 좌절과 투쟁
18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 자택에서 주민 김의균(53)씨가 마당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김씨가 걸어나오는 모습을 투명천막 안에서 촬영했다. 인근 공장에서 날아온 분진에 더럽혀진 천막이 카메라 렌즈를 가려 김씨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김포시 거물대리 마을은 막개발로 각종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들이 들어서 많은 주민들이 암으로 숨지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환경오염이 일어나는데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적절한 통제를 못 해왔다. 거물대리 토박이인 김의균씨는 1990년대부터 농촌마을이 어떻게 공장단지처럼 변해가는지 목격하고 환경오염에 맞서 싸웠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줄 알았던 정부와 지자체는 번번이 김씨를 좌절하게 했고, 주민들 사이에서 되레 김씨는 ‘지역발전 방해자’로 낙인찍혔다. 김씨는 유엔 누리집에 직접 ‘헬프 미, 헬프 김포 거물대리’라고 글을 써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다. 유엔 특별인권보고관이 지난달 김포시를 다녀갔다. 정부와 지자체, 공장들에 맞서 싸우기 시작하면 개인은 무슨 일을 겪게 될까.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과 맞물려 김포 거물대리 인근은 공장의 천국이 되어갔다. 주민들에겐 지옥처럼 변했다.
“헬프 거물대리”
▶ 김포 거물대리 마을의 환경오염을 고발하는 보도는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100건이 넘는 보도가 이어지는 동안 이곳의 환경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기형 개구리가 나오고 사람들이 암으로 죽어갔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왜 해결이 안 되는 것일까.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이 문제에 맞서온 거물대리 주민 김의균씨를 만나 개발지상주의의 덫에 빠진 한 농촌도시 마을의 이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마을에 한쪽 눈동자가 사라진 개구리가 발견됐다. 하천에서 노닐던 왜가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유독물질인 불산 등이 섞인 폐수가 하천에 방류됐다. 논에 모를 심으면 마치 타들어가는 듯 말라 죽어갔다. 주민들이 하나둘 암으로 죽어갔다. 마을에 재앙이라도 닥친 것일까. ‘죽음의 마을’로 불리는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의 이야기다. 언론의 보도도 수없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곳의 재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거물대리 옆마을 초원지리에서 지난달 또 한 주민이 갑작스런 암 발병으로 숨졌다.
언론의 보도가 이어진 이 마을에선 그러나 언론을 더 필요로 했다. 환경 문제 고발이 아니라 환경 문제의 원인과 비리를 생산하는 지역 사회의 총체적 구조를 파헤쳐 달라는 요청이었다. 거물대리에선 주민 김의균(53)씨가 이 문제에 맞서 오랜 싸움을 이어오고 있었다. 지난달 28일 그의 집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곳곳에 공장들이 보였다. 농촌 마을이라기보다는 흡사 산업단지의 입구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산업단지 한복판 같은 곳에 2층짜리 단독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냄새들이 덮쳤다. 김씨는 청주김씨 21대손으로 김포에서 살아왔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곳에서 평생 살 집을 지었다고 했다. 기자를 건물 2층 거실로 안내했다.
주민 150명, 공장 15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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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 공장입지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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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 왜가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논의 모도, 사람도 하나둘 죽었다
수없는 언론 고발에도 현재진행형
원인과 비리의 사슬 추적할 때다 유엔 누리집에 50차례 글 올려
“국제사회가 도와주세요” 호소
정말로 유엔조사관이 올 줄이야
청와대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못 들은 이야기를 그들이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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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김포시 월곶면 고양리 석정천에서 한 주민이 천을 휘저어 기름띠를 살펴보고 있다. 이 천에서 얼마 전 죽은 왜가리가 발견됐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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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에 있는 김의균씨 집 안으로 날아와 쌓여 있던 먼지에 자석을 갖다 대자 먼지가 자석에 착 달라붙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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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균씨가 자신의 집에 들어가기 전 기구를 이용해 옷의 먼지 등을 털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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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숨막힘에 폐에서 이물질까지
주물공장으로 밝혀진 그 공장을
소송 끝에 폐쇄시켰지만 끝 아냐
김포 시내 공장은 5488개로 늘었다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인 김포시청
주민들 중 일부는 쌀값·아파트값
떨어진다며 오히려 김씨를 원망
2차 환경역학조사 진행중인데
석연찮은 압력 정황도 드러나 인터뷰를 거절한 제보자 김의균씨는 자신에게 도착한 문자메시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한 주민이 “인간사 과유불급이고 흐르는 장강의 물을 어찌 막으려고 그러는지 그래서 동네가 발전이 되겠느냐?”라고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이런 주민들이 원망스럽다. “나 때문에 김포시 쌀이 안 팔린다고 원망해요. 이런 게 어디 있어요. 김포시 토양을 오염시키는 공장을 원망해야죠. 마을회관에는 이전에 공장들이 갖다놓은 라면 박스들이 있었어요. 이젠 나 때문에 그거 안 갖다준다고 노인들이 화를 내요. 그거 먹고 시름시름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촌로들은 그렇다 쳐도 젊은 사람들은 좀 낫겠거니 하고 김포 한강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람들도 찾아가서 같이 싸우자고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환경 문제 불거져봤자 아파트값 떨어지니 좋을 게 없다는 거죠. 심지어는 나더러 빨갱이라 하는 사람도 있어요. 나같이 국가관 투철한 사람한테. 허허허. 내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껴요.” 다만 김의균씨만 홀로 싸우고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주민들이 또한 김씨를 응원하기도 한다. 김씨에게 몰래 환경오염 제보도 해온다. 하지만 나서지는 못한다. 거물대리의 한 주민은 “대체로 조그만 사업을 벌이고 있는 주민들이 많은데 함부로 나섰다가 김포시의 보복성 행정단속에 걸릴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20대 중반까지 평범한 농민이었다. 이후 작은 개인사업을 해왔다. 지금은 컨테이너 대여업을 하고 있다.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이지만 그는 불의를 그냥 넘기는 성격이 못 된다. 지난 2일 김의균씨는 김포시 곳곳의 오염 현장들을 살펴봤다. 김씨와 함께 김포 월곶면 고양리 석정천을 찾았다. 개천 바로 옆에는 커다란 공장 담벼락이 마주하고 있었다. 개천으로 물이 유입되고 있었는데 표면에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석정천 양옆으로 너른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고양리의 한 주민은 “이 논밭에서 자라는 작물은 공장에서 유입된 하천물로 재배된다”고 말?다. 김씨는 올봄 이 논에 심은 모가 말라서 죽어버렸다고 전했다. “석정천 옆에 있는 공장 노동자가 암으로 죽었어요. 그 동료가 저와 아는 사이라 알려준 건데 숨겨둔 정화조가 있었대요. 공무원이 단속 나오면 멀쩡한 정화조 보여주고 다른 정화조로 질산을 배출했다고 해요.” 석정천에서는 왜가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그전에 폐수를 배출했다는 게 김씨에게 도착한 제보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제보자는 1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나도 이제 사업을 해야 한다.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김포시 통진읍의 한 공장지대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계획관리지역이라 주거지와 공장들이 혼재돼 있었다. 공장 굴뚝에서는 알 수 없는 연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공장 문은 활짝 열려 있고 흡사 용광로 같은 것에서 뿜어내는 불이 멀리서 보였다. 공장 옆의 야트막한 야산에 있는 나무의 잎들을 살펴보니 은색 먼지 따위가 잎사귀마다 묻어 있었다. 산에서는 나무 냄새 대신 악취가 진동했다. 한 지역 주민은 “공장들이 집진시설 용량을 벗어나는 수준으로 가동해서 오염물질이 계속 배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장 옆에는 군부대가 있었다. 김의균씨가 말을 이었다. “군부대에서도 나한테 도와달라고 연락을 해와요. 자기들이 오염 때문에 죽겠다고. 대체 공장에서 무슨 물질을 배출하고 있는 건지 김포시에 물어봐도 안 알려준다고 하소연하는 거예요. 대체 공장들 뒤를 누가 봐주고 있길래 군도 꼼짝 못하는 거죠?” 알 권리의 박탈. 김포시에서 공장과 관련한 정보는 주민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대곶면 쇄암리를 방문했다. 역시 셀 수 없는 많은 공장들이 도처에 있었고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공장들 한가운데 생뚱맞게 전원주택 한 채가 있었다. 신아무개(45)씨의 집이었다. 신씨는 두 아이들과 함께 시골에서 살고 싶어 수년 전 이곳에 집을 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가로운 농촌 마을이었는데 집 주변으로 하나둘 공장이 들어서더니 이제는 마치 산업단지처럼 변해버렸다. 신씨는 김포시에 환경오염 신고를 수차례 했지만 김포시는 신씨에게 점검 일정 등을 통보하지 않았다. “정보공개 청구를 해보았지만 공개할 수 없다는 안내문만 받을 뿐이에요. 김포시가 주민 편에 서 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중립적인 기관이 맞는 건지 알고 싶어요.” 왜 같은 시료인데 두배 차이 나나 기자가 직접 신고를 해봐도 비슷했다. 17일 오전 김포시 양촌읍의 한 금속공장의 열린 문 쪽에서 환풍기가 강한 바람과 함께 먼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김포시청에 신고를 했다. 김포시청은 오후에 단속을 나와 조처를 마쳤다고 연락을 해왔다. 시청 관계자는 해당 공장이 환경 관련 법을 위반했다는 것은 확인해주었지만, 영업 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김포 거물대리 옆 초원지리 마을에서는 지난달 65살 주민이 암으로 숨졌다. 이 마을에서만 최근 5년간 8명이 암으로 죽고 4명이 심장질환 등으로 숨졌다. 18일 오후 숨진 주민이 살던 집을 찾았다. 집 주변으로 불과 100m 근방에 공장 세 동이 입주해 있었다. 낡은 건물의 굴뚝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를 뿜어냈다. 고인의 아들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라 했다. “건강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지난 5월 갑자기 쓰러져서 담도암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가 암의 원인은 워낙 다양하다고 해서 속단할 순 없지만 저는 공장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화학약품 냄새가 진동을 했어요. 공장이 밤 11시 넘게까지 가동됐어요. 정화시설이 안 되어 있다고 김포시청의 단속에 걸려서 벌금도 맞았지만 공장 운영은 계속됐어요. 단속 나오면 어떻게 알았는지 또 그때는 공장 가동을 안 해요.” 김포시 주민들은 김포시가 진행하고 있는 2차 환경역학조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9월 토양과 대기 등에 대한 시료 채취를 마쳤는데 아직까지 김포시는 발표를 미루고 있다. 확인 결과, 김포시가 역학조사를 의뢰한 인하대 연구팀에 최종 조사 결과 산정을 앞두고 석연찮은 압력을 넣은 정황이 드러났다. 김포시는 인하대 연구팀과 별도로 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도 분석을 맡겼다. 같은 샘플을 두고 교차분석을 해야 한다는 게 김포시의 논리였다. 인하대 연구팀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분석 결과 양쪽은 열배에 가까운 중금속 오염수치 차이가 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쪽의 분석 결과는 거물대리 일대 토양이 매우 깨끗한 것으로 나왔고 인하대 연구팀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같은 시료를 놓고 분석했는데 상식 밖의 다른 결과가 나와 인하대 연구팀은 전문가 분석을 한번 더 갖자고 김포시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김포시 공문과 김포시청 및 주민 등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김포시는 ‘양쪽 데이터의 평균값을 산출해 결과를 발표하라’고 연구팀에 요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용역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인하대 연구팀은 ‘과학적인 영역에 지자체가 개입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의균씨는 김포시청 앞에서 1인시위에 돌입했다. 초원지리 등에서 나온 주민 서넛이 함께했다. 17일 만난 김씨가 말했다. “어떻게 같은 토양 시료를 분석한 건데 두 기관에서 중금속 분석 차이가 열배에 이를 수 있지요? 누군가 시료를 바꿔치기한 게 아니라면.” 김포시청 환경관리팀 관계자는 19일 <한겨레>에 “양쪽 기관이 분석한 데이터에서 평균값을 내어 발표하는 건 전문가들끼리 합의한 것이다. 평균을 내더라도 양쪽 데이터 모두 공개할 것이다. 용역 계약 취소를 압박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공무원과 공장 업자들의 유착관계는 없다. 김포시가 산업단지를 제외한 개별 입지 공장 수로는 전국에서 두번째로 많은 시다. 공무원 인력에 비해 공장 수가 많아 관리 감독이 힘든 측면이 있었다. 지난 9월 환경관리사업소를 별도로 만들어 감독 강화에 나섰다”고 말했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그가 말했다. “당연히 산업발전도 필요하겠죠. 그런데 왜 집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게 하냐고요.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거기서 발전시켜야죠. 왜 정부가 주민들 대신 공장 편에만 서나요. 지금도 우리나라는 독재국가예요. 군인이 독재하는 게 아니라 공장들이 독재를 해요.” 김포/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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