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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경선후보가 21일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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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허핑턴포스트 편집장들이 본 ‘2015 세계’
‘허핑턴포스트’ 12개국 편집장들이
2015년 세계를 물들인 뉴스를 꼽다
세계적 온라인뉴스 매체인 <허핑턴포스트> 12개국의 편집장들에게 올해의 뉴스를 꼽아달라고 요청했다. 프랑스 파리의 테러, 일본인 기자의 참수, 브라질 대통령의 탄핵 위기 등 올해는 증오, 불안, 복수 등 세 축으로 돌아가는 악순환 벨트가 작동한 한해였다. <뉴스위크> 정치전문기자 출신인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하워드 파인먼은 ‘불안’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 미 공화당 대선 경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적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발언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 이면에는 미국 중산층의 경제, 문화, 안보에 대한 공포 심리의 발호와 이를 자극해 지지율을 올리는 선동술이 있다고 파인먼은 분석한다. 불안의 촉매가 짙어질수록 관용의 농도는 옅어진다. 프랑스는 이슬람국가(IS)를 곧장 공습했고, 독일 난민보호소에서는 거의 매주 방화사건이 일어난다. 불안은 그러나 항상 그런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캐나다에서는 시리아 소년 알란 쿠르디의 난민 신청을 거부한 정부를 비판하면서 자유당이 집권당이 됐고 난민을 대폭 받아들였다. 긴축정책과 난민 유입으로 혼돈의 한해를 보낸 그리스의 니코스 아구로스 <허핑턴포스트 그리스> 편집장은 세계시민주의를 내놓는다. 보편적 가치로 다른 세계와 연대하는 것이 그리스와 유럽을 구원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연결된 세계를 사는 우리에게도 주는 깨달음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불안과 증오의 시간이 트럼프를 키웠다
▶ 미국 공화당 대권 레이스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다. 무슬림 입국을 금지하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자는 괴이한 주장의 주인공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무언가? 비정치적 대중을 타깃으로 테러가 발생하고 난민과 이민자들이 혼돈하는 세계화 시대의 지구는 지금 증오와 불안이라는 뜨거운 불덩어리를 안고 있다. 야만의 방향으로 갈 것인가, 문명의 방향으로 갈 것인가. 내년도 도널드 트럼프의 운명은 증오와 불안을 처리하는 우리의 태도를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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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21일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그랜드래피즈/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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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파인먼 <허핑턴포스트 미국>글로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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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3일 프랑스 파리의 동시다발 테러 직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바타클랑 콘서트홀 앞에서 한 남성이 존 레넌의 ‘이매진’을 연주했다. 파리/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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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변방 좌파 노동당수의 등장 올해 가장 큰 뉴스는 누가 뭐래도 야구장 벤치 뒤에만 머물던 제러미 코빈의 등장이다. 200 대 1에서 시작한 그는 30여년 동안 노동당에서 조용히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무기 문제에서 왕실 문제까지 모든 이슈를 논쟁적인 좌파적 관점에서 사고하는 그의 등장은 단순한 정치적 성공 스토리 이상이었다. 대다수가 비판하는 내용이긴 했어도 모든 미디어 이슈를 그가 집어삼켰다. 권력 부상의 핵심에 존재했던 소셜미디어에서는 지금 그의 지지자와 비평가들 사이에 잔인한 공격과 방어의 말들이 번식하고 있다. 재클린 하우스든 <허핑턴포스트 영국>뉴스에디터
그리스 ‘세계시민주의’의 길을 가라 정부가 지배하는 나라라기보다는 선거가 지배하는 나라. 그리스는 지난 1월 총선에서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집권당이 되면서, 국가의 채무위기가 재현됐다. 정부가 추진한 국민투표가 공포를 촉발하고 자본에 대한 정부 지배가 강화되면서 경제위기의 노정에서 최고의 긴장을 보여준 한해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사건은 긴축정책에 반대해온 급진적 좌파 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시리자)가 9월 조기총선에서 다시 선택돼 도리어 긴축정책을 강화한 것이다. 2015년은 그리스에 극단적으로 정치적인 한해였다. 그러나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한 소란의 결말은 아직 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리스의 문제가 유럽연합의 문제라는 걸 자주 망각한다. 최근의 채무위기가 이를 보여준다. 고삐 풀린 듯 쏟아지는 이민자와 난민 행렬의 혼돈도 이를 역설하고 있다. 세계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아주 복잡하고 뒤섞인 현상의 총체가 되어버렸다. 이를테면 우리는 시장과 금융권이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일련의 사건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포스트 대처리즘이 절실하다거나 철지난 변증법적 반자본주의의 판타지에 빠지면서 현실을 외면한다. 유럽은 그리스 문제에 관한 한 꾸물거리며 대처를 미뤘다. 결과적으로 유럽과 그리스 모두에서 위기가 커졌다. 그리스에서 대처리즘을 압도한 그리스사회당(PASOK)의 국가 중심 자본주의(사회주의) 독재는 2008년 경제위기와 함께 붕괴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그리스가 당면해 도전해야 하는 지점에 나라를 서게 했다. 2015년 그리스에 새겨진 모든 상처는 유럽에도 새겨진 것이다. 반대로 유럽에 난 상처도 그리스에 새겨졌다. 많은 사람들은 문제의 근원이 그리스가 유럽연합의 처방을 따르지 못한 데 있다고 생각하지만, 더 큰 문제는 유럽연합의 처방이 세계화된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 제기된 문제에 해결하는 메커니즘과 대응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아직 유럽은 터득하지 못했다. 그저 자기가 꾸물거린 잘못을 칼뱅주의 교도처럼 그리스에 채찍질이나 하면서 돌리고, 세계화로 발생한 경제·사회적 곤란을 그저 수동적으로 인내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스와 유럽연합의 채무협상에 대한 ‘위대한 합의’를 신성화하며 유럽연합은 계속 시간을 벌었지만, 과거의 문제들과 새로 제기된 문제들을 두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난민 위기로 분열된 유럽이 겪고 있는 혼란을 냉정하게 응시해야 한다. 유럽정상회의는 모든 질환의 ‘진통제’다. 표면적으로나마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는 시스템이 있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를 단순명쾌하게 정의해버리고 단기처방에 나서는 건 민주적이진 않다. 그렇다고 선한 의도와 인도주의적으로 위기를 바라보는 ‘효과 없는 처방’ 또한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적인 처방도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위기를 빠져나가는 그리스와 유럽연합의 출구는 유럽 통합으로 향하는 노상에 있다. 진정으로 유럽의 통합을 달성하려면 공통의 예산과 공통의 부채, 하나의 재정부 장관과 외교정책 그리고 똑같은 기준으로 부여되는 유럽 난민 지위가 필수적이다. 그래야 공공지출 감소에 따른 구별과 차별, 정의와 민주주의의 격차가 사라지고, ‘정부가 우파냐, 좌파냐’ 하는 우려와 폭력 사건 증가에 속수무책 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우파는 ‘다문화주의’라는 용어를 싫어하고 좌파는 ‘세계화’라는 용어를 싫어한다. 그러나 운명의 날 맞닥뜨릴 질문과 목표는 다시 한번 ‘세계시민주의’다. 우리가 우리 세계의 시민이자 다른 세계의 시민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과거의 그리스는 위대한 것들을 성취해왔다. 그리스 시민이 곧 세계시민이었다. 그리스의 부활은 과거와 현재의 변증법에서 출발하지 않고 그리스와 유럽의 윤리적·정치적 관계에서 세계시민주의의 전통을 다시 세우는 데서 나온다. 그것이 그리스의 유일한 도전이자 해결책이다. 니코스 아구로스 <허핑턴포스트 그리스>편집장
한국 우린 진정 표절의 위악을 아는 몸이 됐나 2015년 한국을 심장부터 꺼내어 뒤흔든 사건은 한둘이 아니다. 그중 많은 사건은 경복궁 뒤에 자리잡은 한 고즈넉한 건물로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다만 사회적, 문화적으로 한국의 가장 오래된 환부 중 하나를 통째로 꺼내어 뒤흔들었다는 점에서 신경숙 표절 사태를 올해의 가장 큰 뉴스로 꼽아도 썩 어울릴 것이다. 신경숙 표절 사태는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이응준 작가가 기고한 블로그로부터 시작됐다. 이응준은 신경숙의 <전설>의 일부분이 김후란 시인이 번역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의 한 대목을 표절했다고 지목했다. 침묵을 지키던 신경숙은 “해당 작품을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변호하고 나섰다. 창비는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고 했다.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는 말은 대단했다. 그 문구를 누가 생각해냈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한국 역사상 매체를 통해 공개된 수많은 사과와 해명 중 그만큼이나 방어적으로 공격적인 문장은 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사과와, 해명과, 사과 비슷한 해명과, 해명 비슷한 사과와, 그에 대한 짜증 섞인 사과 비슷한 것들이 반복됐다. 사실 표절을 통해 하나의 신화가 무너진 사례는 다른 문화 영역에서도 이미 존재한다. 신성일과 엄앵란, 트위스트 김이 출연했던 <맨발의 청춘>(1964)은 30여년간 한국의 60년대를 상징하는 청춘 영화였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는 바로 전해인 1963년 작 일본 영화 <진흙투성이의 순정>을 완벽하게 베낀 일종의 ‘복사 영화’였다. 지금은 누구도 <맨발의 청춘>을 한국 영화계가 자랑할 만한 유산으로 여기지 않는다. 9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작품 중 하나인 <투캅스>는? 자, 이 영화를 명확하게 표절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법률적인 자문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를 본 적이 있다면 <투캅스>를 완벽하게 변호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한국은 부인할 수 없는 표절 사회다. 문제는 이 표절이 마치 겨울 스웨터에 깊숙하게 박힌 고양이의 털처럼 완벽하게 모든 곳에 스며든 나머지 표절 자체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거의 무용한 일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혹은, 종종 한국인의 무의식은 명백한 표절을 거부하고 싶어한다. 새우깡은 일본의 갓파에비센이 낳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우깡은 여전히 우리의 ‘국민 과자’로 남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응준 작가의 단호한 지적을 통해 한국은 우상의 표절을 지적하고 파헤쳐서 침묵하는 카르텔을 뒤흔드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됐다. 그 기쁨은 지속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대답은 신경숙이 새로운 장편을 가지고 나오는 날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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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를 밀어붙이고 한편으로 시리아 난민을 전격 수용하면서 유럽 정치를 이끌었다. 지난 10월 그리스 시민이 메르켈을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아테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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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국가(IS) 추정 세력에 의해 참수 살해된 일본인 언론이 고토 겐지.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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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포데모스와 시우다다노스의 약진 스페인은 지난 20일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뜨거운 한해를 보냈다.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 국민당(PP)이 여론조사에서 앞섰지만, 전통적 제1야당인 좌파 사회노동당(PSOE) 외에 두 신생 정당의 반격도 맞닥뜨려야 했다. 좌파연합인 포데모스(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는 꽁지머리에 젊고 카리스마 있는 교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를, 중도적 자유주의 성향의 시우다다노스(‘시민들’이라는 뜻)는 카탈루냐 출신의 에너지 넘치는 알베르트 리베라가 선두에 섰다. 스페인 경제는 3%의 안정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지만, 유권자들은 여전히 21%의 높은 실업률, 정치적 부패, 긴축정책 등을 염려한다. 북동 지역의 카탈루냐에서 일어나는 분리독립 운동도 역시 정치적 의제로 대두됐다. 선거 결과 스페인 정치를 30여년 지배해온 양당체제는 붕괴됐고, 포데모스와 시우다다노스가 약진하면서 4당체제가 출범했다. 기예르모 로드리게스 <허핑턴포스트 스페인> 편집장
이탈리아 ‘가장 위험한 유럽’을 자각 유럽은 이제 서방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루치아 안눈치아타 <허핑턴포스트 이탈리아> 편집장은 위와 같은 제목으로 파리 테러의 여파를 요약한 적이 있다. 제3차 세계대전이 왜 이미 여기 성큼 다가와 있는지, 그리고 그 무대 중 하나가 왜 유럽인지, 파리 테러 이후의 사건들이 보여주었다. 구 대륙(유럽)은 다시 한번 서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됐다. 줄리아 벨라르델리 <허핑턴포스트 이탈리아> 정치에디터
오스트레일리아 토니 애벗, 총리직 탈환할까 오스트레일리아 2015년의 뉴스는 토니 애벗 총리가 갑작스럽지만 치밀하게 준비된 당 대표 선출 투표에서 패배해 총리직에서 물러난 사건이다. 대중적 인기가 높지 않던 맬컴 턴불 통신장관은 일년 내내 바닥을 돌아다니며 표를 끌어모았고 지난 9월 집권 자유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제29대 총리에 오른 턴불 총리의 허니문 효과는 연말로 사라졌고, 토니 애벗은 다시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국회에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 토리 매과이어 <허핑턴포스트 오스트레일리아> 편집장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에 등을 돌리다 브라질은 올해 크나큰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겪었다. 지난해 재선되어 첫해를 보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해 벌써 60% 이상의 국민이 등을 돌렸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대선 때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공약이 거짓말이 돼버린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경제공약이 급조됐음이 드러났다. 호세프 대통령 탄핵론자들은 네가지를 탄핵 이유로 든다. 높은 금리와 인플레이션, 그리고 에너지 가격 상승이었다. 올해에는 실업률 또한 증가했다. 대통령의 탄핵 위기와 함께 유력 인사의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사태는 더욱 꼬이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에두아르두 쿠냐 하원 의장은 부정수뢰와 돈세탁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호세프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적수다. 지금 브라질 정치는 혼돈 속으로 빠지고 있다. 지에구 이라에타 <허핑턴포스트 브라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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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해안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세살배기 어린이 알란(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은 시리아 난민 문제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보드룸(터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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