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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관 로비 의혹에 연루된 홍만표 변호사가 27일 오전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홍 변호사는 탈세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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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 법조 출입기자가 쓰는 ‘홍만표 평전’
27일 검찰 소환된 ‘법조 로비’ 의혹 핵심 홍만표
‘특수통 검사’가 탐욕스런 ‘전관 변호사’ 되기까지
검찰의 대표적 ‘특수통’이었던 홍만표(57) 전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이 27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 로비 의혹에 연루된 그는 과거 여러 권력형 비리 수사에서 성과를 내어 검찰을 대표하는 수사 검사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다. 변호사 개업 4년여 만에 형사처벌을 앞두게 된 그의 추락은 검찰과 전관 출신 변호사의 공생 관계로 왜곡된 우리 법조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검사 홍만표’의 출세와 몰락을 추적해봤다.
이날 오전 9시50분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한 홍 변호사는 “저를 둘러싼 각종 의혹사항에 대해 제가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고 신속하게 수사가 마무리되도록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관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에 서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그는 언론에서 제기한 ‘몰래 변론’ 의혹에 대해 “상당 부분이 해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운호씨 도박 사건에서 검찰을 상대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적이 전혀 없다.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으려고 변호사들하고 같이 협업을 했다. 나름대로 정당한 변론 범위 안에서 열심히 일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홍 변호사는 그러나 수임료 탈세에 대해서는 “퇴임 이후 변호사로서 주말이나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다 보니까 다소 불찰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 부분도 검찰에서 충분히 설명하겠다”며 혐의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그는 후배 검사들에게 수사를 받게 된 심정을 묻는 질문에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참담하다. 근무하던 곳에서 피조사자로서 조사받게 됐는데 이루 말할 수 없다. 저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제가 감당할 부분을 감당하겠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솔로몬저축은행 사건을 동료 변호사에게 알선한 뒤 소개료를 받는 등 변호사법을 위반하고, 거액의 수임료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탈세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홍 변호사가 (혐의 가운데) 인정하는 것도 있고, 부인하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홍 변호사에게 도박 사건을 의뢰한 정운호(수감중)씨와, 정씨에게 홍 변호사를 소개한 브로커 이민희(구속)씨를 홍 변호사와 대질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홍 변호사에 대해 조사할 게 많다. 조사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홍 변호사에 대한 조사가 끝나는 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정씨 사건의 또다른 핵심 인물인 최유정(46) 변호사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최 변호사가 정씨의 보석과 이숨투자자문의 실질적 대표인 송창수씨의 집행유예 선고 청탁 명목으로 100억원대의 부당한 수임료를 챙겼다”고 밝혔다.
이춘재 최현준 서영지 기자 cjlee@hani.co.kr
▶ 당대 최고의 수사 검사였던 홍만표 변호사는 왜 형사처벌을 앞두게 됐을까요? 그는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웬만한 대형 사건 수사에는 모두 참여했습니다. 변호사 개업 이후에는 4년여 만에 수백억원을 벌어 안대희 전 대법관, 황교안 총리 등 쟁쟁한 검찰 선배들을 제치고 최고의 ‘전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를 존경하는 후배 검사들한테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가까이서 지켜본 법조 출입기자가 그의 추락 원인을 따져봤습니다. “내 사무실 처음이세요? 이 기자가 그동안 무심하셨네.” 지난 4월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빌딩 ㅈ법률사무소에서 만난 홍만표 변호사는 의외로 담담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50억원 수임료 다툼’으로 촉발된 법조비리 사건의 불똥이 그에게 막 옮겨붙기 시작할 때였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그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조심스레 묻는 내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검찰에서 한창 잘나가던 시절 당당하게 수사 브리핑하던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는 이따금 넉넉한 미소도 지어 보였다. 마치 오랜만에 찾아와서도 껄끄러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기자의 곤혹스런 처지를 이해한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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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표 변호사가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시절이던 2009년 4월9일 서울 서초구 대검 기자실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돈거래 의혹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설명하며 웃음 짓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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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뇌부 신임 두터운 ‘특급요리사’
“TK 장악 내 생존전략” 시각도
한보비리·황우석·박연차 등
굵직한 대형사건 수사 두루 참여 참여정부 실세 상대 “절묘한 수사”
황우석 대법원 유죄판결 이끌어
이명박 정권 입맛 맞추려다 무리수
노골적 언론플레이로 노무현 압박
‘죽음에 이르게 한 검사’ 주홍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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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표 변호사는 특수3부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황우석 당시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사건을 맡아 황 교수를 불구속 기소했다. 황우석 지지자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 수사에 항의하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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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생일 선물로 스위스 명품 브랜드 시계 2개를 선물했다는 진술을 언론에 슬쩍 흘렸다. 노 전 대통령 쪽을 압박하려는 명백한 언론 플레이였다. 당시 일부 언론들은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하기에 바빴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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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 내세워 로비 영업’ 입길
검찰 출신 변호사들의 ‘공공의 적’
홍만표, “근거없는 음해” 항변했으나
규정 어기고 저축은행 수임 들통 4년간 해마다 80억~90억 수임료
오피스텔 50여채 보유 사실 확인
‘국회의원 출마 준비설’ 나돌고
“권력 상실 보상심리” 평가도
후배들, ‘우상의 추락’ 착잡함 “홍, 시장 독식해 원성 자자” 평가도 그러나 홍 변호사는 2009년 9월 무사히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피의사실 공표 혐의도 2010년 1월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는 2010년 7월 대검 요직인 기획조정부장으로 발탁됐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몰고 온 수사에 참여한 것이 검찰 안에서는 ‘훈장’으로 작용한 셈이다. 홍 변호사는 2011년 8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 검찰의 뜻에 반해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검찰 쪽 협상 창구로 나섰던 그가 책임을 지고 옷을 벗은 것이다. 검찰 수사권 사수라는 명분으로 검찰을 떠난 모양새였기 때문에 그는 후배 검사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변호사 개업 후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사건을 싹쓸이하다시피 수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도 작용했다. 하지만 그의 사퇴를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일반적으로 검찰 고위 간부가 사표를 내는 시점은 정기 인사 직후인데, 이때는 옷을 벗는 검사장들이 많기 때문에 ‘전관’의 이점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홍 변호사가 검찰 인사와 무관한 때에 개업했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개업 후 왕성한 영업력을 보인 걸 보면 이런 분석에 좀더 무게가 실린다. ‘변호사 홍만표’는 ‘검사 홍만표’와 전혀 달랐다. 검사 시절 수사 대상자를 확실한 증거로 제압하던 ‘무사’의 기질은 옅어지고, 검찰 내 인맥을 활용해 로비에 가까운 영업을 한다는 소문이 변호사업계에 돌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검찰 출신 변호사들에게 ‘공공의 적’이 돼버렸다. 돈 되는 형사 사건들을 독식하는 바람에 다른 전관들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개업 후 1~2년 정도 빡세게 해서 어느 정도 돈을 벌었으면 후배 ‘전관’들을 위해 비켜줘야 하는데, 홍 변호사는 5년 내내 시장을 독식해 원성이 자자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후배 검사들도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수사 검사의 재량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무리하게 부탁한다는 말이 돌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홍 변호사가 현 정부 실세인 황교안 총리, 우병우 민정수석과 각별한 사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검사들이 그가 선임한 사건을 처리하는 데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 검찰 인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실세들이라서 홍 변호사의 부탁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총리는 홍 변호사의 대학 선배이자, 검찰 내 개신교 신자 모임인 신우회 회원으로 친분이 각별하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노 전 대통령 수사팀에서 동고동락한 사이다. 하지만 홍 변호사는 이런 말들이 모두 “근거 없는 음해”라고 항변했다. 그는 20여일 전 새벽 2시에 기자에게 문자를 보내와,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며 자신의 말을 100% 믿어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돈을 많이 번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악의적 소문이다. 그런 말을 옮기는 사람들은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100% 믿어달라’는 그의 해명은, 그가 변호사 개업 직후 저축은행 사건을 몰래 수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신빙성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퇴임 직전 근무지 사건을 1년 동안 못 맡게 한 수임제한 규정 때문에 당시 대검 중수부에서 수사하던 저축은행 사건은 단 한 건도 맡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수사 대상에 올랐던 저축은행 관계자들이 사건을 들고 찾아왔는데도 모두 돌려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한겨레> 취재 결과, 그는 솔로몬저축은행 사건을 후배 변호사에게 알선한 뒤 수임료의 절반을 나중에 돌려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자신의 기사에 대해 한밤중 문자메시지를 날려 적극적으로 해명하던 것과 달리, 그는 저축은행 수임 관련 보도가 나간 뒤로는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개업 이후 4년여 동안 해마다 80억~90억원의 수임료 수입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부부가 함께 수도권에 50여채의 오피스텔을 비롯해 15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음이 언론 보도로 확인됐다. 그는 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했을까? 그를 잘 아는 검찰 출신 변호사들은 ‘국회의원 출마설’을 제기한다. 그가 고향인 강원도 삼척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액수의 선거 자금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고정적인 임대 수익이 보장되는 오피스텔에 투자한 것은 국회의원 출마를 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과 전관 변호사 공생 끊어야 검사로서 만끽했던 권력을 상실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그와 검찰에서 같이 근무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 밖으로 나와 보면 안다. 검사가 얼마나 큰 권력을 갖고 있는지. 자기 손에 있다고 생각했던 권력이 더 이상 없게 된다. 그럼 그 공백을 메꿀 수 있는 게 뭐겠나. 돈이다. 검사 때 누렸던 권력을 다시 회복할 수는 없지만, 돈은 사회에서 그에 버금가는 힘을 준다.” 또 다른 변호사는 “홍 변호사가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좇다가 탈이 난 것이다. 검사 때 그만큼 잘나갔으면 변호사 개업 뒤에는 조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의 추락을 지켜보는 후배 검사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한때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선배가 하루아침에 형사처벌을 앞둔 피의자가 돼 버린 상황이 선뜻 믿기지 않는다. 이번 수사의 실무책임자인 이원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홍 변호사와 각별한 사이다. 서산지청에서 시작된 인연이 서울중앙지검, 대검찰청으로 이어졌다. 이 부장은 최근 사석에서 홍 변호사를 조사해야 하는 괴로움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검사들은 언론에 대한 불만도 나타내고 있다. 검사들은 “홍 변호사로부터 자유로운 기자들이 과연 몇이나 되느냐”고 되묻고 있다. 그가 법무부 대변인과 수사기획관을 지내면서 이런저런 인연을 맺은 기자만 해도 수십명에 이른다. 변호사 개업 이후 그와 정기적으로 골프를 즐기는 기자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홍 변호사의 고교 후배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그에게 소개해준 브로커 이민희(구속)씨의 녹취록에는 한 중앙일간지가 거론된다. 그런 기자들이 지금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홍 변호사에게 달려들고 있다. 하지만 검사들이 검찰 전관 출신 변호사들의 무리한 청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홍 변호사와 같은 비극의 주인공은 진작에 사라졌을지 모른다.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거액의 수임료를 건네는 것은 그만큼 ‘성과’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과 전관 변호사의 공생 관계를 끊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간부를 지낸 한 변호사는 “변호사가 사건 무마를 청탁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청탁을 받아주는 검찰이 더 문제다. 검찰이 이번 기회에 변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홍만표’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관련 기사] ▶ 바로가기: ‘우상’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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