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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새누리당(당시) 후보의 주변에서는 “대통령이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박근혜 후보의 생각이나 리더십이 시대에 비해 너무 낡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단순한 우려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선거에 승리해 집권한 뒤 대통령직을 매우 불성실하게 수행했을 뿐 아니라 비선 실세 “최서원(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기도 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이어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이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결정을 내린 이유다. 입으로는 원칙과 신뢰를 강조했던 정치인, 국민대통합을 외쳤던 지도자가 ‘두번째 들어간’ 청와대에서 중도에 쫓겨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은 민간인 신분이 된 박 전 대통령을 오는 21일 오전 소환하기로 했다. ‘피의자 박근혜’가 검찰에 출두하며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가상으로 꾸며봤다. 글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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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청와대 출입기자가 복기하는 ‘박근혜 정권’ 실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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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새누리당(당시) 후보의 주변에서는 “대통령이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박근혜 후보의 생각이나 리더십이 시대에 비해 너무 낡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단순한 우려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선거에 승리해 집권한 뒤 대통령직을 매우 불성실하게 수행했을 뿐 아니라 비선 실세 “최서원(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기도 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이어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이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결정을 내린 이유다. 입으로는 원칙과 신뢰를 강조했던 정치인, 국민대통합을 외쳤던 지도자가 ‘두번째 들어간’ 청와대에서 중도에 쫓겨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은 민간인 신분이 된 박 전 대통령을 오는 21일 오전 소환하기로 했다. ‘피의자 박근혜’가 검찰에 출두하며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가상으로 꾸며봤다. 글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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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92일 만에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 됐습니다. 오는 21일엔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습니다. 뒤늦게 진실이 드러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1차 원인입니다. 하지만 ‘피의자 박근혜’를 만든 뿌리는 훨씬 깊습니다. 비선실세에 의존한 대통령의 비밀주의는 결국 정권의 몰락을 자초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가 그 과정을 복기해봤습니다.
출입금지만 남고 수시 브리핑은 사라져
대면보고 극구 피하는 박 전 대통령
참모들, 대통령 전화 안 놓치려 전전긍긍
일방적 지시뿐, 제안·토론은 완전 실종 핵심 뺀 수석들도 ‘미르’ 존재 뒤늦게 알아
“인터넷 검색했더니 우주정거장 나오더라”
임기 내내 ‘수첩인사’·‘밀실인사’ 꼬리표
우병우 발탁·고속승진 등에 최순실 그림자
정호성조차 “저희도 묻는 것 이외엔…” 기자들만 전화에 매달려 있던 건 아니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대통령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대면보고 대신 서면보고를 선호한 탓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곧바로 전화로 문의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전화를 놓칠까봐 한 참모는 바지 허리춤 안쪽에 휴대전화를 끼워넣기도 했고, 화장실·목욕탕에 갈 때도 반드시 옆에 둔다고 했다. 또다른 참모는 기자들과 1시간 남짓 식사하는 동안 절반 이상을 박 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느라 밖에 서 있었다. 한 참모는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시간이 토요일 오전인데, 이때도 혹시 대통령 전화가 올까봐 부인에게 전화기를 맡겨둔다”고 털어놨다. 인사 파동이 한창이던 정권 초기, 사정기관의 고위 인사는 박 전 대통령과 밤늦게까지 통화한 뒤 깜빡 졸다 일어나 보니 전화기에 박 전 대통령의 ‘부재중 전화’ 3통이 찍혀 있었다. 급히 전화해 “죄송합니다.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라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은 “지금 잠이 오세요?”라고 날을 세웠다고 한다. 그때 시간은 새벽 4시였다. 하지만 전화는 일방적인 소통수단이다. 대통령의 지시는 통신선을 타고 참모들에게 일방적으로 전해졌을 뿐, 제안이나 토론은 쉽지 않았다. 참모들은 묻는 것에만 답하는 데 익숙해져 갔다. 가뜩이나 관저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박 전 대통령을 만날 기회는 적었고,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서 스스로 강경해지고 고립되어 갔다.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도 ‘대통령이 너무 강하시다. 말씀 좀 드려달라’고 부탁을 하더라”며 “직접 말씀드리라고 했더니 ‘저희는 묻는 것 외에는 말씀 못 드리는 것 잘 알지 않습니까’라며 걱정이 많았다”고 전했다. 청와대 안에서도 모든 내용이 공유되는 것은 아니었다.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설립은 박 전 대통령과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 김상률 교육문화수석 등 극소수만 알고 있었다. 지난해 5월 이란 순방을 앞두고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미르재단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다고 한다. 당시 한 참석자는 “처음 들어보는 곳이어서 인터넷에 ‘mir’를 검색했더니 러시아 우주정거장이라고 나오더라. 다시 한글로 ‘미르’를 쳤더니 기사가 몇개 나왔는데 기분이 이상해졌다. (대통령이) 용띠인데다 문화재단에 왜 용이 들어가나 싶었다”고 나중에 털어놨다. 미르는 ‘용’의 순우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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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 직무정지를 당한 지 92일 만에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 됐다. ‘피의자 박근혜’가 검찰에 출두하며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가상으로 꾸며봤다.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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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사과도, 책임도 지려 하지 않아
메르스 책임 장관은 ‘경질’ 뒤 ‘부활’시켜
공천파동 일으켜 총선 패배했는데도
“당이 총선 관리 잘못해서 생긴 일” ‘무책임 종합판’ 된 우병우 사태
‘정권 흔들기’라며 무시한 대통령이나
“잘못 없는데 왜 나가냐”던 우병우
“대통령이 정권의 위기 자초한 셈”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의 원인 임기 후반기에는 여기에 ‘오기 인사’가 추가됐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음주운전 전력으로 논란을 빚은 이철성 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했다.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경찰의 수장이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 심지어 이를 덮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정치권과 언론 등의 비판을 무릅쓰고 청장 임명을 강행했다. 당시 언론들은 이를 ‘야당에 밀리지 않겠다’는 박 전 대통령의 의지로 해석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고리’는 역시 최순실씨였다. 조카 장시호씨가 최씨의 핸드백에서 몰래 찍은 인사파일에서 이 청장의 인사자료가 발견된 것이다. 여기엔 이 청장을 포함해 정·관·금융계 고위직 10여명의 인사기록 카드 등 대외비 자료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청와대 입성 및 고속승진 배경에도 최순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2014년) 우병우 수석의 민정비서관 발탁, 청와대 입성은 최순실씨와의 인연이 작용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 전 수석은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에 임명된 뒤, 8개월 만인 이듬해 민정수석으로 고속 승진했다. 연배를 중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고려할 때 파격적인 인사였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위에서 우 전 수석의 장모인 김장자씨가 최순실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우 전 수석의 인사를 청탁했다는 내용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최순실씨가 청와대·장차관·외교대사·군·법조계·관세청·민간기업 인사까지 각종 인사에 개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최순실’이라는 퍼즐 조각이 박근혜 정부 인사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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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4일 박근혜 대통령(당시)이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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