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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난 8월29일 한 법무법인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주도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을 위해 최근 무료 변론에 나섰다. 간단한 이유였다. “동병상련으로”.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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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채동욱 전 검찰총장
박근혜 청와대-국정원-법무부-언론 협업
정권의 ‘외부 힘에 의한 특단 조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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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난 8월29일 한 법무법인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주도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을 위해 최근 무료 변론에 나섰다. 간단한 이유였다. “동병상련으로”.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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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가 최근 찾아내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에 이첩한 문서가 있다. 2013년 7월 국정원(남재준 원장)이 작성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한 ‘(원세훈) 수사대응 문건’이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의 위기감이 문장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국정원은 “자체의 자정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외부의 힘에 의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썼다. 불법 대선개입을 주도한 정보기관이 대선개입의 최대 수혜자인 대통령에게 ‘눈엣가시’를 뽑아낼 모종의 ‘기획’이 필요하다며 ‘재가’를 요청한 것이다.
‘외부의 힘에 의한 특단의 조치’는 9월초부터 청와대-국정원-법무부-언론이 톱니바퀴처럼 물리며 현실화됐다. 채동욱이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지 4년3개월이 됐다. 그동안 그가 수사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채동욱을 임기 첫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뒤 5개월 만에 쫓아낸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돼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선개입 당시 원세훈의 수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의혹의 한가운데로 소환돼 있다.
총장 취임부터 강제퇴임 당시까지 벌어진 ‘막전막후’를 채동욱이 날짜별로 회고했다. <한겨레>는 지난 11월초부터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서울 도곡동에 위치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기초로 재구성한 그의 ‘강제퇴임 일지’엔 황교안, 이정현, 곽상도, 홍경식 등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사들의 이름이 줄줄이 등장한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수사 방해와 퇴임 과정이 그 이름들과 얽혀 시기별로 생생하게 재현된다. 8월29일 한 법무법인에서 변호사의 삶을 시작한 그는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이란 말로 지난 4년을 요약했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국가는 존립하기 어렵다. 국민을 전술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본 결과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박근혜 정권이 보여준 교훈이다.”
취임 동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지휘
원세훈·김용판 선거법 위반 적용 결정에
황교안 전화 걸어와 “내가 이쪽 전문가
선거법 위반 아니고 구속 안 돼” 요구 박근혜 전 대통령 저도 여름휴가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의 이상한 전화 한통
“대장님이 채 총장 관련해 내게 물었다”
그 후 김기춘 청 비서실장 전격 발탁
보수단체 ‘종북 총장 반대’ 시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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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하영씨가 2013년 1월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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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공소시효와의 싸움 2013년 2월초 아내의 농담 식사 자리에서 아내가 장난치듯 물었다. “당신, 후보에도 못 끼는 거야?” 며칠 전부터 언론에 차기 검찰총장 하마평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내의 말을 들으니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2월7일 3배수 포함 오후 5시쯤이었던가. 내가 박근혜 정부 첫 검찰총장 후보 3배수에 들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깜짝 놀랐다. (*이날 법무부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차기 총장 후보자로 김진태 대검 차장, 소병철 대구고검장, 채동욱 서울고검장을 확정·발표했다. 추천위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12년 도입돼 2013년 2월 처음 시행됐다. 전날 민주당은 수사 축소·은폐 혐의(직권남용 및 경찰공무원법 위반)로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정작 아내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총장 후보에 들었으니 자존심은 세웠네. 그래도 진짜 하면 머리만 아프니까 하지 마.” 당시는 사법연수원 동기들로부터 자기네 로펌으로 오란 이야기를 듣던 때였다. 내가 총장이 될 거라곤 그들도 예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3월7일 혹은 8일 황교안 “좀 만납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한테서 보자는 연락이 왔다.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이러더라. “이래저래 채 고검장이 적임자라고 생각해서 제청권자인 내가 당신을 추천하겠다. 그러나 임명권자는 대통령님이시니 보안 유지해 달라. 대통령이 반려할 수도 있다.” 특별한 이야기나 주문은 없었다. 아내가 농담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복잡해졌다. (*당시 언론들은 대체로 김진태 대검 차장이 유력하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었다. 채동욱과 사시 24회 동기인 그는 7살 연상인데다 경남 사천 출신이었다. 결과적으로 김진태는 채동욱이 강제퇴진 당한 뒤 후임 총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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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7일 법무부로부터 ‘(원세훈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라’는 연락이 검찰에 전달됐다. “모두 ‘만세’를 불렀다. 총장 옷 벗고 난리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파국은 막은 셈이었다. 불구속 기소 처리 전략이 위(청와대)에 먹혔나 보나 생각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나는 참 순진했다”고 말했다. 채 전 총장이 지난 7일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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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수사, 아킬레스건 겨누다 4월18일 특별수사팀 첫날 윤석열 등 수사팀을 총장 방으로 불렀다. 차 한 잔씩 주며 딱 한마디 했다. “흑은 흑이고 백은 백이다. 우리한테는 그게 유일한 기준이다.” (*4월19일 권은희, 경찰 수뇌부의 사건 축소·은폐 의혹 제기→ 4월22일 검찰, 김용판 수사 착수→ 4월29일 검찰, 원세훈 1차 소환조사.) 4월30일 국정원 압수수색 검찰 직원 70~80명이 나갔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압수수색(전산센터)은 절대 응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국가안보에 우려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압수수색이 12시간이 넘도록 진척이 없었다. 밤 10시에 내가 곽상도에게 연락해서 요구했다. “청와대가 국정원에 협조 지시해달라.” 곽상도는 “노력해보겠지만 잘 안 된다”고만 했다. 청와대는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원칙대로 처리하라”던 대통령의 말과 달랐다. 핵심 자료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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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30일 밤, 국정원을 압수수색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을 태운 버스가 서울 내곡동 국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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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1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아래)이 긴급현안질의를 위해 열린 국회 본회의에 출석해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압박에 대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모습.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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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사 썼다 불법사찰 파악 위해 유보
홍경식 “미 대통령처럼 감찰받아라”
“청와대가 지시하면 나간다” 승부수
결국 지시 떨어져 9월 말 총장직 사퇴 그를 임명하고 쫓아낸 박근혜는 파면
그 발단이 된 원세훈은 구속 재판 중
“현재 상황 이명박에게도 좋지 않아”
강제퇴진 뒤 산골짜기 은둔하며 절망
최근 블랙리스트 피해자들 무료 변론 _________
정권의 소리 없는 반격 6월14일 공소장 통째 유출 (*검찰이 원세훈을 기소한 날 아침이었다. 수사팀의 공소장 내용이 <조선일보>에 통째로 유출돼 실리는 일이 벌어졌다. 중대 사건의 검찰 공소장이 수사 결과 발표 전 특정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일은 검찰 역사상 초유였다. 공소장 주요 내용이 5개 면에 걸쳐 난도질돼 있었다. 검찰 수뇌부가 내부의 이견을 묵살하고 무리한 기소로 몰아붙였다는 뉘앙스였다. 이 무렵부터 청와대와 여권 핵심 주변에선 ‘채동욱 교체론’이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이듬해(2014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서 선거 승리를 위해선 채동욱을 교체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두 달 뒤 한 통의 전화가 채동욱에게 걸려왔다.) 8월초 이정현의 전화 아침에 간부 회의를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정현 홍보수석이었다. 그의 전화는 총장 취임 후 처음이었다. “채 총장, 잘 계셨나요? 좀 전에 제가 휴가 중인 대통령한테서 전화를 받았어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의 별장이 있던 경남 거제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이었다. 7월31일 페이스북을 통해 ‘저도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올려 화제가 됐다.) 이정현이 계속 말했다. “대장님(박근혜)이 제게 물으시더라구요. 채 총장을 이 정부가 임명 안 했다고 얘기한 적 있냐고요. 우리가 임명한 검찰총장이고 일 잘하고 계신데 왜 그렇게 말했냐고 배 터지게 혼났어요. 저는 혼났지만 채 총장님한테는 참 도움이 되는 말씀인 것 같아서 전해 드리려고 전화한 겁니다.” 그 자리에 있던 간부들은 “어찌 됐건 간에 총장님한텐 좋은 전화인 거 같다”는 반응이었다. (*잠시 6월7일로 돌아간다. 이날 청와대를 항의 방문한 ‘민주당 대선개입 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이정현 정무수석은 “채동욱은 이명박 정부가 지명한 검찰총장”이라고 말했다. 이정현 발언의 배경은 이랬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채동욱을 포함한 3인을 후보자로 확정한 시점(2013년 2월7일)은 박근혜가 대통령 취임(2월25일) 전 당선인 신분일 때였다. ‘형식상으로는’ 이명박 정부 막바지였다. 원세훈 ‘구속 기소’(6월14일)로 치닫던 검찰을 향해 마치 ‘채동욱은 우리 사람이 아니’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셈이다. 이 장면을 두고 채동욱을 말했다. “6월7일 이정현 발언을 보도로 접한 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첫째, 나를 임명한 것은 박근혜 정권인데 왜 저런 소리를 할까. 둘째, 나에게 쌓인 ‘불신임’을 이렇게 대외적으로 드러내는구나. 셋째, 자신들이 밀던 후보가 추천 단계에서 아예 탈락했구나. 그러니까 저런 말을 하지.”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은 8월5일 허태열 비서실장을 경질하고 후임에 김기춘을 전격 발탁했다. ‘저도 구상’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73살의 김기춘은 1960년 12회 고등고시에 합격했다. 1982년 사시 24회 출신의 채동욱에겐 까마득한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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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15일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채동욱 서울고검장(당시)이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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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6일 ‘그날’ 9월5일 “윤전기 돌아간다” 밤 11시. 검찰 직원들이 “총장님 개인 신상 관련 보도가 내일 나간다”고 했다. 1시(6일)에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다. “(‘혼외자’ 보도를 담은 조선일보) 윤전기가 돌아간다”고 했다. 검찰 직원들이 죄다 밤을 새웠다. 아내는 마침 친구들과 제주도에 놀러가 있었다. 9월6일 새벽 황교안의 전화 새벽 5시30분~6시쯤이었다. 황교안 장관한테서 계속 전화가 왔으나 받지 않았다. 그랬더니 아내한테 전화를 걸어 내게 전했다. “전화 좀 해달라.” 콜백은 하지 않았다. 9월6일 아침 7시 ‘퇴임의 변’과 유보 결국 터졌다. 아침 7시에 대검 기조부장을 불러서 두 문장짜리 퇴임의 변을 불러줬다.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을 운영하려 했습니다. 검찰총장직을 지키지 못하고 일신상 사유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보도 전 2주 동안 밑에서 차마 내게 올리지 못한 첩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좀 이상한 대목이 있었다. 나를 사찰해서 그 정보를 <조선일보>에 줬다는 이야기였다. (*8월 중순 곽상도 민정수석이 강효상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을 만나 채동욱의 개인정보를 넘겼다는 의혹을 신경민 민주당 의원도 제기(2013년 10월1일)했다. 둘은 대구 대건고 선후배 사이였다. 6월부터 국정원이 채동욱의 혼외자식 정보를 캤다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었다.) 그 첩보를 접한 뒤 생각이 바뀌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최소한 이 정황을 밝히고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를 흔드는 이유가 대선 개입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검찰 수사를 좌초시키기 위함이란 확신이 들었다. 바로 사표 쓰고 나가면 그들의 의도대로 놀아난 꼴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검찰에 대한 도리도 아니었다. 기조부장을 다시 불렀다. 퇴임의 변 ‘유보’. 9월7일 황교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토요일이었다. 아내와 차를 몰아 딸이 다니는 강원도의 고등학교 기숙사로 찾아갔다. <조선일보> 보도로 인터넷이 난리였다. 놀랐을 아이가 걱정됐다. 강원도로 가는 차 안 분위기는 침묵으로 꽁꽁 언 살얼음판이었다. 학교 기숙사 앞에 차를 세우고 아이를 불렀다. 아내는 운전석에 앉고 나와 딸이 뒷좌석에서 이야기했다. “혼외자가 뭔지 아니?” 아이는 “안다”고 했다. “친구들이 보지 말라고 해서 인터넷도 안 본다”며 아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4시30분쯤 되었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황 장관이었다. 받지 않았더니 계속 울려댔다. “장관님, 무슨 일이십니까?”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황 장관은 “오늘 저녁 당장 보자”고 했다. “지금 딸한테 와 있어 오늘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아, 그래요. 그럼 내일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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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30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퇴임식을 마치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떠나는 모습.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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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직속 수장 이명박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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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정치공작을 지휘한 의혹을 받고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9월26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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