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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후퇴 때 피난 내려와 살다 정든 곳” 김상명씨는 조영남 노래 ‘내 고향 충청도’를 고래고래 부른다. 듣는 사람은 없다. 빈 버스에서 그는 홀로 어릴 적 꿈이던 가수로 변한다. 영상캡쳐/조소영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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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각오로 38 살에 운전대 잡아 억척 삶 몰아
반짝이는 차에 오르는 사람마다 “어머 예쁘네!”
[영상 에세이 그 사람] 산타 버스 할매 김상명씨 누구에게나 삶은 자신만의 드라마고 영화다. 멋지게 포장하지 않아도, 극적으로 꾸미지 않더라도 웃음이 묻어나고 눈물이 배어난다. 감동은 그렇게 일상의 경계에서 꽃을 피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편집자) “산타 할매! 잘 좀 해봐.” 12월8일 서울 은평구 진관공영차고지. 저녁 공기가 차다. 130여 대의 버스들이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다. 471번 버스를 운전하는 전구(52)씨가 버스 앞문에 보라색 반짝이 줄을 다는 김상명(48·여)씨를 재촉한다. 얼음 같이 차가운 밤 공기에 입김이 연기처럼 피어 오르고, 급한 마음은 자꾸 반짝이 줄 사이로 엉킨다. “어휴, 진작 할걸….” 8시14분, 배차 시간이 빠듯하다. 김씨는 버스 차고 뒤 화장실로 들어갔다. 여자 운전사가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휴게실이 따로 없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남색 윗도리를 놓고 빨간색 산타클로스 옷으로 갈아입는다. 잠깐 할아버지 수염을 달아야 하나 고민한다. 낼 모레면 손자를 볼 ‘산타 할매’다. 겨울이면 그렇게 벼락치기로 산타 장식을 한 지 3년째. 덜컹거리는 버스 운전석에 앉은 지도 내년이면 10년이다. ▶운전석 바로 뒷자리서 주사 부리는 취객보다 무서운 건… 생활정보지에서 마을버스 운전기사 모집 공고를 봤다. 김씨의 연년생인 두 아들이 열다섯과 열네 살인 시절, 두 아들과 함께 새벽마다 우유를 돌렸다. 오토바이 운전이 서툴러 늘 길에 우유 팩이 나뒹굴었다. ‘이것보단 마을버스 기사가 돈벌이는 더 낫겠지.’ 대형 면허 딴지 5일 만에 마을버스 회사로 무작정 쳐들어갔다. ‘아줌마’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을버스 사장은 고개부터 저었다. “아줌마. 이거 하다 죽을 수도 있어. 그래도 할 수 있어?” 김씨는 “죽어도 해야 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두 아들의 먹성은 한창인데 당장 먹을 게 없던 시절이었다. 버스를 운전하면 빵이나 우유 정도는 아이들 손에 쥐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사장은 김씨에게 수습사원을 허락했고, 길을 익히는 훈련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 김씨는 서른여덟 살 나이에 시내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어머나! 예쁘네.”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전구가 701번 버스의 창문을 빨갛게 달궜다. 손님들은 버스에 올라서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서 오세요.” 산타 옷깃에 매단 마이크는 김씨의 낮은 인사를 천정에 붙은 스피커에 전달했다. 그러나 그의 인사를 주의 깊게 듣는 손님은 없다. 그의 목에선 쇳소리가 난다. 구파발, 독립문, 서부터미널…, 시내를 도는 구간은 짧지만 번잡한 도로 위에서 생기는 느닷없는 사고가 무섭다. 늦은 밤 거나하게 취해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 뒤통수에 대고 주사를 부리는 승객보다도 무섭다. 그래서 승객이 전부 내리고 외딴 버스 공영 차고로 돌아가는 길은 즐겁고 홀가분하다. 반사경을 힐끗 쳐다보니 버스가 비었다. 김씨의 입에서 노래가 절로 나온다. 노랫가락은 버스와 함께 신나게 달린다. 그렇게 김씨의 하루는 막차를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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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명(48·701번 버스기사)씨가 크리스마스 장식을 달고 있다. 벌써 3년째 벼락치기다. “소질도 없고 창의력도 없다” 했지만 ‘손님들이 우리 차를 보면 즐거울 것이다’ 고 했다. 영상캡쳐/조소영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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