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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17 16:41 수정 : 2012.02.17 17:17

디제이 최은용씨가 월미도 디스코 운전실에 앉아 활짝 웃고있다. 영상캡쳐/ 조소영피디

[영상 에세이 이 사람] ② 월미도 디스코 디제이 최은용씨
추억의 놀이기구 운전하며 손도 입도 바쁘다 바빠
15년 세월 녹여 “맘만 먹으면 이수근 같은 애드립”





 누구에게나 삶은 자신만의 드라마고 영화다. 멋지게 포장하지 않아도, 극적으로 꾸미지 않더라도 웃음이 묻어나고 눈물이 배어난다. 감동은 그렇게 일상의 경계에서 꽃을 피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편집자)

‘아이스게~끼, 꺄아아악!’

낡은 디스코가 덜커덩 덜커덩 돌아가면서 춤을 춘다. 빨간 의자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교복 소녀’들이 연방 엉덩방아를 찧는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빠른 유행가 음악소리와 뒤섞인다. 얼마나 소릴 질렀는지 어느새 목이 벌게졌다. 인천 월미도 놀이공원은 오늘도 시끌벅적하다.

마이크를 잡은 디스코 디제이가 먼저 말을 날린다. “이 추운 날 남자 일곱 명이 월미도에 우울하다. 우울해.” 야구 점퍼를 꼭 껴입은 일곱 소년이 정신없이 웃더니 말을 받는다. “디제이 형 잘 생겼어?” “예~!” “박쥐 같은 것들.” 놀이기구 꼭대기서 낮은 웃음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려온다. 반짝이 조명이 켜지고 디스코는 정신을 빼놓는다.

열아홉 나이에 목소리 좋다는 꼬드김에 덜컥


2월 초 월미도 공원. 여전히 겨울이 윙윙거렸다. 바닷바람은 매섭다. 코끝이 싸하다. 어묵 국물 한 컵 들고 최은용(34)씨가 디스코 운전실로 가는 사다리를 탄다. 그곳은 2평이 채 되지 않는 좁은 유리방이다. 은용씨는 언 손을 녹이고, 손님들이 주는 표를 받는다. 문 옆에 붙여놓은 조그만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살핀다. 그 안에서 15년째, ‘월미도 오빠’ 은용씨는 덜컹거리는 놀이기구인 디스코를 운전하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처음 시작은 열아홉 살 때였다. 집에서 가까운 인천 월미도의 작은 커피점에서 여름방학 동안 일을 했다. 놀이공원 형들이 우연히 가게에 들렀다가 ‘목소리가 좋은데 한번 일해보라’고 꼬드겼다. 그 땐 디스코 디제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후유….’ 열아홉 살 고등학생 디제이는 마이크 앞에서 한숨이 났다. 슬쩍 봐도 어린 티가 나는 그를 본 손님들은 ‘죽어라’ 말을 듣지 않았다. 안전벨트 없는 놀이기구라 난간을 잡지 않으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왕이다. 여기에 앉으면 타는 사람들은 모두 내 백성이다.” 소년은 자기 최면을 걸었다. “무조건 내 말 들어야 해, 나는 왕이야….” 어린 왕은 백성들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손잡이 꼭 잡으세요. 안 그럼 대충 태우고 내릴 겁니다.”

“날씨가 춥죠? 손 좀 비비세요. 출발합니다.” 겨울밤 월미도 디스코에 사람이 많지 않다. 드문드문 디스코의자에 앉은 손님들에게 디제이 은용씨가 말했다. 영상캡쳐/ 조소영피디

당시엔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

손님들은 다쳐서도 안 되지만 즐겁지 않아도 안 된다. 자유이용권이라는 것이 없는 작은 놀이공원에는 손님들을 모으는 재주가 제일이다. 타는 사람도, 아래서 구경하는 사람도 똑같이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백성을 웃기고 싶은 왕에게 디제이 형들은 운전하는 법 말고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디제이 세계에 교과서란 없다. 밤마다 혼자 마이크를 대고 또박또박 말을 지르는 방법을 익혔다. 웃는 것도 부단히 연습해야했다. 손님들이 자칫 비웃음으로 오해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젠 밥 먹는 것보다도 쉬워요. 손으로 조명을 켜고, 음악을 틀고, 운전하고, 눈으로 손님을 보고, 입으로 얘길 해요.” 입보다 빠른 것이 그의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박혔다. 꼬마 디제이에서 뱃살이 통통하게 오른 서른 중반의 아저씨가 된 그에게 15년 디제이 생활은 무엇이었을까?

별다른 놀이시설이 없던 시절, 월미도 디스코 디제이는 연예인 부럽지 않은 최고의 인기였다. 밸런타인 데이가 되면 엘란트라 승용차 짐칸에 초콜릿을 가득 싣던 그였다. 그래도 “맘만 먹으면 ‘1박2일’의 이수근 같은 애드립을 칠 수 있다”는 지금이 그의 전성기다. 낡고 촌스러운 디스코지만 운전실 곳곳 오래된 기계들에는 버튼마다 반질반질 윤이 나 있다. 그저 흘러간 세월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도 15년이다. 한 번도 월미도 디스코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까?

“월미도 밥을 15년째 먹고 있지만, 떠나고 싶어요. 떠난 적도 있어요. 좋아하는 만두, 메밀 가게도 여긴 없잖아요. 취객이 타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조카뻘 꼬마는 들리지 않는 줄 알고 욕을 해요.” 밤 12시에 일이 끝나는 남자, 웃음을 파는 직업은 여자 친구도 힘들어 했다. “디스코 운전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는데 몰라주는구나, 서운함이 들었어요.” 은용씨는 뭘 하든지 죽기살기로 하면 될 거라 믿고 그렇게 훌쩍 월미도를 떠났다.

어머머머, 우와와와. 월미도 디스코에 탄 손님들이 연신 엉덩방아를 찧자 놀이기구 아래서 구경하던 관중들이 웃고있다. 영상캡쳐/ 조소영피디

남들은 평생 웃을 걸 하루이틀에 다 웃어

“전화가 왔어요. 제가 필요하다고….”

두 달 뒤 월미도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때 고민도 안 하고 바로 월미도로 발길을 돌렸다. “내가 할 일이 이것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자랑스러운 직업은 아닌 것 같은데, 밖에서 보면 하찮은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 즐거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아요. 웃으면 오래 산다고 하는데 남들은 평생 웃을 걸 저는 여기서 하루 이틀에 다 웃은 것 같아요.”

떨어진 휴지를 줍던 공원 미화원은 여름에는 줄이 어마어마하다고 산만큼 손을 벌렸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도 손님들은 디스코를 찾았다. 대학 시절의 추억을 쫓아 온 마흔다섯 아저씨는 줄을 서며 웃었고, 조카와 디제이의 입담에 입을 가린 채 웃는 이모도 있었다. 은용씨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손 좀 비비세요. 어깨도 펴고요. 이제 출발합니다.” 은용씨의 낡은 디스코가 다시 춤을 춘다. 사람들도 덩달아 춤을 춘다.

글·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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