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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12 13:36 수정 : 2012.02.17 17:16

“풀빵 1등, 호떡 2등, 와플 아니.” 풀빵 가게 주인 이학능(45)씨가 손으로 순위를 메기며 웃는다. 아내 안인순(44)씨도 함께 웃는다. 우연히 서현역 앞에서 이 용달 트럭을 보게 되면, 한 번쯤 맛 봐도 좋겠다. 영상캡쳐/ 조소영피디

[영상 에세이, 이 사람] 트럭가게 농아인 부부

남편에겐 ‘정’이라고 하고, 아내에겐 ‘미안’

한 터 장사 11년, 주인도 손님도 따로 없다

“이거 찹쌀 맞아요?” “살 빼려고 고구마만 먹었는데, 나오면 꼭 이런 걸 사먹게 된다니깐….” “너 와플도 먹을래?” 

경기도 분당 서현역 앞. 퇴근길 사람들은 종종걸음을 한다. 3월 초 찾아온 꽃샘 추위에 입김이 모락모락 퍼진다. 작은 트럭 위 풀빵 기계에서도 김은 모락모락 퍼진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트럭 앞으로 모여든다. 풀빵이 익는 시간은 4분. 손님들은 기다리는 동안 재잘재잘 서로 말꼬리를 잡는다.

왜 늘 그렇게 웃냐니까 ‘고난’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풀빵 장사 부부는 말이 없다. 일에 지친걸까? 아니면 다툰걸까? 홍두깨로 쓱쓱 호떡 반죽을 밀고, 주전자에 담긴 반죽을 풀빵 판에 척척 내릴 뿐이다. 반죽 판 위 노릇노릇 빵이 익을 때마다 손님은 주인을 보고 손으로 숫자를 그렸다. “푸...빠..앙?” 좁은 낚시용 의자에 앉아있던 아내가 큰 목소리로 씩씩하게 따라 말했다.

“어?”

이 사람, 귀가 들리지 않는다. 말똥말똥 눈만 바라본다. “와플하고 호떡하고 섞어서 2천 원어치 되나요?” 답이 없다. 아내는 검지 손가락으로 머리 위를 가리켰다. 주인 대신 골판지에 박힌 글자가 말을 한다. ‘찹쌀 풀빵 6개 천원’, ‘기름 없는 호떡 1개 700원’. 유리통에 담긴 와플을 가리키며(와플 살게요) 검지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한 개만 주세요) 아내는 그제야 활짝 웃는다.


9월부터 풀빵 부부는 용달차를 끌고 서현역 앞에서 빵을 구웠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 있다. 남편은 ‘왕계란빵’ 을 만들 것이라 했다. 어깨를 다친 그가 종일 반죽을 미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영상캡쳐 / 조소영피디

아내는 늘 웃고 있다. 너무 많이 웃어서 볼 근육이 아플 지경이다. 왜 그렇게 웃느냐고 물었다. 그가 종이에 볼펜을 눌러 적는다. “고난.” 그는 어린 시절 삶을 ‘고난’이라는 한 단어에 담았다. 아버지는 만날 술을 마셨고, 어머니는 몸에 암을 품고 살았다. 한입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효도였다. 21살 나이에 그는 전북 고창 고향마을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식당에서 반찬을 만들고, 옷 수선 집에서 날품을 팔았다. 먹고살려고 부지런히 일했지만, 손님들이나 사장의 복잡한 주문을 듣지 못해 늘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때에 비하면 풀빵 장사는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  

날씨 굿으면 공치는 날, 얼굴에 일기예보가

어둑어둑 날이 저물고, 전철 역 옆 높은 쇼핑센터에서 불빛이 깜빡인다. 풀빵 장사 부부도 천장에 전등 2개를 밝혔다. 신문배달원이 석간 무가지를 한 부 놓고 갔다. 남편은 무가지를 펴들고 내일 날씨를 살핀다. 먼바다로 떠나는 어부처럼 길거리 장사에게도 일기예보는 중요하다. 눈이 오거나 비가 쏟아지기라도 하면 공치는 날이다. 아내는 구름이 많을 것이라고 했고,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손으로 비가 내리는 모양을 만든다. 아내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진다.  

1999년에 중고 트럭을 사고 미니 풀빵 장사를 시작했다. 그때도 서현역 앞이었다. 그러나 3년간 풀빵 장사는 신통치 않았다. 2002년부터 찹쌀 풀빵으로 바꾸고 나서 본격적으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비좁은 용달차 뒤칸에 한 사람이 앉으면 한 사람은 서서, 그렇게 2시간씩 교대로 와플, 풀빵, 호떡을 굽는다. 풀빵 반죽 10kg, 와플 3kg, 호떡 반죽 2kg가 하루에 동난다.

제일 인기가 좋은 건 풀빵이다. 아내는 남편보다 풀빵 굽는 솜씨가 좋다. 뜨거운 풀빵을 뒤집을 때마다 남편은 손을 데이는지, 오른손을 연방 턴다. 아내가 얼른 다가가 노릇노릇한 풀빵을 대신 뒤집는다. 솜씨가 날렵하다. 남편이 살풋 웃는다.

남편 이학능(45)씨가 8일 밤 풀빵 용달트럭에서 아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공책에 적었다. 아내 안인순(44)씨는 공책에 적힌 글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오랫동안 고생 시켜 미안해요.” 남편의 글이다. 영상캡쳐 / 조소영피디

남편은 전북 김제 사람이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던 아내와 달리 남편은 2살 때 열병을 앓다 청력을 잃었다. 교회에서 남편을 만났다. 당시 남편은 건설 현장에서 벽돌 짐을 나르고, 미장이 기술을 배우면서 역시 날품을 팔았다. 남편은 아내의 웃는 모습이 예뻤다. 아내는 남편에 대해 묻자 공책에 ‘정’이라고 적었다.

남편에게 아내 자랑을 부탁했다. 활짝 웃으며 수화를 했다. 그는 긴 수화를 했지만, 무슨 뜻인지 알기는 어려웠다. 다시 공책을 내밀었다. 활짝 웃던 남편은 종이를 꾹꾹 누르며 진지하게 적는다. “힘든 장사시켜서 미안해. 많이 팔고 성공해서 우리 딸 잘 키우자. 미안해~!” 아내는 공책을 받아들고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갔다. 남편의 미안하다는 이야기에 흐뭇한 웃음이 노릇노릇하다. 그리고 손을 머리 위로 모아 하트를 그린다.

어릴 때 딱 한 번 나들이 가본 곳, 60살 쯤이면 다시…  

아내에게 꿈을 물었다. “두 딸이 대학에 가고, 시집을 가면 아마도 60살 쯤 될 텐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이렇게 장사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가 되면 “장사 대신 남편과 부산에 놀러 가고 싶다”며 소박하게 웃는다. 왜 하필 부산일까? 어린 시절 가족과 딱 한번 나들이로 가본 곳, 그때 따뜻했던 기억이 가장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풀빵 트럭 앞 백화점 시계탑이 밤 10시를 가리킨다. 가벼워진 반죽 주전자를 앞칸에 담고, 아내와 남편은 천막을 걷는다.

 

“저 집 말이야. 참 잘해.”

11년 동안 한 터 한 우물 장사에 단골도 많다. 양말 노점상 할머니도, 3-2번 마을버스 운전사도 풀빵 트럭을 즐겨 찾는다. 그들은 단골손님 이상이다. 뜨내기 손님들이 복잡한 주문이라도 할라치면 부부 대신 주문을 척척 받아준다. 노점상 할머니는 풀빵 트럭을 기특한 듯 쳐다본다. “아내는 야무지고 남편은 성실하지. 듣지 못하는 것하고 맛은 상관없거든.”  

영상·글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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