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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13 15:39 수정 : 2012.02.17 17:28

부산 사직구장 바깥에서 만난 사람들은 선수들의 축제가 아닌 관중들의 축제를 만들고 있다. 영상캡쳐/ 조소영피디

[영상에세이, 이사람] 사직구장 바깥의 부산 야구팬들
‘스포트라이트’는 비추지 않아도 흥겨운 ‘관중의 축제’ 물결
자갈치 시장에도, 까까머리 중학생에게도 꿈이 날아오른다





1. 10년 뒤엔 ‘알바’가 아닌 ‘관중’이고 싶은 은하

“시원~한 음료수 오징어 꽈배기 있어요!”

노란 바구니를 들고 비탈진 계단 3층까지 비집고 올라가 간신히 콜라를 팔았다. 1루부터 ‘인간 파도’가 일렁거렸다. “와 아아~” 순식간에 파도가 요란한 웃음소리와 함께 관중석을 흔들고 지나간다. 봄이라지만 아직 밤 공기는 차디차다. 서늘한 바람이 볼을 때리고 갔다. ‘휘유~’ 외야 전광판 뒤로 걸어가 한숨을 돌렸다.

7회 초. 롯데 마무리 이정훈이 마운드에 올랐다. “경기요? 거의 못 봐요. 등 뒤에 함성 소리가 커지면 오늘 롯데가 이기겠다~ 해요.” 옥색 학교 체육복 바지에 매점 조끼를 걸친 김은하(17)는 작년에 사직야구장 매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9회까지 선수들이 붉은 흙 위를 밟으며 내달리듯, 열일곱 살 은하도 자기의 관중석 그라운드를 선수들과 함께 뛴다. 삼겹살을 파는 것보다 열심히 하면 더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고 싶은데 어쩌면 등록금에 보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응원하는 사람들 구경하는 게 진짜 재밌어요.” 사과머리 소녀는 까르르 웃었다. “날아올라 저 하늘 작은 별이 될래요.” 야구장 스피커로 그가 좋아하는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야구와 함께 은하의 봄이 시작되었다.

2. 버스는 야구를 싣고

“기사 양반 소리 좀 크게 틀어주이소~”


올 시즌 해결사로 떠오른 홍성흔이 방망이를 참을지, 아니면 내칠지 조마조마한 순간 승객은 ‘라디오 볼륨을 높여달라’고 안달한다. 중요한 순간에 ‘만덕’ 터널을 지나간다. 늘 그랬다. 30년째 금곡~ 만덕~ 동래~ 사직운동장~ 서면…. 이 길을 빙빙 돌며 살았다. 사람들이 미어터질 듯 버스를 비집고 올라왔던 프로야구 원년 때도 111번 국제여객 버스기사 석봉환(54)씨는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롯데가 경기하는 날은 대박이지요. 술 취한 사람도 많고 힘은 좀 드는데, 운동 좋아하는 사람 치고 그래 나쁜 사람은 없지예.” 사직 야구장 지날 때는 한번 야구장 속으로 들어가 같이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간절한데 아직 그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만날 라디오로 듣지예. 어제 이겼지 않습니까.”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야구는 멈추지 않는다.

3. 사직운동장 담장 넘어 스트레스도 ‘확’

남포동 롯데백화점 정문 앞, 롯데 4번 타자 이대호의 거대한 인형이 우뚝 서있다. 꽃잎 떨어지는 자갈치 시장. 갈매기가 사람들의 새우깡을 야금야금 뺏어 먹고 있다. 낡은 배를 고치는 수리공 차종선(60)씨가 “이대호는 인간성이 참 좋지. 그자?” 동료에게 물었다. “그걸 우째 아는교, 만나봤는교?” 동료가 농을 친다. “어. 만나보진 안 했지.” 그가 웃는다. 눈가의 주름이 배처럼 흔들린다. “요새 롯데가 못해서 우짭니꺼?” “야구는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는기라.” 작년에 일 마치고 술꾼 친구를 불러내 사직야구장에 한번 찾아갔노라 말했다. 이대호는 그날 홈런 한 방을 쳤다. “이대~호!” 소리치니까 스트레스가 쫙! 풀렸다. 그래서 “대호는 인간성이 좋다.” 기름칠 된 푸른색 작업복 소매로 이마 땀을 훔친다. “또 한 번 사직을 가야할 긴데….” 이대호는 사직 운동장 담장을 넘기는 장외 홈런을 매일 ‘부산 갈매기들’의 가슴에 쏘고 있다.

4. 중학교 야구부라고 모두 롯데 팬?

“롯데가 이기면 버스에 사람이 많아서 짜증나요. 집까지 서서 가야 하잖아요.”

사직중학교 야구부라고 해서 모두 롯데의 팬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천에서 “야구 하겠다”고 부산까지 짐 싸 내려온 ‘재팬 몽키’ 정진욱은 삼성 팬이다. 자기가 팀 에이스라 뽐내는 투수 권재연은 투수 조정훈이 좋지만, “롯데 팬은 아니라”고 싱긋 웃는다.

구덕운동장에서 대천중과 시합을 한 날이었다. 그날 이겼기 때문일까? 감독은 훈련을 쉬어도 좋다고 했다. 2학년 외야수 남다빛찬(14)은 언덕길을 뛰어내려 와 사직야구장으로 갔다. “언젠가 내가 여기 설 거라고 생각하니까 좋은데요! 힘들어도 프로선수가 될 꿈이 있으니까 참는 거죠.” 경기가 끝나면 또 멀리 양산 집까지 50번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신문지를 흔들며 통닭을 삼키는 아저씨들 사이에 거뭇거뭇 빼빼 마른 남다빛찬이 “마!” “ 마!”라고 따라 외쳤다. “우와~. 홍성흔이 홈런 쳤어요!” 사직중 야구 유니폼을 주먹에 꼭 쥐고 있다. 왜 들고 왔을까? “가르시아 홈런공 받으려고요. 언젠가는 꼭이요.” 롯데 팬이 아니라도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야구는 신나는 꿈이다.

5. 통닭 한 마리에 야구표만 가지면 …“알지?”

운동장을 구석구석 비추던 ‘스포트라이트’는 관중석을 살짝 비켜가더니 그라운드에 꽂힌다. 선수가 아니면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그 무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래도 통닭 한 마리에 8천원짜리 야구표를 가지면 그들과 호흡할 수 있다. 선수도 관중도 한 마리의 갈매기가 돼 훨훨 날아가고 싶을 뿐이다. 너무 과한 사랑을 스포츠에 주지 말라고 누군가는 말린다. 그러나 부산 사직야구장 바깥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선수들의 축제가 아닌 관중의 축제라고 말이다.

더그아웃에서 짐을 챙겨 야구장 밖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이대호를 보겠다고 까치발로 서서 부르던 그들은 집으로 돌아와 그 감동을 “삶의 활력”으로 바꾼다. 일년 백서른 세 번의 경기를 모두 찾을 수 없지만, 이대호의 홈런은 자갈치 시장 부두에 정박한 배를 수리하는 종선씨의 마음까지 날아가고 있다. “알지? 대호가 참 인간성이 좋아. ”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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