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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20 11:17 수정 : 2012.02.17 17:26

"광고 나가고, 디제이 멘트 나오고, 노래나가면 그다음 차례에요" 방송 4분전, 김유리 리포터(30)가 준비하고 있다. 헤드폰을 끼고, 마이크를 잡고, 라디오 볼륨을 줄이고, 선풍기를 끈 뒤 숨을 크게 들이쉰다. 영상갈무리/조소영피디

[영상에세이, 이사람] 교통리포터 김유리
6년째 교통정보 새벽반… 한 번도 방송 ‘펑크’ 낸 적 없어
”1분 방송이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방송 하고 싶어요”

“57분 교통정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도로상황, 많이 당황이 됩니다.”

16일 아침 6시57분, 서울지방경찰청 6층 ‘교통정보센터’. 손바닥만 한 안내판이 붙은 복도 한쪽으로 6개의 부스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하지만 7명의 교통 리포터는 저마다 방송중이다. 이들의 주 업무는 시시각각 변하는 교통상황을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전하는 일이다. 이들 가운데 문화방송 라디오의 김유리 리포터가 있다. 김 리포터는 1분짜리 교통정보지만, 깔끔한 진행과 맛깔스런 애드리브로 ‘57분의 여자’로 불리며 인기가 대단하다.

57분 교통정보 김유리 입니다


# ‘57분의 여자’ “차는 막혀도 ‘방송 펑크’는 없다”

작은 방송 부스는 매시간 긴장의 연속이다. 방송 원고를 미리 준비할 수 없기 때문에 방송이 나가기 15분전, 그러니까 42분께부터 폭풍전야다. 취재와 원고 작성이 벼락처럼 이뤄진다. “성산대교 남단 쪽 고장이 난 차인가요? 사고인가요? 아, 사고라고요. 고맙습니다! 뚝” 손에 쥔 초시계는 ‘째각째각’ 신음을 토한다. ‘갸르르르르’ 물로 입을 헹구고, 다시 초시계를 본다. 호흡이 빨라진다. “광고가 나가고, 진행자가 멘트를 하고, 노래 한 곡 흐르면, 바로 다음이다. 후웁….”

태풍 곤파스가 세상을 쓸어버린 아침에도 57분에 ‘교통정보’는 어김없이 나왔다.“마치 ‘2012’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가로수가 뽑히고 여기저기 펜스가 춤을 추는데요. 안전 운전하시길 바랍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받은 느낌 그대로를 멘트에 담았다. 그렇게 6년째 교통정보 새벽반을 맡고 있지만, 한 번도 방송을 ‘펑크’ 낸 적이 없다.

“다른 직장인들은 지각을 하면 좀 늦는구나 하겠지만, 제가 늦으면 바로 펑크 나는 것이고, 방송에 차질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러면 방송을 기다리는 분들이 ‘이 사람 뭐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익숙해져서 습관처럼 일어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송은 나가야 합니다.”

"언제나 당신곁에, 아임유어에너지. 57분 교통정보를 알려드립니다." 김유리 리포터는 씩씩하게 도로상황을 전달했다. 아침 출근길 교통 방송 벌써 6년째다. 그래도 늘 긴장된다고 한다. 영상갈무리/ 조소영피디

# ‘1분 방송’이지만…

그래도 항상 걱정은 많다. 막히는 길, 막히지 않는 길을 안내해주는 것이 그의 일인데, 그게 꼭 들어맞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청취자들에게 “막힌다고 해서 딴 길로 왔는데, 그 길이 더 막힌다”고 항의를 받는 일도 자주 있다. 그는 “내 길도 잘 찾아가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길을 안내하고 있으니까”라며 “늘 가던 길 말고 덜 막힐 거라 생각해 돌아가다가 더 막히는 것처럼 도로의 사정이란 늘 그렇다”고 웃어넘겼다.

남들은 ‘1분 교통정보 방송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 리포트는“아직까지 방송이 아니면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직업의식이 대단한 사람이다. “티브이에 출연하고 주목받으려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라디오를 좋아하고 현재의 위치에서 내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꼿꼿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죠.”

김 리포터는 “방송에 내 목소리가 나가고, 내가 하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웃어주거나 반가워하거나 좋아해 줄 때, 그 자체가 반응을 떠나서 너무 좋다”며 웃었다.

방송을 위해 그는 교통정보가 나가는 프로그램은 진행자의 여는 말(오프닝)부터 꼼꼼하게 모니터링한다. 1분 방송이지만 진행자와 대화를 주고받아야 할 때가 있고, 프로그램 분위기를 파악해 둬야 매끄러운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분짜리 방송에도 리듬이 있다는 사실, 선배들로부터 배운 57분 교통정보의 철칙이다.

“사실 교통정보 딱 1분 하는 것이고, 그냥 기계적으로 할 수도 있어요. 매일 밀리는 곳이나 지금 교통상황을 담백하고 건조하게 전달하면 그만일 수도 있죠. 그러나 저는 진심이 느껴지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제 방송을 들으면 동생한테 이야기하듯, 첫째딸이 재잘거리듯이 그런 식으로 들었으면 좋겠어요.”

# 교통 리포터로 추석 나기

“명절이 끝나고 몸살이 나서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어요.”

다시 추석이 다가온다. 1년 중 교통 리포터들이 가장 바쁘고, 그들의 입이 가장 주목받는 시절이다. 한 시간에 한번 꼴이던 교통정보는 디제이가 예고 없이 시경을 호출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긴장을 풀지 못하고 대기해야 한다. 또 명절 특집방송에 교통정보는 빠지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교통 흐름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취재도 원고 작성도 더 급박하게 이뤄진다. 그러니 몸이 고달픈 것은 당연하다. 김 리포터는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명절 때 일을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번 추석은 좀 여유가 있을 것 같다”고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추석 연휴가 긴 데다, 교통정보를 얻는 방법도 다양해졌고, 여행도 많이 가니까 상대적으로 교통 체증이 덜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도 라디오 교통정보에 덜 의존할 것이란 이야기다. 대신 김 리포터는 “다들 휴가를 길게 쓰니, 연휴 다음날 아침이 오히려 막히더라”며 “명절 분위기가 점점 달라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차마다 내비게이션이 있고, 스마트폰이 가장 빠른 길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김유리 리포터가 들려주는 57분 교통정보는 이번 추석 연휴에도 막힌 도로를 뻥 뚫어주는 청량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57분 교통정보 앞에 붙는 광고 그대로 말이다. “아임 유어 에너지.” 영상·글/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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