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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22 20:02 수정 : 2012.05.26 22:49

현대무용극 ‘서랍 속의 시간’ 공연한 탈학교 청소년 3인방

학교왕따 문제 무용극으로 풀어내

“얘들아, 틀려도 절대로 당황하면 안 된다.” 무대 뒤 어둠 속에서 단장은 나지막하게 한번 더 일렀다. 무대 위로 천천히 조명이 비추자 13명의 무용수는 박자를 세었다. “뛰어, 지각이야 지각!” 수백 번 연습했던 첫 대사가 경쾌하게 막을 열자 3명의 주인공 아이들이 무대 속으로 들어갔다. 음악이 귀를 타고, 조명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아이들의 표정은 열정으로 빛났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구로아트밸리 2층 공연장에서 학교내 집단 따돌림을 현대무용으로 풀어낸 무용극 <서랍 속의 시간>이 무대에 올랐다. 서울시대안교육센터와 파사무용단(단장 황미숙) 그리고 아름다운학교가 학교 밖 아이들의 사회 진출을 도우려고 만든 ‘징검다리 프로그램’의 첫 작품이다. 공연은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을 재미있게 풀어내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날 공연은 이야기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고 연기해 더 특별한 무대였다. 오빠를 따라 대안학교에 갔지만 기대와 달라서 1년 전 그만 둔 이연주(15·오른쪽)·남보다 큰 체격 탓에 발레를 포기하고 대안학교로 간 정선우(16·가운데)양, 충남 금산의 간디학교에서 춤을 배우고 싶어 올라온 장영수(18·왼쪽)군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난 7월 오디션에서 17명의 지원자 가운데 뽑혔다.

황미숙 단장은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아 정해진 기한에 공연을 할 수 있을 만한 소질과 열심히 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아이들을 뽑았다”고 말했다. 현대무용을 한 번도 본 적도 해본 적도 없었던 아이들은 지난 석달간 서울 양재동 연습실에서 전문 단원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휴대폰에 ‘제발 하느님 도와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날씬한 모델 사진을 깔아 놓은 선우는 공연을 앞두고 3주째 고구마로 밥을 대신하며 체중조절에 신경을 썼다. 공연을 마친 뒤 선우는 “생쌀이라도 먹고 싶다. 다시 살이 찌겠지만, 오늘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며 웃었다.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은 게 그에겐 가장 큰 성과로 보였다. 막이 내린 뒤 가장 큰 환호를 받은 사람은 영수였다. 충남 금산에서 올라온 영수의 친구들이 객석에서 “장영수”를 외치며 응원해준 덕분이다. 땀으로 눈화장이 번진 얼굴 가득 활짝 웃으며 내려온 영수는 “관객들이 누가 프로이고, 누가 아마추어 단원인지 모르도록 잘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막내 연주는 대안학교를 그만둔 이유를 종이에 써 엄마를 설득할 정도로 생각이 깊은 아이다. 그래도 연주의 어머니 정선훈(47)씨는 “중학교 2학년을 마치지 못한 채 학교 밖으로 나왔을 때 세상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맨 앞자리서 군무를 척척 해낸 막내딸을 흐뭇하게 지켜본 정씨는 “제 몫을 훌륭하게 해내는 연주를 보면서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글·사진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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