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오래 전 이야기.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을 때 적지 않은 소란이 있었다. 영화제 출품작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크래쉬>가 몇 몇 장면이 잘린 채로 상영됐다. 영화제에선 무삭제 버전으로 상영한다고 했지만 극장에 도착한 것은 당시 수입사에서 검열을 거치고 보낸 필름이었다. 당시 영화 주간지 <씨네 21>에서 기자로 일했던 필자를 비롯해 대다수 언론에선 난리가 났다. 국제영화제 관행 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영화감독도 자기 영화 일부를 자르고 상영하는 국제영화제에 출품을 할 리 만무했다. 2000년 당시의 사전심의제도가 심의를 빙자한 사실상의 검열이므로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사전 심의제도는 한국영화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나쁜 제도였다. 앞서 언급한 국제영화제에서의 검열 사례는 3회 이상 열린 국제영화제에 한해서는 사전 심의를 면제한다는 규정이 생기면서 무마됐다. 그렇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사전심의제도를 둘러싼 해프닝은 이루 말할 수 조차 없다. 1990년대 말 지금은 없어진 동숭시네마테크에서 피터 그리너웨이라는 영국 감독의 특별전을 할 때 행사 관계자는 시도 때도 없이 현장 체크를 하는 구청 공무원 때문에 속을 많이 썩였다. 그 감독의 영화에 곧잘 등장하는 누드 장면에 모자이크를 덮은 필름을 상영하는지 여부를 두고 그 공무원은 불타는 사명감으로 불철주야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애국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라고 하겠지만 실은 현재 진행형 상황이다. 정치적 입장 차이를 드러낸 이유로 제한상영가 극장이 없는데도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는 영화들의 사례가 꾸준히 있어왔다. 상업적인 극장 배급망을 타려면 어쩔 수 없이 상영등급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등급을 전혀 받지 않고 어떤 영화든 자유롭게 상영하고 토론할 수 있는 해방구가 영화제였다. 규모가 큰 국제영화제부터 서울아트시네마와 같은 시네필의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화들이 축제의 명찰을 걸고 자유롭고 관대한 토론의 장에 올랐다.
|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