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27 22:26
수정 : 2012.03.01 21:00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건강검진 등 예방의료를 이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평소 건강관리를 잘할 수 있는 고소득층이 예방에도 적극적인 반면, 건강을 챙길 여유가 없는데다 중병에 걸릴 가능성도 큰 저소득층은 예방의료 서비스를 못 받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소득에 따른 예방의료 양극화 실태와 대안을 3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연봉 1억’ 40대 회사원 이씨회사 검진에 자비로 또 검진
이상 없어도 수백만원 들여
“40대 돌연사·암 많다는데…”
‘의료급여 1종’ 50대 김씨 5대암 검진비 지원 받아도
병원 못가다가 암 온몸에
“폐 사진만 일찍 찍었어도…”
연봉이 1억원가량인 회사원 이아무개(45)씨는 올해 초 이른바 ‘빅5 병원’에 드는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 상품은 250만원가량으로 비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어떤 질병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는 말에 카드를 긁었다. 그는 지난해와 3년 전에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이 아닌 대형병원의 검진 상품으로 검사를 받았다.
이씨가 이번에 받은 검진은 종합 암 검진과 심장 및 혈관질환에 대한 종합검사로 구성돼 있었다. 종합 암 검진에는 위장 및 대장 내시경 검사를 비롯해 간 초음파 검사와 갑상샘 초음파 검사, 전립샘암 표지자 및 각종 암에 대한 종양 표지자 검사 등이 들어 있었다. 전신 펫(PET·양전자단층촬영) 검사와 뇌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도 받았다. 심장 및 혈관질환 종합검진에는 심장초음파, 관상동맥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 심장 운동부하 검사, 경동맥 검사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씨는 “검사를 받을 때 의료진은 ‘이 검사들은 모두 매우 비싸 하나씩 따로 받으면 돈이 훨씬 많이 들지만 종합상품으로 나와 이 정도로 낮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실제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삼성병원, 서울대병원 등 ‘빅5 병원’의 전신 펫 검사는 보통 150만원 정도이며, 뇌 엠아르아이나 관상동맥 시티 등도 수십만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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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등 예방의료에도 소득에 따라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환자가 시티(CT)를 찍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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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진 결과 비만에 해당되고 혈압이 조금 높다는 것 빼고는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비만은 4~5년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고, 혈압도 약을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은 이전 검진에서도 나온 바 있었다.
이씨처럼 40대 중반인데도 수백만원대에 이르는 종합검진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씨는 “우리 회사만 하더라도 30대 후반부터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 상품에 몇 가지 추가 검사를 받거나 종합검진을 한 번 정도 받아본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언론 보도를 보면 40대 돌연사나 암이 많다고 하는데, 이 정도 돈은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빅5 병원’에 드는 한 대형병원의 건강검진 상담 간호사는 “건강검진은 주로 50~60대가 많이 받지만, 건강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연말에나 연초에는 40대 비중도 꽤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소득층의 ‘건강 염려증’을 자양분 삼아 고가의 검진 상품이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건강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예방의료조차 받지 못하는 ‘의료 소외층’도 여전히 많다.
서울 홍제동에 사는 김아무개(57)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의 한 시립병원에 입원중이다. 지난해 6월 기침이 나기 시작해 동네의원을 찾아 감기약을 몇 주 먹었는데도 기침이 멎지 않았다. 가슴부위 단순방사선 촬영을 한 결과 폐에 덩어리가 있는 것이 확인돼, 집 근처 큰 병원을 찾았다. 시티 검사에서 폐암이 의심됐고, 조직검사 결과 폐암으로 확진됐다. 주변에 암 세포가 전이됐는지 확인하려고 복부 등에 대한 시티 검사를 해보니 간에도 암 세포가 전이된 상태였다.
김씨는 지체장애가 있는데다 소득도 없고 임대주택에 살고 있어 의료급여 1종에 해당된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도 의료급여 범위에 포함되면 진료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동안 가슴 단순방사선 촬영 등과 같은 일반건강검진 혜택은 받을 수 없었다. 올해부터 비로소 의료급여 수급권자도 일반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김씨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였기 때문에 위암, 간암, 대장암, 자궁경부암, 유방암 등 5대 암에 대한 검진은 비용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받지 않았다. 5대 암 검진의 중요성을 전혀 알지 못했던데다, 암 진단을 받더라도 치료비를 대기 힘들어 검진을 받을 생각을 안 했다고 한다.
김씨처럼 의료급여 수급권자이면 5대 암 검진에 대해서는 정부가 전액 비용을 지원하지만 검진을 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암 조기검진 사업 수검률 현황’을 보면, 암 검진 대상 의료급여 수급권자 약 104만명 가운데 검사를 받은 사람은 27만6000여명으로 수검률이 26.5%에 불과했다. 전체 암 검진 대상자의 검진 비율 56%(국립암센터 ‘2011년 암 조기검진 수검행태 조사’)의 절반에 못 미친다. 더욱이 폐암의 경우 아직까지 적절한 조기진단 검사법이 확립되지 않아 5대 암 검진 항목에 포함돼 있지 않다.
김씨는 병원에서 폐암 치료가 쉽지 않을 정도로 퍼졌다는 말에 더이상의 검사나 치료를 포기했다. 집으로 돌아온 김씨는 별다른 치료 없이 버티다가, 통증이 극심해지자 암이 확인된 지 다섯달 만인 지난해 11월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기 위해 시립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초기에는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온몸에 통증이 퍼졌고 구토가 심해 거의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영양분은 수액주사로 공급받고 있으며 사실상 임종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김씨의 보호자는 “의료진이 ‘조금만 일찍 병원을 찾거나 평소 건강검진에서 폐 사진이라도 찍어봤으면 좋았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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