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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에이미>에서 에스메 역을 맡은 윤소정(아래)씨와 프랭크 역의 이호재씨가 1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오랜 생활 함께 호흡을 맞춰온 이력을 보여주듯이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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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짝]
연극배우 윤소정-이호재
“극장에 가야 한다는 말에 등 떠밀려 가진 말아요. 나는 연극이 좋은 거라고 하니까 의무감에 극장을 찾은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로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면 아주 소수의 관객만 놓고 하면 되니까.”
연극 <에이미>에서 사위 ‘도미닉’이 “저희 세대는 극장에 잘 안 간다”고 빈정거리자 장모인 배우 ‘에스메’가 점잖게 충고하는 말이다.
1973년 ‘초분’서 첫 호흡 맞춘 뒤부부로 때론 애인으로 13편 함께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중인 이 연극에서 에스메 역을 맡은 윤소정(69)씨와 ‘프랭크’ 역의 이호재(72)씨의 50년 연기 인생이 그러했다. 두 배우는 1973년 연극 <초분>(오태석 작·유덕형 연출)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이래 올해로 40년째 한 무대에서 연극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동안 두 사람이 부부, 애인 등 남녀 주인공으로 함께 한 연극은 <태>(1974), <출세기>(1974), <매디슨카운티의 다리>(1996), <비 오는 날의 축제>(1997),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2002), <졸업>(2003), <에이미>(2010), <그대를 속일지라도>(2010), <응시>(2011) 등 13편에 이른다. <초분>과 <태>, <출세기>, <에이미> 등은 여러 차례 앙코르 공연을 했다. 심지어 이호재씨가 처음 출연한 영화인 <이혼하지 않은 여자>에도 윤소정씨가 함께 출연했다. 원로 연극평론가 구히서씨가 “무대 위에서 매력 있는 여배우”라고 극찬하는 윤소정씨와 ‘연기의 교과서, 대사의 달인’으로 불리는 이호재씨 연기 커플을 지난 18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났다. “40년 세월을 같은 무대에 선 경우는 한국에도 없고, 외국에도 없을 거야. 국립극단에서 오랫동안 함께하셨던 백성희(88) 선생님과 고 장민호(1924~2012) 선생님도 우리만큼은 아닐 거예요. 더군다나 이호재씨나 나처럼 서로 다른 극단에 있으면서 오랜 세월 같이 연극을 한 이들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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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에 함께 한 연극 <그대를 속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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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은 옛일 떠올리며 깔깔깔
얼굴 붉히며 다툰 적? 딱 2번 있어 이호재씨는 동랑 유치진(1905~74)이 설립한 서울연극아카데미(현 서울예대 연극영화과) 1기를 졸업한 뒤 1963년 친구 김벌래(72·홍익대 교수)의 극단 ‘행동무대’에서 <생쥐와 인간>으로 배우 데뷔를 했다. 그는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 동랑레퍼터리극단(1964~75)과 국립극단(1975~80)의 배우 생활에 이어 극단 산울림, 극단 성좌, 현대극장 등과 작업하면서 150여편에 출연했다.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 연기상, 이해랑 연극상, 한국배우협회 연기상, 백상예술대상, 동아연극상 등을 휩쓸었다. 2011년엔 정부에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두 사람은 연극 <초분>에서 처음 무대에서 만났으나 그에 앞서 1972년 연극 <쇠뚜기 놀이> 덕분에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연극계에 비밀리에 떠도는 ‘연희동 방뇨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윤소정씨가 오태석(73)씨 극작·연출의 <쇠뚜기 놀이>를 구경하려고 드라마센터에 갔다가 배우 이호재씨와 전무송(72)씨의 연기에 반했다. 당시 윤씨는 톱탤런트 오현경씨와 결혼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인기 탤런트였다. 무명의 희곡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태석씨는 집이 멀어서 연세대 선배인 오현경씨와 윤소정 부부의 서울 연희동 집에 살다시피 했다. “오태석씨에게 ‘그 두 남자 정말 잘 놀더라. 정말 멋있고 잘생겼어. 한번 연희동 우리 집에 데려와’ 하고 부탁했어요. 그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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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공동출연한 연극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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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의 달인답게 정말 잘 외워요” “소정씨, 미모에 연기력까지 겸비
모든 역 소화 가능한 매력적 배우” 가장 기억나는 작품을 묻자 윤씨는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를 꼽았다. “작품 자체가 애잔하다”는 것이다. 이호재씨는 칠순 기념으로 공연한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들었다. 그는 “물론 장난기가 섞여 있는 작품이긴 했지만 옛날 우리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소개했다. 40년 연극 지기로 서로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지금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배우들을 보라는 거야. 한 가지 유형의 연기는 꽤 해요. 그런데 모든 역할을 다 소화할 수 있고, 다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는 윤소정씨가 유일하죠. 사랑스런 여인 역(<매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부터 그 엄격한 수녀 원장 역(<신의 아그네스>), 그 강렬한 강철 같은 여자 역(<강철>)까지 두루 잘할 수 있는 여배우가 어디 있느냐 말이야. 따져 봐요 한번.”(이호재) “이호재씨는 무대 위의 삶밖에 모르는 천생 배우죠. 그리고 무엇보다 잘하잖아요. 전혀 연기하는 것 같지 않게 편하게 해요. 대사의 달인답게 빨리 정확하게 외우고 아무리 큰 무대도 (관객에게) 다 전달하죠. 그래서 이호재씨와 같이 작업하면 편안합니다. 그동안 이호재씨와 하고 싶은 작품은 다 한 것 같아요. 굳이 욕심을 낸다면 <그대를 사랑합니다>같이, 노인네가 되어서 러브스토리나 해볼까나.”(윤소정) 구자흥(68) 명동예술극장 극장장은 “그 연배에 연극무대에서 살아남은 분들 가운데서도 호흡이 잘 맞는 상대역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서로한테 행운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두 분의 식지 않는 무대 열정은 우리 연극계의 귀감”이라고 말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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