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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스폰지>의 편집장과 기자로 인연을 맺은 이후 십수년간 대중문화를 비롯한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글을 써온 이명석(오른쪽)씨와 박사씨.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문화광장에서 이씨가 기획한 스윙 댄스 공연을 앞두고 ‘차려입은’ 두 사람의 모습은 그들의 수다만큼 심상치않은 ‘포스’를 뿜어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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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짝]
‘일인다역’ 이명석과 박사
‘자칭 저술업자’ 이명석‘인문주의 엔터네이너’ 박사
14년 전 웹진 ‘스폰지’ 에서
편집장과 기자로 만난 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필력으로
전방위 장르에서 종횡무진 도마 위에 놓고 비틀자!
문화를 더 쉽고 더 가볍게
대중들에게 알렸던 그들
“요즘은 지적인 작업을 하는
세력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부터 좀 진지해질까?” 이 두 사람, 첫인상이 세다. 마치 홍명보 감독이나 엄홍길 대장을 처음 만났을 때 같은 센 ‘포스’가 느껴진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달 30일 서울 경복궁역 부근 한 카페에서 마흔세살 동갑내기 이명석과 박사를 만났다. ‘이명석이란 이름을 가진 박사’도 아니고, 필명 ‘박사’의 진짜 이름이 ‘이명석’도 아닌, 말 그대로 이명석과 박사 두 사람이다. 만화 평론부터 개그 평론까지 박사 수준의 해박함을 자랑하는 이명석, 글쓰기부터 그림 그리기까지 다재다능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팔방미인 박사. 대중문화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온갖 매체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이들의 이름을 한두번은 들어봤을 터다. 근엄한 1970~80년대를 지나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은 70년대생들이 문화판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1990년대 후반 이후, 이 두 사람은 문화 관련 ‘잡글’도 평생의 직업이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해왔다. 저술업자 vs 젖은 낙엽 이명석씨는 스스로를 ‘저술업자’라 부른다. 1990년대 말 웹진의 원조격이었던 잡지 <스폰지> 편집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온갖 다양한 문화 생활 분야를 넘나드는 글쓰기로 수많은 1970년대생 ‘덕후’(마니아를 일컫는 일본말 ‘오타쿠’를 한국어로 빗댄 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책 <여행자의 로망 백서>를 펴낸 7년 전에 이미 “100개 장르, 1000개 매체 기고가 멀지 않았다”고 기염을 토한 바 있다. 그림과 춤도 주 관심사다. 요즘에는 여행 관련 책을 집중적으로 펴내며 자칭 ‘도시 수집가’라는 직업을 추가했다. 박사,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게다가 본명이다. “둘째딸 이름을 박사라고 지으시오.” 기차간에서 만난 한 스님의 권유를 장난기 많은 아버지가 덜컥 받아들여 평생 꼬리표가 됐다. 여행·커피·고양이·만화·영화의 숨은 매력을 독자들한테 즐겁게 전달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씨와 함께 이른바 ‘인문주의 엔터테이너’로 불린다. 그림 쪽에 타고난 집안 혈통 덕분인지, 책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등에서 매력적인 그림과 글씨 솜씨를 뽐냈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나 캘리그래퍼(손글씨 작가)로 착각하기도 한다. 특기는 10년 넘게 ‘무작정 남 따라가기’. 스스로를 “믿을 만한 동행자 등짝에 달라붙어 여행 다니는 젖은 낙엽”이라고 표현하며, 주변 사람들한테도 이런 여행법을 권하고 있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20세기 말 어느 날 웹진 <스폰지> 창간 때 이뤄졌다. 나홀로 편집장이던 이씨가 “그래, 너 정도면 나를 따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유일한 기자 겸 편집자로 박씨를 뽑았다. 대중문화가 무거운 담론을 이야기하며 대중과 멀어지던 시기, 이들은 “도마 위에 놓고 비틀자”라는 모토로 문화를 더 가볍고 더 자유롭게 다루면서 나란히 톡톡 튀는 필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이후 ‘복합문화 프로젝트 사탕발림’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이름으로 온라인에 공간을 마련한 뒤, 14년간 동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사이 책 10여권을 함께 썼고, 각종 방송 출연에서 파티 기획, 그림 전시회와 매체 연재 등 온갖 아이디어를 콤비로 실행에 옮겨왔다. “어릴 때부터 건방졌어요. 그런데 딱 한명 잔소리하는 게 박사예요. 저한테 지나치게 자신감이 강하죠.”(이명석) “이명석씨가 진지하게 ‘누군가 지구를 정복하면 그건 박사일 거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정복할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겠죠.”(박사) “나한테 시켜서 정복하겠지.”(이명석) 자석으로 치면 둘 다 엔(N)극이거나, 둘 다 에스(S)극일 것 같은데도 찰떡궁합이다. 특히 글을 쓸 때는 이런 시너지가 더욱 커진다. 스페인, 체코, 앙코르와트, 베트남, 뉴올리언스, 샌프란시스코, 쿠바 등을 같이 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고 그림을 그려 책을 냈다. “우리가 여행 떠나는 패턴은 이래요. 제가 ‘오르세 미술관 옥상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싶다’고 하면 이명석씨가 코스와 관련된 계획을 짜요. 저는 여행 기록하고 공동 회비 걷어서 가계부 쓰고.”(박사) “제가 최소 시간에 최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계획을 짜는 걸 재미있어 해서 역할 분담이 되죠.”(이명석) 국물만 좋아하는 남편과 건더기만 좋아하는 아내처럼 묘하게 잘 맞는다. ‘번개탄과 연탄’ 또는 ‘최불암과 김혜자’ 지금까지 이들이 ‘수집’한 세계 도시는 모두 52개. 가본 곳도 있고 못 가본 곳도 있지만 자료를 모아 도시마다 하나의 특징만 꼬집어 글 쓰고 그림 그려 한 주 하나씩 52개 도시를 1년 동안 모아 지난해 실제 <도시수집가>란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비엔나(빈)에 비엔나커피가 없고 땅굴이 있는 이유, 명탐정 셜록 홈스가 사는 곳,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피아소야)가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멱살잡이를 한 이유 등 여행 책들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깨알 같은 정보들을 담았다. 이씨가 “도시를 들고 올 수 없는 이상 나름의 수집법을 궁리”한 결과라고 한다. 책에 그려놓은 그림이 ‘아깝다’는 이유로 여름엔 ‘도시수집가’ 원화전도 열었다. 요즘엔 일주일 동안 한 도시를 즐길 수 있도록 길잡이 하는 책 <위크 트리퍼 박사와 이명석의 샌프란시스코>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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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씨가 그린 버클리의 솔라노 스트리트 페어 축제 행렬에서 여성참정권 코스프레하는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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