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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서울대법학대학원 교수(오른쪽)가 31일 오전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두 사람이 쥐고 있는 바람개비는 지난해 10월 보궐선거 때 ‘새 바람을 일으키라’는 뜻으로 지지자들이 그의 유세 차량에 붙여줬던 것이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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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만남]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 연 3조 구매력…청년·중소기업 제품 사 사회혁신 할것”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시기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며 멘토단으로 활동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지원함은 물론, 생애 처음으로 거리유세에서 연설까지 했다. 당선 이후 나의 선택이 올바랐는지 직접 확인하고자 했다. 시민운동가에서 웬만한 국가 규모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수도의 행정수장으로 변신한 박원순 시장을 시민들의 희망이 적힌 수많은 쪽지가 벽을 채우고 있는 시장실에서 지난달 31일 아침 만났다. 혁신의 정신은 여전히 청청하고 유머 능력은 증진된 것 같아 기뻤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트위터@patriamea
-지난해 보궐선거 당선 뒤 만났을 때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지만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으니, 집과 청사를 지하통로로 연결시켜 밤이나 휴일에도 몰래 출근해 일하고 싶다”고 농담한 적이 있는데, 땅굴은 팠나? “파고 싶은 유혹을 많이 느꼈지만 파진 못했다.(웃음) 취임 초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면담·보고·인터뷰 일정이 이어지더라.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매주 수요일은 하루 종일 비우고 있다. 새로운 구상과 기획을 하기 위함이다.” -시민운동가로 활동할 때 ‘과로사’가 꿈이라고 농담 섞어 말한 바 있다. 이 꿈이 반쯤이라도 실현되면 공무원들의 ‘쉴 권리’는 위태로워진다. “그런 이야기 하면 큰일 난다.(웃음) 이미 시 공무원들이 일 많이 한다. 평균 퇴근시간이 밤 9시다. 제가 휴일에도 계속 나와 일하고 회의하면 실국장들도 나와야 한다. 그러면 그 아래 직원들이 어떻게 쉬겠나. 야근 유혹을 참고 외부 일정이 있더라도 저녁 9~10시면 퇴근하고 있다. 법정 휴가도 지키려고 한다. 덕분에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다.(웃음)” -저는 한 회도 보지 못했는데…, 시민운동가에서 시장으로 변신하면 드라마를 볼 시간이 생기는가 보다.(웃음) 불법포획되어 서울대공원에서 공연을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제주 구럼비 앞바다로 보내야 한다는 발언으로 ‘포퓰리즘 정치쇼’라는 공격을 받았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1994년 대구지방변호사회가 펴낸 <형평과 정의> 9집에 발표했던 논문 ‘동물권의 전개와 한국인의 동물 인식’의 문제의식이 표출된 것 같던데? “어떤 사람은 조국 교수를 보고 ‘연구 안 하고 정치운동만 한다’고 비난하던데, 지방변호사회 논문까지 챙겨 보나보다.(웃음) 1991년 영국 런던정경대(LSE)에 유학갔을 때 동물보호 운동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당시 한국에서는 사람의 권리도 제대로 확보 못해 힘들었던 시대였는데 영국에서는 동물권이 큰 화두였다. 동물권 운동의 선구자인 피터 싱어의 책을 읽는 등 그때부터 동물권에 관심을 가졌다. 단순히 ‘제돌이’를 풀어주는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 동물원의 기능 등에 대해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고 본다.” -마하트마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성과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고 설파한 바 있다. 외국에서는 동물원 폐지 운동도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동물원의 재구성은 필요하지 않은가? “동물원의 새로운 비전에 대해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등과 논의하고 있다. 저는 ‘동물원이 필요 없다’, ‘동물원 동물을 다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물을 잡아와 가둬 놓고 사람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넘어, 사람과 동물의 교호작용을 강조하는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 구매력 활용해 일자리 등 창출
정부·기업운영 새 모델 될것
정규직 전환 늘리는 기업에
납품때 인센티브 방안 검토 -서울시장은 서울시립대의 운영위원장(사립대의 이사장)이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때 공약이었던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은 어느 단계에 와 있나? “올해 시 예산으로 182억원을 지원해 시립대 등록금이 102만원이 되었다. 원래 시립대 등록금이 다른 사립대의 절반인데, 다시 절반이 된 것이다. 게다가 시립대 등록금이 낮아지자 장학금은 많아졌기에, 시립대 학생 중 절반은 사실상 무상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 -반값 등록금을 위해 지원된 예산은 세금이다. 그만큼의 혜택을 받는 만큼 시립대 학생 선발이나 학교행정에서 ‘공적 마인드’가 강화되어야 한다. 교과과정에도 사회봉사학점 의무화, 공익과 인권 중시 프로그램 설치 등이 필요하지 않은가? “동의한다. 총장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시립대와 대학 구성원의 공적 책임, 사회적 책임을 높이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앞으로 시립대가 쑥쑥 자랄 것인데 조 교수가 합류해주면 어떨까?(웃음)” -반값 등록금의 영향이겠지만, 다른 대학과 달리 시립대 학생의 이번 총선 부재자투표 신청이 많이 늘었다. 2593명이 부재자투표를 신청해 2010년 지방선거 때보다 18% 늘었다. “과거 시민들이 투표장에 나가지 않는 이유가 ‘투표한들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는 체념 때문이었다. 내가 투표하면 변화가 온다는 신뢰를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비정규직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서울시가 1054명을 우선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다른 공공부문이나 민간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확산시키도록 서울시가 기여할 구상이 있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고민할 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런데 서울시가 실제 해보니까 생각보다 적은 예산을 쓰며 실현할 수 있었다. 1054명은 1단계고, 하반기에 2단계로 서울시청에 근무하는 나머지 비정규직을 선별해 정규직으로 추가 전환할 예정이다. 서울시가 1년에 몇조원가량 각종 물품과 서비스를 구매한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서울시에 물품을 납품하려는 민간기업체 중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고 노력하는 기업에 인센티브 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무상보육 제대로 시행 하려면
지자체에 부가세 20% 이양을
무상급식도 농촌 직구매 등
지역과의 상생 모색 필요해 -서울시는 연간 3조원의 구매력이 있다. 이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서울시는 ‘구매력 통한 사회혁신’을 추구한다. 과거처럼 의례적으로 대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사회취약계층, 청년창업기업, 벤처기업 등의 제품을 수의계약으로 사겠다는 거다. 물론 품질이 보장되어야 한다. 대기업과 달리 이쪽엔 노동집약적 기업이 많아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반값 등록금이나 노동정책 등 서울시의 정책이 다른 지자체, 중앙정부, 민간기업 등으로 확산되면 좋겠다. “물론이다. 서울시정이 국정운영의 새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사실 서울시는 거의 나라 수준이다. 서울시는 인구 면에서 뉴질랜드,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보다 큰 곳이다.” -그런데 재정 문제가 있다. 서울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비하면 재정자립도가 높지만 여전히 재정적자가 크다. “지난해 제가 취임할 때 서울시 부채가 21조원 정도였다. 전임자들의 방만한 재정운용의 결과였다. 그새 2조원가량 줄어 현재 19조원 정도지만, 내년부터 부채를 본격적으로 줄일 생각이다. 저부터 업무추진비를 20%가량 줄여 한해 9200만원을 절감했다. 시장 의전차량을 기존 3대(승용차 2, 승합차 1)에서 2대(승용차 1, 승합차 1)로 줄였다. 고건 전 시장 때 부채가 9조원가량이었는데 이 정도 규모면 관리 가능하다.” -지난 29일 전국 시도지사들이 한목소리로 영유아 무상보육에 대한 중앙정부의 추가 재정지원을 요청했다. “무상보육 확대로 서울시는 올해에 8000억원을 투자한다. 중앙정부가 0~2세 무상보육 발표한 것은 좋은 일인데, 서울시는 그 재원의 80%를 부담해야 한다. 다른 지방정부는 50%가량 부담인데 재정이 위험할 정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세의 지방 이양을 확대해야 한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1700여건의 국가사무가 지방으로 이양됐는데, 부가가치세는 5%만 지방세로 돌린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파산시키려고 작정하지 않았느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생색은 중앙정부와 여당이 내고 지방정부엔 부담만 주니 불만이 많다. 부가가치세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경제활동에 대한 세금이므로 지자체 귀속률을 20%까지 높여야 한다. 이는 지방분권을 위한 경제적 토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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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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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시설 올리는 게 꿈
시립대, 반값 등록금 영향
부재자 투표 신청 18% 늘어 -도시에서 별을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보수언론이 그 시간대에 범죄율 증가한다고 하지 않을까?(웃음) “출산율도 높아질 것 같은데.(웃음)”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중앙정부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의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조항의 재검토 필요성 등을 담은 의견서를 낸 바 있다. 지난 3월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했는데 서울시정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점검했나? “지난해 12월부터 1월 하순까지 7138건의 자치법규(시 535건, 자치구 6603건)를 전수조사한 뒤 전문가에게 자문해 조언을 받았다. 서울시와 구의 자치구 조례 등 31건의 자치법규가 한-미 에프티에이와 합치되지 않거나 합치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국회가 마련한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법안인 유통산업발전법이나 시와 자치구의 관련 조례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특별 우선구매도 무력화될 수 있다.” -청계천 재복원을 결정했다. 청계천시민위원회는 활동을 시작했는가? “지난 23일 첫 회의를 시작했다. 청계천 재복원은 다 뜯어 새로 만들자는 게 아니다. 이명박 전 시장이 했던 복원에선 역사적·생태적 관점이 무시됐다. 이걸 반영해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 서두를 생각은 없다. 예컨대 독일 쾰른대성당은 짓는 데 500년 걸렸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우디성당은 아직도 공사중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서두르다 범한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완공을 굳이 제 임기 중에 할 필요가 어디 있나.” -민주화기념사업회와 인권단체가 옛 안기부 건물인 남산유스호스텔 등을 민주화기념물로 보존하자는 요구를 하고 있다. “남산에 있는 서울시 도시안전본부와 공원녹지국 등 건물 지하에 안기부 고문실이 있었다. 서울시 청사 공간이 부족해 여러 건물을 민주화기념물로 만들긴 어렵다. 서울시 신청사 완공 뒤 논의하여 결정할 것이다.” -미국 보스턴에는 역사적 명소를 연결하는 ‘프리덤 트레일’이 유명하다. 벗의 소개로 소설가 이태준씨의 생가를 개조한 성북동 ‘수연산방’이라는 한옥 찻집을 가본 적이 있다. 이곳을 포함한 유명 문인들의 생가 트레일은 어떤가. 왕궁 중심의 관광 외에 사람들의 다양한 성향과 취향에 따라 서울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도 일부 그런 트레일이 있지만 시민이나 외국 관광객이 걸어서도 재밌게 서울을 살펴볼 수 있게 하겠다. 이를테면 세종대왕이 태어난 옥인동 서촌에서 내수동 주시경 선생 생가터,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까지 둘러보는 ‘한글 트레일’은 어떤가.” -시장 취임한 지 다섯달이 됐는데, 한번 더 각오를 듣고 싶다. “내 선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전광석화처럼 결정하고 확실하게 밀고 나가겠다. 동시에 중장기 논의를 거쳐야 하는 것은 절대 조급함 없이 추진하겠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야권단일후보로 당선됐다. 이번 총선에도 야권연대가 만들어졌다. 소회가 어떤가? “매우 기쁘다. 전국적 야권연대가 성사된 것은 천우신조이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양쪽의 결단과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다.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 한명숙 대표에게 ‘이거 안 하면 저는 탈당합니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던진 적도 있었다. 야권연대를 안 했으면 가져올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과 유권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점에서 양당에 경의를 표한다.” 정리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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