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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15 21:17 수정 : 2012.04.15 21:27

[RT, 소통이 나눔이다]
➋ 지적·지체장애 1급 준열씨

“저 걷고 싶어요. 혼자 힘으로 걸어다니면서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어요.”

2010년 11월 어느 날 서정우(28) 다소미집 생활재활교사의 꿈 속에 나타난 김준열(23)씨가 한 말이다. 준열씨는 중증장애인(지적장애·지체장애 1급)으로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금광리 중증장애인 생활시설 다소미집에서 살고 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준열씨는 자신의 이름과 간단한 단어를 듣고 반응할 뿐 전혀 말을 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준열씨는 뇌기능 손상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뇌전증(간질환)도 함께 앓고 있다.

김준열(왼쪽)씨가 지난 12일 오후 경북 경주시 신평동 보문단지로 소풍을 나와 이필우 교사의 도움을 받아 걸어보고 있다. 경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다소미집에서 지난 13일 만난 준열씨는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거나 안전봉을 잡고 조금씩 걸어다녔다. 2층에서 1층 식당에 갈 때도 서 교사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서 내려갔다. 항상 무릎을 꿇고 앉던 준열씨는 이제 양반다리로 앉기도 한다. 서 교사는 “불안정한 자세도 걷기 운동으로 조금씩 자연스럽게 바뀌고 있다”며 “준열이는 걸으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2살 때 심장에 구멍 발견돼
수술하다 뇌를 다친뒤 악화
다리 힘 없어 온종일 휠체어
말은 못해도 노래는 좋아요

준열씨는 경북 경주시의 예피쉼터에 있다가 치료에 도움이 될까 싶어 2010년 다소미집으로 옮겼다. 준열씨가 다소미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항상 휠체어만 타고 다녀서 아무도 그가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준열이를 부축할 때, 다리에 힘을 주고 뭔가를 붙잡으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준열이가 휠체어를 타고 있으니 점점 퇴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휠체어를 치우고 준열이 손을 잡아줬더니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준열씨를 담당하는 서 교사는 준열씨가 걸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지난해 10월 휠체어를 아예 치워버렸다. 휠체어를 치우자 준열씨는 의지할 것이 있는 곳으로 기어가서 책상 등을 붙잡고 스스로 일어서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한 발짝 두 발짝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곤 했다.

준열씨는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생후 23개월께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다가 뜻밖에 심장에 구멍이 뚫려 있는 심장중격결손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의 권유로 수술을 받은 준열씨는 보름 정도 무의식 상태로 지내다 깨어났지만 뇌기능이 정지됐다. 아버지 김병호(50)씨는 “심장 수술을 받느라 몸 안의 피를 뽑아내고 다시 피를 몸 안으로 집어넣는 과정에서 준열이의 뇌혈관이 막혀 뇌가 손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준열씨는 6개월 정도 병원에서 지냈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준열씨는 이때부터 신생아 수준의 옹알이만 하면서 잘 걷지도 못했다.

준열씨는 가족과 함께 대구에 살면서 장애인 교육기관인 대구보건학교에 다녔다. 준열씨 부모는 아들을 업고 학교에 등하교시켰다. 어머니 김혜정(48)씨는 “준열이가 보건학교에 다닐 때는 뒤뚱거리며 몇십 미터 정도 걸어다녔다”고 말했다.

준열씨는 대구보건학교 중학교 2학년 과정에 다니던 2004년께 경주에 있는 중증장애인 보호시설 예피쉼터로 옮겼다. 준열씨는 2년 후 열여덟살 무렵부터는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제대로 걷지 못했다. 어머니 김씨는 “준열이가 나이가 들수록 상체는 발달했지만 하체 발달이 안 돼, 걷는 것을 힘들어 했다”며 “경주로 가고 난 뒤로 잘 걸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준열씨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노래를 좋아한다. 노랫소리가 들리면 박자를 맞추듯 손으로 바닥과 자신의 무릎을 치는 동작을 반복했다. 기분이 좋거나 나쁠 때는 고음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가끔 웃기도 했다.

준열씨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단어 몇 개 정도는 알아 듣는 듯했다. 그는 특정 단어를 들으면 반응을 보이는데, ‘밥 먹으러 가자’는 서 교사의 말을 듣고 일어서려고 했다. 준열씨는 누군가 밥을 먹여줘야 하지만 먹고 싶을 때와 먹기 싫을 때를 행동으로 표현했다. 밥이 먹기 싫을 때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거나 입 안에 있는 밥도 뱉어냈다. 반대로 맛있는 것은 빨리 받아먹었다.

선생님이 일부러 휠체어 없애
붙잡고 몇 걸음씩 걷는 연습
그동안 무릎으로 기어다녔죠
앞으로 혼자 걸을 수 있을까요

준열씨는 사랑과 관심에 목마르다. 그는 다소미집에 함께 살고 있는 이수영(33)씨를 제일 좋아한다. 지적장애를 지닌 수영씨는 “심심하면 나를 찾아다닌다. 준열이 착해요”라며 준열씨의 손을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었다. 안상영(42) 다소미집 생활재활교사는 “준열이는 누군가 자기 옆에 없으면 텔레비전 보는 것도 싫어한다”며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기어서 쫓아다닌다”고 말했다.

준열씨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줄 누군가를 찾아 이 방 저 방을 기어다니느라 바지 무릎 부분이 닳아 있었다. 준열씨가 혼자 힘으로 걷기 위해서는 다리와 팔의 힘을 키워주고 걷는 자세를 바로잡아주는 보행훈련 도구가 필요하다. 다소미집은 준열씨가 스스로 걷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서 교사는 “10년이 걸리더라도 준열이가 걸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화창한 봄날 다소미집 가족들이 경주 보문단지로 꽃놀이를 갔다. 서 교사의 귓가에 준열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선생님, 저도 벚꽃 길을 걷고 싶어요.”

포항/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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