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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허윤군은 독서모임에 나가면서 자신감도 되찾고 ‘죽고 못 사는 친구도 여럿 생겼다’고 자랑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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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불안 아이가 달라졌어요”
“애 때문에 수업 이 안돼요” 선생님한테 줄곧 핀잔만 듣더니
중3이 돼 독서모임에 다니면서 이젠 제법 또박또박 필기를 한다
글쓰기 최고점수도 받고 자신감도, 친구들도 생겼다
중학교 3학년 허윤(15)군은 올해 처음으로 공책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극심한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던 윤이는 초등학교 입학 뒤 지난해까지 한 번도 필기를 해본 적이 없다. 옆자리 친구에게서 종이 한 장을 빌려 끼적거리다 결국은 구겨서 가방 안에 휙 던져넣기 일쑤였다.
꼬깃꼬깃 구겨진 공책의 낱장과 가정통신문으로 가방 안은 늘 ‘쓰레기통’이었고, 수업시간에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해 교사들을 피곤하게 했다. “윤이 때문에 수업이 안돼요” “집에서 어떻게 좀 해주세요”라는 교사들의 불평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 오해옥씨의 가슴은 숯덩이가 됐다.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성의 없이 숙제를 내는 탓에, 과제 점수는 항상 최하점이었다.
하지만 윤이는 이제 수업시간에 뒤돌아 떠들거나 부스럭거리지 않는다. 공책에 차근차근 필기도 하기 시작했다. 서툴긴 하지만 글씨도 줄에 맞춰 쓴다. 그렇게 쓴 글이 벌써 열쪽이 넘는다. “이제 마음이 들뜨지 않아요. 항상 둥둥 떠 있었는데, 가만히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아요.”
오씨는 ‘비결’을 학교 독서모임과 교육에서 찾는다. “원래 책은 좋아했지만, 머리로만 이해할 뿐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어요. ‘책에 나오는 사람은 이렇게 잘났는데, 난 왜 이럴까’ 하는 열등감도 컸죠. 친구들의 환심을 사려고 거짓말을 일삼다 보니 왕따로 마음고생도 많았습니다.”
윤이는 지난해부터 매주 한번씩 특별활동 시간에 독서모임에 나가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특히 ‘과학의 발전’ ‘복제인간’ ‘독재와 민주주의’ 등 주제를 놓고 벌이는 깊이있는 토론은 윤이가 책에 담긴 내용을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줬다. 자신감도 되찾았다. “공부 잘하는 친구보다 제 논리가 더 합리적일 때가 많아요.” 윤이는 “토론을 하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친구들의 생각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이젠 ‘죽고 못 사는’ 친구도 여럿”이라고 자랑했다.
“시를 잘 쓴다” “생각이 창의적이다”라며 끊임없이 격려하는 교사의 도움도 컸다. 그동안 누구의 말도 믿지 않던 윤이는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친구들을 따라가고 있다. 책을 꼼꼼히 읽다 보니 논리적인 글쓰기에도 자신이 붙었다. 글을 쓸 때, 그동안 읽었던 책에서 어떻게 얘기를 시작하고 결론을 맺어가는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얼마 전 과제로 낸 ‘과학의 가치중립성’에 대한 글쓰기는 최고 점수를 받기도 했다. 요즘은 직접 자료를 찾아 조사해 가는 탐구학습 과제를 가장 좋아한다.
어머니 오씨는 “책 속에 보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는 스스로 커나가는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지난해 가방 안에 구겨져 있던 종이를 우연히 펴봤는데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온통 가위표를 그려놔서 마음이 아팠어요. 올해는 하고 싶은 일을 공책에 가득 써놓았으면 좋겠네요.”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책읽기 ‘적’은 컴퓨터
중·고등생 41%가 ‘인터넷중독’ 대한민국 학부모는 컴퓨터와 ‘전쟁 중’이다. 책읽기로 아이들을 유인하기에는, 인터넷과 게임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하다. ‘인터넷 중독’은 인터넷에 빠져 사회·가정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말한다. 청소년이라면 게임 중독이 대부분이다. 최근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천병철·김정숙 교수팀이 경기도 중·고등학생 764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중독’ 현황을 조사해보니, 중독 초기와 심각한 중독이 각각 38.5%, 중증이 2.9%로 조사되는 등 41.4%가 인터넷 중독 증세를 보였다. 응답자들의 하루 평균 인터넷 사용시간은 중학생이 3.1시간, 고등학생이 2.8시간이었다. 특히, △학업성적이 낮은 학생일수록 △하루 평균 사용시간이 길수록 △인터넷을 게임과 통신용으로 주로 이용할수록 중독 증상이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녀들의 ‘인터넷·게임 중독’은 가정불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보통 게임에 빠지다 보면, 성적이 떨어지면서 부모와 다투게 되고, 가출과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일어난다. 하나로텔레콤이 지난해 자녀가 있는 고객 73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응답자의 40%가 “자녀의 과도한 컴퓨터 사용으로 가정불화가 생긴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인터넷·게임 중독이 단순한 개인 문제를 떠나 가정,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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