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2.26 20:09
수정 : 2012.03.1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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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 김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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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경의 TV 남녀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을 보면 동네 조무래기들이 힘이 장사인 소년 꺽정을 “꺽정 언니” 하며 따라다니는 장면이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1920년대 말~30년대 말 신문 연재되며 대중에게 사랑받은 이 소설이 보여주듯 언니라는 말은 남자들한테도 썼다. 본디 성별 구분이 없는 범칭이었으리라.
가수들의 노래 경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나가수)에서 두 언니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자우림 김윤아(사진 위)와 김경호(아래), 둘의 공통점은 ‘록’이다. 여성 로커 김윤아가 ‘강함’을 분출한다면, 남성 로커 김경호는 ‘부드러움’을 통해 대중에 호소한다.
기실 요즘 내 걱정은 김윤아다. “김윤아가 명예졸업을 못할까봐 걱정이에요.” 나가수가 화제에 오른 한 점심자리에서 무심히 이 말을 꺼내고는 아차 싶었다. ‘한낱 티브이 프로에 너무 몰입하네’ 따위의 힐난을 예상했는데, 웬걸 돌아온 반응은 “나도”라는 공감이었다. 같이 밥을 먹던 강맑실 사계절 대표는 김윤아도 좋지만, 요새는 김경호가 참 좋다고 했다. 노래도 잘하는데 겸손하기까지 해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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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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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자우림의 노래 ‘헤이헤이헤이’를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일상으로부터 탈주를 부추기는 듯한 힘을 뺀 목소리에 담긴 왠지 모를 저항적 감성이라니. “헤이 헤이 헤이/…/ 눈부신 그대가 나의 마음을 채우고/ 어두운 날들이여 안녕 외로운 눈물이여 안녕/ 이제는 날아오를 시간이라고 생각해.” 노래하는 김윤아의 모습을 보노라면 ‘마녀’, ‘여전사’ 같은 말이 떠오른다. 김윤아는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패러디본에 나오는 마녀 같다.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 속에 살았지만 실은 ‘버려진 아이들’을 숲속에서 먹여 살렸다는 그 ‘마녀 이모’ 말이다. 가녀린 몸에서 뿜는 강렬한 에너지, 입을 한껏 벌려 포효하면서도 값싼 낭만이나 애절한 감상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 초반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그가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주술처럼 읊조리면서도 소수 팬층을 넘어 10~50대 다연령층 청중평가단의 마음을 얻는다. 나는 이를 비주류적 감성이 ‘보편적 대중’의 감성 속으로 진입하여 똬리를 튼 순간으로 읽는다. <위대한 탄생>에 출연할 적에 김윤아는 쉼 없이 일하는 개미보다는 게으른 베짱이가 좋다고 했다. 장시간 노동을 미덕이라 선전하는 이 시대의 친자본 감수성을 살짝 비트는 베짱이 감수성이다.
나가수 최다 1위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중인 김경호는 ‘국민 언니’로 불린다. 어둑신한 헤비메탈 공연장이나 골방에서 홀로 헤드뱅잉을 할 것만 같은 이 남자가 언니로 불리는 건 예쁜 식기·침구류를 좋아한다는 ‘여성스러운’ 취미 때문만이 아니다. “센 음악만 한다는 소리가 제일 싫었다”는 그가 긴 공백 끝에 돌아와 대중의 마음을 열어낸 건 첫 무대에서 긴장감으로 떨리던 얼굴 근육이었을 거다. 다시 주어진 무대에 대한 고마운 심경을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함, 그 기회 앞에서 겸손하게 대중과 접점을 넓히려 최선을 다하는 태도이리라. 그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을 닮았다. 록음악 팬을 넘어 폭넓은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방송미디어팀장
carmen@hani.co.kr, 사진 <문화방송> 제공
이번주부터 텔레비전에 등장하거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의 얘기를 담는 ‘허미경의 TV남녀’가 격주로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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