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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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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경의 TV남녀
여 태후는 기원전 180년에 죽었다. 유방은 그 15년 전에 사망했고, 항우는 그보다 7년 앞서 우희와 함께 자결했다. 중국 역사서 <사기>와 <한서>에 등장하는 이 네 명의 남녀! 우리네 한국인들에게도 꽤나 유명하다. 넷 중에 살아 생전 최종 승자는 유방 사후 15년간 사실상 여씨 정권을 수립했던 여 태후가 아닐는지. 하지만 후손들에게 가장 미움을 받은 위인 역시 여 태후다. 측천무후, 서태후와 함께 ‘중국 3대 여걸’로 꼽히면서도 ‘3대 악녀’라는 식으로 훗날 (남성) 역사가와 호사가들에게 재단당했으니까. 국가 권력을 도모한 옛날 여자들의 일종의 숙명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여 태후의 이름은 ‘치’다. 여치다. 한데, 2200여년 만에 한국 땅에 ‘환생’한 여치가 인기 ‘짱’이다.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에스비에스)에서다. 한나라 유방(한고조)과 초나라 항우(초패왕)의 기싸움, 여치와 우희의 대결이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를 통해 오늘 한국에서 펼쳐진다. 진나라 말, 흐트러진 천하를 도모하는 일이 고대인들의 관심사였다면, 오늘날 저마다 직장에서 악전고투하는 봉급쟁이들에게 제1 관심사는 직장내 승승장구 혹은 생존 자체일 게다. <샐러리맨 초한지>는 ‘웰메이드’ 영상으로 재벌그룹 샐러리맨들의 ‘복마전’을 코믹과 눈물을 섞어 풀어놓는다. 20부작의 반환점을 앞둔 현재 시청자 반응이 화끈한 “인기 캐릭터는 뭐니 뭐니 해도 여치”란다. 맨 처음 그를 안방 화면에서 본 건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였다. 무난한 연기였지만 김선아와 현빈보다 더 빛난 건 아니었다. 그다음은 <자명고>였는데, 인색한 카메라 앵글 속에서 활짝 꽃피지 못하고 있었다. 그즈음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배우 정려원’(사진)을 보았다. 자기만의 방에서 별을 헤는 자폐적인 ‘여자 김씨’에게서 정려원은 놀라운 집중력을 발산했다. <샐러리맨 초한지>에선 3개국어로 욕을 해대는 ‘왕싸가지’ 재벌가 외손녀 여치 역에 몸을 던진다. 착 들어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 연출자 유인식 피디는 “여치는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면 미워지는 캐릭터인데, 려원씨가 그런 여치를 치열하게 연구해서 훌륭히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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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경 방송미디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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