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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13 20:13 수정 : 2012.03.14 16:23

허미경의 TV남녀

이상하다. 한 여배우가 죽음으로써 고발한 ‘사회 권력층의 여성 연예인 성매매 사건’(장○○ 사건)에는 그토록 침묵하던 매체가 비키니 시위에는 야단을 떤다. “비키니 시위엔 침묵…두 얼굴의 여성단체”(2월1일, 조선일보)라는 둥 사뭇 준엄하게 여성단체를 비판한다. 요는 ‘나꼼수’ 진행자들이 여성들에게 비키니 사진을 올리도록 독려하고 성희롱성 발언을 했는데도 나꼼수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자 이틀 뒤 여성가족부의 한 국장이 “여성을 성적으로 동원하는 데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한다. 둘의 공통점은 비키니 시위를 벌인 그 여성을 어떤 주장의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권유에 따르거나 누군가에게 동원되는 대상으로만 인식한다는 점이다.

여성과 여성의 몸을 타자화하는 남성 마초 혹은 그런 시각을 ‘그들’이란 말로 뭉뚱그려 본다면, ‘그들’이 ‘나꼼수 비키니’ 국면 초반부터 문제삼고 싶었던 건 어쩌면 비키니 시위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자기 몸을 주체적으로 쓰는 방식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성숙해졌다는 뜻이다.

“가슴이 터지도록 정봉주 나와라”라는 글귀를 비키니 차림의 젖무덤 언저리에 써넣고 시위 여성이 외친 건 정치구호다. 다시 곱씹어보면, ‘그들’이 불편했던 것은 ‘비키니녀’가 내건 내용이 ‘정봉주 석방’이라는 정치 슬로건이었기 때문이다. 비키니 노출 자체가 아니다. ‘그들’은 최신형 자동차 쇼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 자동차를 판촉하는 데 대해서는 그 판매를 권유했다는 이유로 자동차 기업주를 비판하지 않는다. 비키니를 입고 상품을 파는 건 좋지만, 정치는 하지 말라는 얘기다.

몸을 활용한 ‘판촉’ 행위는 점점 대중화되고 있다. 남녀 배우는 안방 화면 속 수영복 차림으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발산하며, 남자 배우·가수는 식스팩 복근을 통해 섹스 어필한다.

하여, 눈부시다. 요즘 개그우먼들의 활약 말이다. <개그콘서트> ‘최종병기 그녀’의 근육질 스턴트우먼 김혜선(사진 오른쪽)은 내숭쟁이 톱여배우를 대신해 단번에 소주병을 박살내곤 관객을 향해 싱긋 썩소를 날린다. ‘패션넘버5’의 장도연은 1m74의 키에 10㎝ 힐을 신고서 “패션 스타이얼~”(스타일)을 외친다. 기다란 몸을 구부려 그로테스크한 표정을 지어댄다. ‘나는 여배우다’(코미디빅리그)의 안영미(왼쪽)는 감독의 “컷!”이 떨어지자 뺨이 홀쭉해지도록 담배를 빨아대며, 정주리는 땀으로 흥건한 겨드랑이를 부벼대며 거만한 얼굴로 “농익은 연기”라 능청 떤다. 이들은 여성의 몸을 조신함이나 성적 관음의 대상으로만 묶어두던 종전 금기를 넘어서고 있다. 풍자의 대상을 넘어 주체가 된다는 말이다. 종전 개그우먼들이 ‘못생긴 외모’(그들이 못생겼다는 뜻이 아니다)를 희화화하고 추함을 부각(‘봉숭아학당’ 박지선, ‘골룸’ 조혜련)시켜 자신을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주로 남자들에게 웃음을 선물했다면, 이제 안영미·정주리와 ‘패션넘버5’의 패션녀들은 추함만이 아니라 강함을, 나아가 당당한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여성을 주체로 만든다.

여성인 나는 나꼼수의 성적 농담이 듣기 불편하다. 그래서 더욱, 첫 ‘비키니 시위’ 여성이 동원 대상이 아닌 자기 행동의 주체였음을 “가슴이 쪼그라들도록”이라는 구호로 상기시킨 <엠비시> 여기자의 ‘비키니 연대’를 응원한다.

방송미디어팀장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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