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26 20:22
수정 : 2012.03.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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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더킹 투하츠>의 배우 이승기(왼쪽), 하지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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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경의 TV남녀
여자들은 어떤 여배우를 좋아할까. 정답은 알 길 없으나, ‘여성’ 지인들의 견해를 뭉뚱그리면, 이른바 ‘여성스러운’ 캐릭터보다는 ‘중성적인’, ‘보이시한’(소년 같은) 면모를 지닌 배우를 좋아한다. 여성에겐 없는 남성성에 대한 매혹이랄까, ‘강한 여성’ 혹은 ‘여성 영웅’에 대한 갈구랄까. 하여간, 그런 여배우들이 남녀 팬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인기 배우로 더 오래 자리매김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듣기에 따라 꽤 가부장적인 시에프 대사 한마디로 스타덤에 올랐던 최진실도 적잖은 드라마, 영화에서 ‘보이시한 패션’과 중성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대학병원>과 <조폭 마누라>의 신은경, <선덕 여왕>의 이요원, <주몽>에서 소서노를 연기했던 한혜진이 그 뒤를 잇는다.
<해를 품은 달> 이후 시청률 패권을 노리며, 지난주 나란히 1·2회를 선보인 지상파 3사 수목극 경쟁의 초반 성적은 <더킹 투하츠>(문화방송)의 압도적 승리로 귀결됐다. <에스비에스>와 <한국방송>이 각기 야심작 <옥탑방 왕세자>와 <적도의 남자>가 해품달 최종 2회분과 맞붙었다 나가떨어지는 걸 피하려고, 그 시간대에 단막극을 땜질 편성해가며 개봉을 늦췄기에 관심이 더 컸던 터였다.
<더킹 투하츠>의 새로움은 ‘세계장교대회’라는 시청자로선 듣도 보도 못한 가상의 대회에 남북단일팀으로 참가하는 북한 쪽 팀장 김항아 역을 맡아 ‘사근사근한’ 북한 말과 ‘강력한 무술실력’을 뽐내는 여배우 하지원에 있다. <해빙>(1995)과 <아이리스>(2009) 같은 남남북녀 연애담의 계보를 잇는 이 드라마는 남북 현실의 민감함을 코미디 장르를 통해 돌파한다는 점에서 <스파이 명월>(2011)을 닮았다. 화급히 퇴행하는 결말 속에 북한 스파이 한예슬 캐릭터가 용두사미로 잦아들었다면, 북한 엘리트 장교 김항아는 하지원을 통해 새로운 캐릭터로 살아 숨쉰다.
“자세 잡으라!”
우락부락하던 인민군 병사들이 김항아의 낮게 깐 음성에 움찔, 몸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땅굴 깨부수고 주체격술도 최고”인 인민군 여성군관 김항아는 “시계 불알도 아니고 당나라 군댑니까?” 같은 대사를 넉살좋게 치면서 ‘여전사 하지원’을 부각시킨다. 그는 입헌군주제하 남한의 철부지 왕제(왕 동생)인 이승기(이재하)를 화장실 청소 대걸레로 제압하고 “와 기렇게 졸(쫄)았습니까.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답니까” 하며 어르다가도, “살결물(로션) 종류가 기케도 많나. 나 좀 발라보면 안 되겠습니까?” 하며 결혼을 꿈꾸는 처녀의 아릿한 면모를 드러낸다. ‘사랑스러운 (북한) 여전사’의 탄생이다.
하지원은 <시크릿 가든>의 스턴트우먼, <7광구>의 괴물과 맞서는 해저장비요원 등을 통해 ‘중성적’이라는 모호한 영역을 넘어서 ‘여성’ 전사의 이미지를 각인해온 국내 첫 여배우다. 입헌군주제 설정으로 현실감을 허물었을 뿐, 오늘날 남북 대치 상황을 비트는 듯한, 그래서 아이러니한 긴장감과 웃음을 유발하는 이 드라마를 보노라면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하지원은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 <시크릿 가든>의 현빈처럼 대부분 드라마에서 상대 남배우가 돋보이도록 구실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더킹 투하츠>에서도 그는 남성 히어로 이승기에게 시청자들의 제1의 관심을 또다시 넘겨줄까?
방송미디어팀장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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