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09 20:27
수정 : 2012.04.0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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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광(왼쪽), 김태호 <무한도전>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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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경의 TV남녀
“헤이~ 요~, 한숨 대신 함성으로, 걱정 대신 열정으로, 포기 대신 죽기살기로, 우리의 용감함을 보여주지!”
무슨 나이트클럽의 ‘선수’들처럼 몸을 밀착한 채 춤과 노래, 구호를 외쳐대는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 3인방. 그중에, 소싯적 마이클 잭슨 같은 더벅머리 파마를 한 박성광(왼쪽 사진)은 ‘어헝~ 어헝~’ 하는 콧소리와 함께 줄곧 개콘 서수민 피디의 외모에 대한 ‘용감한 폭로’(?)를 계속해왔다. 서 피디가 <한국방송> 새노조 파업에 참여한 지 5주째를 맞은 지난 8일 밤. 이 ‘개콘 마녀’에 관한 얘깃거리는 바닥날 만도 하다고 봤는데, 오산이었다. 한데 이번엔 파업으로 10주째 결방중인 <문화방송>의 김태호(오른쪽) <무한도전> 피디를 한데 묶어 ‘가격’했다.
“김태호, 무한도전 피디. 한국 최고 버라이어티 피디! 개콘, 서수민 피디, 한국 최고 코미디 피디! 둘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그 순간 당연한 건지 단순한 건지 내 머릿속 떠오른 답은 ‘파업’이었다. 박성광의 입에서 정말 파업이란 단어가 나올까? 사장 퇴진을 내걸고 파업중인 한국방송 프로그램에서? 물어봐 놓고선 뜸을 들이는 그 입을 쳐다보던 나는 그 단호하면서도 ‘뒤끝’ 있는 말마디에 빵 터지고 말았다.
“둘 다 못생겼어!”
사족이겠지만, 나는 서 피디는 말할 나위 없거니와, 김 피디 역시 못생겼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수줍음과 명민함. 그를 만난 첫인상은 그랬다. 내향적 성향의 ‘천재과’란 얘기다. 짐작건대, 그는 낯가림이 심한 쪽이다. 그런 그가 홀로 자신의 심연과 맞서는 장인 혹은 작가 같은 직업이 아니라 100명이 넘는 제작진을 조율하는 예능 피디가 된 건 아이러니랄 수도 있겠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타계한 팝황제 마이클 잭슨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잭슨의 다큐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리듬을 아침햇살 속에 겨우 몸을 일으키는 느낌에 견주고, 너무 큰 음향을 귀에 주먹을 쑤셔박는 것 같다 표현하는 그런 사람한테 사람들의 막말이 얼마나 송곳처럼 들어갔을까요.”
어쩐지 나는 이 말이 김 피디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까봐 마음을 졸인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로맨틱하게 묘사되는 것에 그 자신은 반기를 들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말이다.
“둘 다 못생겼어”를 외치는 박성광에게서 파업중인 두 피디에 대한 우정과 연대의 마음을 읽는다. 시청자 공감대와 이를 뒤집는 반전이 코미디의 무기라면, 그 여운은 미처 표현되지 않은 ‘감춰진 말’에서 깊어진다. 유튜브에 올려진 무한도전 파업특별판도 그랬다. 출연자 길이 “서래마을 사는 길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최근 연예인 사찰 피해자로 오르내린 서래마을의 김제동에 대한 연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파업특별판은 사흘 만에 조회수 200만을 넘어섰다. 방송에서 무한도전을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의 갈증이다. 4·11 총선이 파업 피디·기자들의 운명에 큰 영향을 줄 것임은 분명하다. 김 피디는 8일 밤 트위터에 “못생긴 건 콘셉트인데…”란 말과 함께 “어떤 나라에서 살지는 투표로 정할 수 있어요. 우리 모두 투표해요”란 글을 띄웠다. 파업특별판에 올라온 숱한 댓글 중 백미는 이렇다. “무한도전 좀 봅시다, 김 사장!”
이를 개콘 식으로 풀면? “한숨 대신 함성으로, 우리의 용감함을 보여주지!”
허미경 방송미디어팀장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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