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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27 19:48 수정 : 2012.07.27 19:48

드라마 <유령>

허미경의 TV남녀

기억상실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고전적인’ 모티브 중의 하나다. 한국 드라마가 유독 빈번히 쓴다고들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티브이 드라마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시청자는 아는데 유독 주인공만 모르는 상황이나 사건. 이런 설정이 흔히 채용되는 건, 이것이 묘한 아이러니를 낳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네가 너인 줄 아는데, 정작 너는 자신이 너인지를 모르는 아이러니는 극적 긴장을 불어넣는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가 그랬듯이, 독자는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비극적 운명을 아는데 정작 그 자신은 모른다는 점. 주인공의 ‘모름’과 시청자의 ‘앎’의 충돌에서 아이러니는 피어난다. 주인공들이 숱하게 기억상실증을 앓는 데는 이런 까닭이 있는 것이다.

주인공을 전혀 다른 삶의 차원으로 데려다 주는 이 ‘마법’은 종종 너무 손쉽게 쓰이기에,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눈 높은’ 시청자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래서 때로 작가들이 생각해 내는 것이 ‘기억 바꾸기’이다. 기억상실의 ‘변종 코드’랄까. 최근 몇몇 드라마가 약간씩 다른 방식으로 이를 드러내고 있다. <빅>에선 주인공 공유가 차량 충돌로 인한 사고에서 기억이 상대방한테 각기 전이된 두 남자를 동시에 연기했고, <각시탈>에선 일제경찰 이강토가 탈을 쓰고 일제경찰을 혼내주는 이중생활을 한다. 소지섭이 나오는 사이버수사물 <유령>에선 얼굴을 바꾼다.

이강토의 각시탈은 쫄쫄이 옷을 입지 않았을 뿐 이미 미국산 마스크를 쓴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에서 봐오던 것이고 실은 2008년 <일지매>에도 등장했던 것이다. <빅>에서 기억이 뒤바뀐 채 딴 사람 몸으로 들어간 공유의 연기는 칭찬할 만했지만, 그런 설정 자체는 이미 2010년 <시크릿 가든>에서 하지원과 현빈이 실컷 보여줬던 것이다.

<유령>의 얼굴 바꿈은 미국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 봤던 거지만 국내 드라마에선 처음이지 싶다. 기억상실이 일종의 병증이라면, 얼굴 바꿈은 신묘한 의료기술의 힘이다. 경찰청 사이버수사팀장 김우현과, 그의 경찰대 시절 가장 친한 친구였으되 어느덧 그가 추적하던 천재 해커 ‘하데스’로 변해 있던 박기영! 두 사람이 한 여성연예인의 죽음의 비밀을 캐던 차에 맞닥뜨리고 의문의 폭발사고로 생사가 갈린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소지섭(사진)은 김우현으로 죽은 뒤 다시 김우현 몸을 지닌 박기영이 되는데, <유령>의 기본 얼개를 이루는 한 기업 사장의 살인사건 현장에 김우현은 있었다.

드라마는 종반으로 가고 있고 소지섭의 정체는 이미 드러났다. 시청자들이 김우현의 얼굴을 한 박기영의 정체가 극중 다른 인물들에게 탄로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어졌다. 걱정하는 마음! 이 긴장감은 얼굴 바꿈 장치가 의도한 아이러니 효과다. 몸만 김우현일 뿐 기억은 박기영인 소지섭에게, 극중 복수심에 불타는 재벌2세 살인마 ‘팬텀’은 그 사람이 누군지를 결정짓는 것은 몸이 아니라 기억이라면서 “진짜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과연?

남은 것은 김우현, 아니 박기영의 행동이다. 그는 김우현이 왜 그 살인현장에 있었는지, 그 기억(행적)의 조각 퍼즐을 맞추고 팬텀의 음모를 파헤치고 말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마지막 행동이 남아 있다. “진짜가 될 수 없다”는 살인마의 공격에 맞서는 박기영의 완벽한 반격은 진짜 김우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김우현인 채로 죽는 것이다. 소지섭은 <유령>에서 두번 죽는다. (결말이 궁금해서 예측을 해봤을 뿐이다. ‘아니면 말고’다.)

허미경 대중문화팀장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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