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10 19:43
수정 : 2012.08.1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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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골든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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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경의 TV남녀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두 번쯤인가 그 배우를 맞닥뜨린 적이 있다. 한 번은 문화방송 가족극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또 한 번은 한국방송 의학드라마 <브레인> 촬영장이었다. 두 번 다 외면하듯 지나쳤다. 주인공을 보러 간 길이었기에, 그 배우는 관심 밖이었다. 두 드라마에서 그는 ‘마누라에 쥐여사는 치킨집 남자’로, ‘병원 내 권모술수에 능한 뇌의학과 과장’으로 맛깔나는 감초 연기를 선뵈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멋쩍고 후회스럽다. 몇 마디 질문이라도 던져 볼 것을.
그 배우가 요즘 뜨고 있다. 의학드라마 <골든 타임>(문화방송)에서다. 이런저런 조연을 맡아, 이름보다는 극중 배역으로만 기억되던 그 배우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낸다. 배우 이성민(44·사진)씨!
‘골든 타임’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놓칠 수 없는 시간을 뜻한다. 교통사고 같은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중증 외상 환자에게는 1시간, 뇌졸중 발병 환자에게는 3시간이라고 한다. 그 시간 안에 제대로 된 의료처치를 하지 않으면 환자는 죽는다.
한 의사가 있다. 그는 지방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일한다. 환자의 눈으로 보면, 그는 진정한 의사다. 생명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그는 외과니 정형외과니 신경외과니로 ‘분리’되어, 절체절명의 응급 환자가 와도 ‘우리 과 소관이 아니다’라며 내 미룩 네 미룩 책임을 미루는 의사들 틈바구니에서, 환자의 생명을 구하려 병원의 지휘계통 위반을 무릅쓰고 메스를 든다. 일신의 안위랄지 사생활을 위한 여분의 시간은 던져버렸다.
그의 모토는 이 한 문장에 축약된다. “오늘 살아야 내일도 있습니다.”
그의 요구는 이렇다. “중증 외상센터 설립! 응급의료시스템 구축!”
이 의사의 이름은 최인혁. 종합병원 응급실을 무대로 한 의학드라마 <골든 타임>의 인기를 떠받치는 주역이다. 이 드라마에서 이성민씨가 연기하는 응급실 외과의사 최인혁은 젊은 남녀 주인공(이선균·황정음)을 제치고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응급 외상 환자를 외면하는 걸 의사들 개인이나 일개 병원에 책임을 돌려선 안 돼요. 의대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사명감에 불타는 친구들 많아요. 그걸 못 갖춘 우리나라의 시스템의 문제예요.” <골든 타임>의 최인혁이 위급 환자를 수술하고도 징계를 받기에 이르자 사표를 낸 뒤 동료에게 하는 말이다.
<골든 타임>은 한국 의학드라마의 새로운 통로를 열었다. 의학드라마 하면 의사들의 병원 내 권력투쟁의 이야기였다. 김명민의 냉정한 연기가 빛을 발했던 <하얀 거탑>(2007)과 신하균의 캐릭터 연기가 강렬했던 <브레인>(2011)이 그렇듯이, 권력과 욕망의 드라마였다. 김명민과 신하균은 모두 ‘출세’를 욕망하는 의사 캐릭터였다.
반면 <골든 타임>은 지금 이 사회를 향해 직접 발언하는 드라마다. 한국에서 응급실에서 살아나갈 수 있었는데 ‘골든 타임’을 지키지 못해 숨지는 환자는 한해에 9000여명으로 추산(2007년 기준)된다고 한다. <골든 타임>은 ‘중증 외상센터’라는 응급진료시스템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 드라마의 메시지는 노골적이고 직접적이지만, 이야기 방식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인물들의 대사는 ‘현실’에서 브라운관 속으로 들어간 듯 구체적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중증외상센터 구축에 예산을 투입하라고 했는데, 왜 안 되는 걸까요?” <골든 타임>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청자 사랑을 받는 이유다.
허미경 대중문화팀장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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