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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07 19:44 수정 : 2012.09.07 21:36

최영 역 이민호. 에스비에스 제공

허미경의 TV남녀

“그걸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 찾았느냐?”

“….”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인데, 이 대화란 것이 아들의 꿈결에 스며 있다. 아련하고 덧없다. 이승인 듯 저승인 듯, 실사 화면에 애니메이션을 덧입힌 강가에서다. 죽은 아버지를 생과 사의 어름에서 만난다. 그 아들, 그러니까 ‘젊은 최영’이 찾고 있다는 것. 그것은 살아야 할 이유다.

고려의 ‘마지막 영웅’이랄까, 10~14세기 470여년간 존속했던 나라의 마지막 문을 닫았던 인물이랄까. 고려 말 격변기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친 노고에 대한 민초들의 사랑이 깊어서 오늘날까지도 단오 축제나 무속신앙에서 ‘최영 장군 신령’으로 모셔지고 있는 인물, 그래서 허연 수염을 한 늙수그레한 기득권 장군의 모습일 것 같은 위인. 그런 인물이 시간이동의 판타지를 타고 ‘푸릇한 청춘’으로 되살아났다. 드라마에서 ‘젊은’ 최영의 등장은 처음이지 싶다.

드라마계의 전설이랄까. 김종학(61) 피디와 송지나(53) 작가가 <태왕사신기> 이후 6년 만에 호흡을 다시 맞춘 판타지 사극 <신의> 이야기다. 잊지 못할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를 빚어냈던 관록의 피디·작가 짝은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했던” 청렴한 명장이라는 식으로 화석화된 인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문자와 권력의 관계를 천착했던 <뿌리깊은 나무> 같은 고품격 사극을 이미 체험한 시청자에게 ‘고려의 마지막 두 인물’ 최영과 공민왕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작가가 내건 일종의 승부수는 잠이었다.

왕실 호위부대 우달치군의 젊은 대장인 최영은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잔다. 잠은 그가 죽음과 가까워지는 방식이다. 그에게 죽음은 잠처럼 편안한 휴식이다. 잠은 꿈으로 이어지고, 최영은 그 꿈속에서 ‘지난 7년’의 기억을 직조한다. 요컨대 그는 살기가 싫은 인간이다. 자신들의 충성심을 노리개 삼은 직전 왕에 대한 절망, 자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 왕이 자신의 동료들과 연인까지 유린한 데 대한 슬픔이다. 최영의 방식은 그 절망 속에서 그대로 머무는 것,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않는 것이다. 대개 사극 속 주인공들이 출생의 비밀을 풀기 위해, 어릴 적 부모의 원수를 찾아 복수를 하기 위해, 그도 아니면 자신의 성공을 위해 모험을 펼치는 반면, 최영 캐릭터는 승리 앞에서도 쓸쓸하고, 절망 속에서도 여유롭다. 이 태도가 최영 캐릭터에 짙은 음영을 드리운다.

<신의>의 쓸쓸함은 역사인물을 다룬다는 데서도 빚어진다. 우리는 최영과 공민왕이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안다. 최영은 ‘반원(反元) 자주’ 기치를 내건 공민왕의 개혁정치를 뒷받침했던 물리력(군사력)의 지휘자다. 둘의 최후는 비참했다. 먼저 공민왕이 기득권 세력과의 갈등 와중에 살해된다. 최영은 공민왕 사후 우왕의 요동정벌 계획을 따르던 중, 스무살 아래 ‘라이벌’ 이성계에 의해 제거된다. 요동 진군 대신 회군을 택한 이성계 군에 맞서 시가전을 펼치며 저항하다 개경 시내에서 참형됐다. 그의 최후는 곧 고려의 최후였다.

<신의>의 젊은 최영은 최근 회차에서 드디어 절망과 불신을 벗어던진다. 친원파 기철 세력에 맞서 공민왕의 깃발 아래 일어선다. 최영으로 분한 25살 배우 이민호는 187㎝의 긴 기럭지를 최대한 활용해 ‘최영의 젊음’을 화사한 무협액션으로 돋을새김하고 있다. 그 젊음이 화사할수록, 드라마의 정조는 쓸쓸해진다. 어쩐지 이 드라마는 쓸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결국에는 패배한 자들의 쓸쓸함에 대해서.

허미경 대중문화팀장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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