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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폭탄’ 흰개미. 등의 검은 점은 폭발물 주머니를 핀셋으로 터뜨린 모습이다. 출처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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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조홍섭의 자연 보따리
빨리 걷기 경주를 하는 경보 선수에게 가장 힘든 건 달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라고 한다. 두 발이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면 가장 인간적인 동작인 달리기가 되기 때문에 실격한다.
세계적인 사회생물학자이자 개미 연구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재작년 나이 81살에 첫 소설집 <개미 둑>을 낸 것은 경보 선수의 심정에서였을지 모른다. 이미 25권의 과학저술을 내놓았고 두차례나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과학의 엄격한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젊은이를 전장에 보내는 인간과 달리 개미는 늙은 숙녀를 보낸다”고 적었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체코의 과학자 등은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최근호에서 개미의 먼 친척인 흰개미에게서 윌슨이 언급한 것과 비슷한 사례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중남미의 열대림에서 썩은 나무를 먹고 사는 흰개미의 일종인 나이 먹은 일개미가 적과 만났을 때 ‘자살 폭탄’을 터뜨린다.
연구자들은 이 흰개미의 일개미가 가슴과 배 사이 연결부위에 푸른 반점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조사 결과 이 반점은 구리를 포함한 단백질 결정이 담긴 주머니였는데, 흰개미는 두 개의 주머니를 등짐처럼 지고 다니다 다른 개미 집단과 전쟁이 벌어지면 몸을 터뜨려 주머니 속의 끈끈한 액체를 분사한다. 몸이 파열될 때 침샘분비물이 나오는데 이것이 푸른 결정과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켜 독성을 띤 액체가 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어떤 개미가 자살 공격을 감행하는지 알기 위해 개미의 집게처럼 생긴 아래턱 끝이 얼마나 무뎌졌는지를 조사했다. 흰개미 성충은 허물을 벗지 않기 때문에 나이를 먹을수록 집게가 무뎌진다. 그 결과 나이를 먹은 일개미일수록 체중은 주는 반면 등에 짊어진 ‘폭약 주머니’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윌슨은 일찍이 1971년에 보르네오 섬에 있는 브루나이의 개미 가운데 자살 공격을 하는 목수개미를 발견한 바 있다. 실제로 개미, 흰개미, 말벌 등 사회성 곤충은 둥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브라질의 어느 개미는 매일 저녁 천적을 피해 굴의 들머리를 막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뚫는 일을 되풀이하는데, 굴 폐쇄작업의 마무리를 위해 몇 마리의 일개미는 굴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일을 마친 뒤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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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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