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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뜯긴 채 발견 된 노루.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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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생명] 깊은 산 어둠속의 살해… 제1용의선상에 표범
밤엔 인적 없고 수렵도 금지야생동물 천국인 그곳
고라니 셋 절벽에서 떨어지고
노루 1마리는 물어뜯긴 채 발견 국내에 맹수는 과연 살아 있을까? 일제 때 해수 구제를 명분으로 호랑이, 표범 등이 대거 포획되면서 멸종 위기에 빠졌다. 호랑이는 1924년 강원도 횡성에서 포획된 뒤 표본이나 사진 등 서식 증거가 없다. 가장 생존 가능성이 높은 동물은 표범이다. 나무를 타고 다녀 눈에 잘 띄지 않는데다 비교적 최근까지 목격담이 나왔다. 눈밭에 찍힌 표범의 발자국은 발가락이 네 개로 발톱이 찍히지 않는다. 나무를 오른 뒤엔 송곳으로 찍어 긁은 듯한 네 줄의 발톱 자국이 난다. 지난여름 한상훈 박사(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장)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올봄 경북 문경에서 절벽에서 떨어진 고라니 사체가 잇달아 발견됐다는 것이다. 차일피일 미루다 취재를 시작한 건 10월 말이었다. ‘고라니 추락사 미스터리’의 무대는 해발 1106m의 주흘산 어귀의 문경새재 옛길. 야생동물 보호활동을 벌이는 강순석(48·야생동물연합 운영위원)씨를 문경새재 앞에서 만났다. 문경시청 산림과에서 일하는 그는 고라니의 죽음에 관한 제보를 챙기고 현장을 확인한 터였다. 우리는 문경새재를 오르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8년 차를 통제했어요. 비포장도로 그대로 남아있죠. 요즈음 걷기 열풍이 부는데, 문경새재에서는 예전부터 1년에 세번씩 걷기대회를 했어요.” 걷기대회를 하지 않는 날인데도, 걷기대회를 하는 것 같았다. 가을 등산객들이 문경새재 옛길을 가득 메웠다. “이렇게 낮에 붐벼도 밤에는 쥐새끼 한마리도 없어요.” “공원 같은 분위긴데요?” “저 밑에 관리사무소 당직 서는 사람 말고 없어요.” 추락사한 고라니가 처음 발견된 곳은 문경새재 제1관문 100m 좀 못 미친 지점, 걷기 인파가 흘러가는 바로 옆이었다. 작은 시냇물(초곡천)을 병풍처럼 두른 25~30m의 절벽을 강씨가 가리켰다. “저기요?” “네, 바로 저기에서 떨어졌어요.” 지난 2월의 어느 날, 시냇물 위로 떨어진 고라니를 관리사무소 직원이 아침 순찰 도중 발견했다. 두번째 추락사는 며칠 뒤 깊은 산속에서 발견됐다. 제1관문에서 약 1㎞ 떨어진 여궁폭포 아래에 고라니가 죽어 있었다. 절벽의 높이는 약 20m. 고개를 완전히 젖혀야 벼랑의 끝이 보였다. 맹수에게 쫓겼을 가능성 커
호랑이 등 이미 자취 감췄지만
표범은 최근까지 목격담 전해져
백두대간 따라 내려왔을 수도 문경시청 공무원들이 세번째로 고라니를 발견한 곳은 <한국방송> 드라마 촬영장 입구의 높이 3m 초곡천 제방 아래였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도랑에 처박혀 죽었다’고들 했다. 높이 폴짝폴짝 뛰는 고라니가 고작 도랑에 처박혀 죽다니. 강씨가 드라마 촬영장을 가리켰다. “무언가에 쫓긴 게 틀림없어. 산에서 내려와 허겁지겁 촬영장을 가로질러 달리다가 그만 계곡으로 처박은 거겠죠.” 둘러보니 드라마 촬영장은 번잡한 마을처럼 보였다. 강씨가 “밤에는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문경새재는 낮에는 사람, 밤에는 동물의 땅이 된다. 거주하는 사람이 없으니, 밤에는 한시적인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될 만했다. 동물을 잘 아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동물은 산 깊은 곳에 살지 않는다. 동물은 사람 주변에 붙어산다. 들개와 길고양이뿐만 아니라 여우, 너구리, 고라니, 호랑이도 그렇다는 말이다. 옛날에도 밤이 되면 고라니는 농작물에 손을 대고, 호랑이는 동네 가축을 훔쳐 먹고 살았다. 2011년 국립생물자원관 조사를 보면, 고라니는 가로세로 1㎞ 정사각형 땅에 7.3마리가 산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이유는 고라니가 밤에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산악지대에는 7.6마리, 구릉지대에는 7.1마리가 산다. 고라니는 깊은 산속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문경새재의 주요 서식종은 고라니, 노루, 너구리다. 1980년대만 해도 오소리가 많았는데, 오소리 쓸개가 반달곰에 못지않다고 해 밀렵으로 급격히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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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께 문경새재에서 잇달아 고라니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맹수에 쫓기다가 추락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번째 발견 지점인 여궁폭포의 절벽을 기자가 가리키고 있다. 문경/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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