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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과 달리 낙동강 해평습지(경북 구미)의 강물이 꽝꽝 얼었다. 큰고니 같은 물새는 강이 얼어붙으면 먹이활동을 하기 힘들어진다. 10일 오전 해평습지에 큰고니로 추정되는 동물 사체를 까치들이 쪼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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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 겨울에는 ‘등 따시고 배부른’ 게 중요합니다. 약한 생명은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합니다. 적자생존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는 계절이 겨울이지만, 인간의 욕망으로 자연은 더 가혹한 환경이 됩니다. 산양이 눈사태에 갇혀 굶어 죽는 게 자연의 이치이지요. 1970년대 사람들은 꼼짝달싹 못하는 산양을 몸보신용으로 때려잡아 멸종위기로 내몰았습니다. 지금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큰고니들도 시베리아보다 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낙동강 전체가 얼음판이다보와 보 사이 강물이 갇히면서
유속이 느려진 탓이다
먹이를 구할 공간마저 잃고
새들은 얼어죽고 굶어죽는다 철새 도래지 해평습지에선
큰고니 수가 유독 줄어든데다
빙판 위 사체 한마리도 보였다
환경단체선 고구마를 뿌렸다
제발 먹어주길 바라면서… 강원도 철원 지장산 자락에 사는 도연 스님은 지난 3일과 4일 아침 산책을 나가 죽은 새들을 주웠다. 동박새와 동고비 각각 두마리가 빳빳하게 얼어 있었다. “나무 밑에 떨어져 있거나 양지에 웅크리고 있거나 추녀 밑에 떨어져 있거나, 그렇게 죽어 있어요. 추울 때는 하루에 두마리 정도 죽은 새를 봐요.” 새들도 얼어 죽는다. 노숙자들이 추운 날씨에 비명횡사하듯, 새 무리 중 약한 새들이 먼저 죽는다. 얼어 죽는 것만은 아니다. 죽음은 복합적이다. 추운 날씨는 먹이활동을 제한한다. 에너지를 보충하지 못한 새들은 굶어 죽고, 지친 새들은 포식자에게 잡혀 죽는다. 도연 스님은 6일 겨울철새인 콩새의 죽음도 지켜봤다. “옛날에는 산책하다가 소쩍새나 쇠부엉이도 죽어 있는 걸 봤지요. 강추위 때는 아무 상처 없이 얼어 죽기도 합니다.” 낙동강에도 혹한이 찾아왔다. 10일 낙단보(경북 상주)에서 구미보(경북 구미)까지 25번 국도를 따라 펼쳐진 강은 ‘얼음 아스팔트’로 빈틈없이 닦여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스케이트 종주로라고 뽐내듯이, 에스(S)자로 흘러내리는 북극의 빙하라고 우기듯이, 동결된 강이 뻗어 있었다. 묵은 눈은 4대강 자전거도로에 하얀 성벽처럼 쌓였다. 겨울 낙동강은 생명이 사멸한 시베리아 들판 같았다. 경북 구미시 해평면과 고아읍 사이, 낙동강 중류 최고의 철새도래지 해평습지도 마찬가지였다. 얼음판 위에 웅크린 겨울철새 큰고니(천연기념물 201호) 120여마리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큰고니는 긴 머리를 구부려 날갯죽지 안에 파묻었다. 배설물이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정수근 대구환경연합 생태보존국장이 말했다. “큰고니가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분변을 보고 있습니다. 흔치 않은 행동이죠. 기력이 떨어져 그런 것 같은데, 아사 직전의 상태 아닌가 걱정됩니다.” 이날 낮 12시 구미시 기온은 영하 3도. 겨울치곤 그리 춥지 않았는데도, 강은 꽝꽝 얼었고 물이 찰랑이는 구역은 아파트 한칸 크기도 안 되었다. 큰고니들은 고장난 747비행기처럼 뒤뚱뒤뚱 얼음을 탄 뒤에야 겨우 멈췄다. “저기 보세요!” 망원경에서 눈을 뗀 한 탐조가가 소리쳤다. 큰고니로 추정되는 동물이 죽어 있었다. 까치 두마리가 붙어 고기를 쪼았다. 맹금류(육식성 조류)인 흰꼬리수리가 하늘을 뱅뱅 돌았다. 흑두루미는 모래밭에서 쉬다가 여울이나 농경지에서 먹이를 찾는다. 큰고니 같은 물새는 강물에 떠다니면서 먹이를 먹는다. 천적으로부터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모두 시야가 확 트인 개활지에 터전을 잡는다. 해평습지는 이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이다. 4대강 사업이 지난해 완공되면서, 해평습지는 두가지 변화를 겪었다. 첫째, 드넓은 모래밭이 사라졌고, 둘째, 구미보와 칠곡보 사이 강물이 갇히면서 사실상 ‘호수’가 되었다. 두가지 변화는 큰고니의 죽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정수근 국장이 말했다. “강모래가 있었을 땐 새들은 물 밖에서 쉬더라도 포식자가 덮치면 재빨리 강물로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럴 공간이 없어요. 모래밭도 없는데다 강물도 얼어버렸으니까요. 아까 그 사체는 삵에 잡아먹힌 큰고니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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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경북 구미시 해평습지에 큰고니 여러 마리가 빙판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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