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의 새끼 사자들. 이들의 절반 가까이가 외도로 낳은 새끼란 사실이 밝혀졌다. 지로드 파트리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
[토요판] 조홍섭의 자연 보따리
수컷 사자처럼 욕 많이 먹는 동물이 있을까? 그 큰 덩치로 좀 도와줘도 좋으련만, 암컷들이 힘든 사냥을 마친 뒤에야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비키라고 호령한다. 게다가 새로 우두머리에 등극한 수컷들은 귀여운 새끼를 닥치는 대로 죽인다. 수컷의 이런 행동을 흔히 냉혹한 유전자의 논리로 설명한다. 재위기간이 보통 2년에 불과한데 암컷은 2년마다 임신한다. 따라서 새끼를 죽여 암컷이 다시 발정기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최선의 선택일 터이다. 이런 유아 살해 때문에 태어난 사자의 약 4분의 1이 1년도 살지 못하고 죽는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이 논리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동물들의 ‘입양’ 행동이다. 자신과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새끼를 기르는 포유류와 조류가 적지 않다. 찰스 다윈도 이 현상을 설명하느라 골머리를 앓았고,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입양은 실수”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입양은 너 자신의 번식 성공률을 낮출뿐더러 상대의 기회를 높이기 때문에 이중의 타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남의 유전자를 지닌 새끼를 받아들이는 게 일부 동물에게는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음이 유전학적 연구로 밝혀지고 있다. 남아프리카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의 사자는 우리가 흔히 아는 동아프리카 세렝게티의 사자와는 많이 다르다. 세렝게티의 사자 무리는 두 마리 또는 그 이상의 수컷이 지배하며 다른 수컷은 무리 주변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다. 살아 있는 새끼는 모두 우두머리 수컷들의 자손이다. 에토샤의 사자 무리는 수컷 1~3마리가 지배하지만 일부 무리는 수컷을 공유하기도 한다. 암컷들도 훨씬 융통성이 있어 주기적으로 무리 밖의 수컷과 밀회를 즐긴다. 최근의 한 유전학 연구에선 11개 무리의 새끼 34마리 가운데 14마리가 외도의 결과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란함의 효과는 명백하다. 만일 새 우두머리가 등장했을 때 자신과 짝짓기했던 암컷의 새끼라면 죽이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수컷이 한 마리밖에 없는 무리에서 암컷의 외도가 흔했다.
|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