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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0년대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개, 원숭이, 침팬지 등 동물들을 우주에 쏘아올렸다. 1957년 생명체 최초로 우주여행을 한 모스크바의 떠돌이개 ‘라이카’도 우주여행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발사됐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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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생명
그 이후 스미레는 마음속으로 뮤를 ‘스푸트니크의 연인’으로 부르게 되었다. 스미레는 그 말의 메아리를 사랑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라이카견(犬)을 연상시켰다. 우주의 어둠을 소리 없이 가로지르는 인공위성. 작은 창문을 통해서 들여다보이는 한 쌍의 요염한 검은 눈동자. 그 끝없는 우주적 고독 안에서 개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 중에서) 최초로 우주여행을 한 생명체는 인간이 아니라 개였다. 그의 이름은 ‘라이카’. 옛소련 모스크바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잡종 떠돌이개였다. 1957년 11월3일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를 실은 로켓이 굉음을 울리며 창공을 갈랐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궤도 진입에 성공한 지 한 달 만에, 볼셰비키혁명 40주년에 맞춰 준비된 이벤트였다. 무게 508㎏의 작은 캡슐에는 라이카가 앉아있었다. 태양광선과 우주선(宇宙線), 온도와 압력을 체크하는 간단한 기기들과 두 개의 라디오 송신기 그리고 라이카가 소비할 수 있는 얼마간의 산소와 음식과 함께. 영국 <비비시(BBC)>는 이날 지구 생명체 최초의 우주여행을 이렇게 전했다. “스푸트니크 2호는 지구 약 1500㎞ 상공에서 초속 8㎞의 속도로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 약 1시간42분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돈다…당국의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소련은 라이카를 지구에 귀환시킬 것으로 여겨진다.” 동물 우주영웅의 탄생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튿날 <뉴욕타임스>의 헤드라인은 “두번째 인공위성의 개 생존-소련 당국, 귀환할 것이라고 암시”였다. 전세계는 소련이 거둔 우주여행의 성공에 놀랐고 들떴다. 이른바 ‘스트푸니크 쇼크’였다. 소련 정부는 라이카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소거하는 생명유지장치와 먹이공급장치를 인공위성에 장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라이카를 위한 귀환 조처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원래 라이카는 모스크바의 길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최초의 무인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성공에 고무된 소련은 한달 안에 생명체를 실어보낼 계획을 세웠다. 치명적인 방사능과 살을 태우는 고온, 무중력 상태, 거친 진동 등의 악조건에는 애완견보다 길거리 개가 더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생각했다. 작은 캡슐형 인공위성에 태울 정도의 6~7㎏의 무게를 지닌, 무중력 우주복과 위생처리가 용이한 암컷 길거리 개를 찾았다. 몇 마리의 개가 훈련을 받았고 라이카가 최종 선정됐다. 최초로 우주여행을 한 생명체는모스크바의 잡종 떠돌이개였다
용감한 우주대원, 고결한 희생자…
사회주의 영웅으로 추앙됐지만
라이카는 돌아오지 않았다 낭만적 영웅 탄생의 실체는
우주개를 이용한 동물실험
1950~60년대 미·소 냉전시기
50여마리 개를 쏘아올렸고
원숭이와 침팬지도 희생됐다 라이카의 우주여행이 알려졌을 때 모든 사람들이 우주영웅의 신화만을 본 것은 아니었다. 영국의 전국애견보호협회(NCDL)는 매일 라이카를 위해 1분간 묵념하자고,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는 런던의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모여 항의하자고 주장했다. 뉴욕의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은 유엔 건물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피켓에는 “우리의 친구, 개들에게 공정하게 대하라” “우리는 인간의 친구들이다. 우리를 적절하게 대하라”라고 써있었다. 라이카가 언젠가 굶어 죽거나 산소 부족으로 숨질 것이라는 예측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당시 소련의 한 잡지에는 개 대신 낙타를 우주에 보내야 한다는 제안, 개 대신 자신이 직접 우주비행에 나서겠다는 이들의 주장도 실렸다. 발사 엿새째 라이카는 산소가 바닥나 숨졌다고 소련 당국이 발표했다. 그러나 헌신적인 희생과 비극적인 결말은 영웅 드라마를 강화하는 법이다. 라이카는 미소 냉전시기 미국보다 앞선 사회주의의 우주과학 기술을 상징했다. 사회주의 인민의 영웅을 넘어선 인류의 우주시대 개척자였다. 라이카가 훈련받은 거처에는 곧바로 “여기 지구궤도 위성비행에 성공한 개 ‘라이카’가 여기 살았다”는 청동 기념판이 붙었다. 1958년 소련에서 최초로 생산된 필터 담배에는 그의 그림과 함께 ‘라이카’라는 상표가 붙었다. 루마니아, 알바니아, 폴란드, 북한 등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라이카에 이어 우주여행에 나선 개 ‘스트렐카’와 ‘벨카’는 지구 궤도에 24시간 머문 뒤 귀환에 성공했고, 흐루시초프는 두 마리가 낳은 강아지 한 마리를 미국 케네디가에 선물로 줬다. 러시아 역사학자인 에이미 넬슨 미국 버지니아공대 교수는 우주개 열풍의 이면에 사회주의 반려견 문화가 자리잡고 있음을 주목한다. 개 키우기는 부르조아 계급의 사치 문화로 볼셰비키들에 의해 낙인 찍혔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국가체제가 확립되면서 개를 키우는 가정이 조금씩 늘어난다. 동시에 군견, 사냥견, 목양견 등 개는 사회주의 재산을 지키는 파수꾼이나 노동자로 묘사됐다. 라이카도 인간을 위해 일하는 묵묵하고 충실한 노동자이자 노동영웅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넬슨 교수는 분석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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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우주여행을 마친 침팬지 ‘햄’이 수거된 우주선에서 발견돼 미국 배에 오른 모습.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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