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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13 20:24 수정 : 2012.04.18 11:13

밀당 고수인 딸 소이의 돌을 맞아 카메라 앞에 선 박만규씨 가족.

[토요판] 가족관계증명서

‘밀당’ 고수 소이에게.

네 엄마는 17개월 된 너에게 밥을 먹일 때면 너와 함께 놀이를 하며 밥을 먹인단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거나, 동화책을 읽으면서 밥을 먹이는데 그것이 그렇게 평온하고 쉬워 보일 수가 없었지. 어느 날 네 엄마가 저녁나절 외출할 일이 있었는데, 너를 밥 먹이고 재우는 일을 걱정했었지. 아빠는 ‘혼자 밥 먹일 수 있다’며 네 엄마를 외출시켰어.

그러나 네 엄마가 나가고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너는 엄마를 찾으며 투정을 부려댔어. 엄마가 하던 대로 티브이도 보여주고, 노래도 불러줬지만 너는 막무가내였지. 밥은커녕 평소에 좋아하던 치즈와 김, 과자도 마다했어.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도 보여줬고, 밖에 데리고 나가봤지만 짜증만 늘고 있었지. 너를 달래며 직접 노래하고 춤도 추고, 안아주고, 비행기도 태워주기 시작했단다. 정말이지 열과 성을 다해서 놀아주니까 너는 그제야 간신히 밥을 조금 더 먹었고, 이후에는 지쳤는지 간신히 잠이 들더구나.

사실, 아빠는 그런 네가 조금 얄미웠어. 엄마랑은 그렇게 밥도 잘 먹고 잘 놀면서, 어떻게 아빠한테는 이렇게 야박한가 싶기도 했지. 그런데 이런 아빠의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넌 신기하게도 내게 다가와서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안아주기도 하고, 네 입으로 들어갔던 과자를 꺼내주기도 하더구나.

얼마전 아빠는 회사에서 약간 안 좋은 일이 있어 불쾌해하며 집에 들어왔었지. 힘들어하는데 네가 평소에는 하지 않던 재롱을 부리기 시작했어. 네 덕분에 아빠는 크게 웃었고, 다시금 기분이 좋아져서 네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까주었지. 그런데 아빠 기분이 좋아진 걸 알아차렸는지 “아빠 한입 주세요” 하는데 주지 않더구나. “엄마 한입 주세요” 하면 한 개를 통째로 갖다주면서. “엄마, 뽀뽀~” 하면 고개를 돌려 뽀뽀를 해주는 너는 “아빠, 뽀뽀” 하면 왔다가도 그냥 가버리는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17개월 된 너는 고도의 ‘밀당’ 전문가더구나. 아빠 기분이 별로일 때는 애교를 부리지만, 아빠가 너에게 관심을 보일 땐 네 엄마만 찾으니 말이야. 마치 연애 시절 네 엄마를 보는 듯하구나. 이목구비 구석구석 네 엄마와 닮기도 했거니와,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밀고 당기기’의 고수라는 점은 어쩜 그렇게 똑같니.

아빠는 오늘도 두 밀당 고수가 살고 있는 집으로 퇴근한다. 소이야, 오늘은 아빠도 끼워줘! 아빠가 맛있는 바나나도, 딸기도 사줄게!

서대문에서 소이 아빠 박만규

▶‘가족관계증명서’는 독자들의 사연으로 채우는 코너입니다. 가족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속 얘기를 추억이 담긴 사진과 함께 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에는 서울랜드에서 빅5 이용권(4인 가족)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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