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판] 가족
어느 주말부부 이야기
▶주말부부의 증가로 부부 10쌍 중 1쌍이 따로 살고 있다는 통계청 발표가 얼마 전 나왔습니다. 먹고살기 팍팍한 세상, 잘살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주말부부 생활이 결국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은 “주말부부 생활을 원활히 유지하려면 주말에 만나 그동안 미뤄놨던 일만 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말고, 서로의 마음을 채우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합니다.
쓸쓸해도 애틋해서 좋았다그런데 남편 핑계는 점점 늘고
만나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남편집을 깜짝 방문하던 날
대문 비밀번호가 바뀌었다
“들어가서 기다릴게”
“집 앞 식당에서 만나자”
얼마 뒤 스르르 열린 문으로
낯선 여자가 걸어나왔다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남편 집’으로 향하는 고속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김현희(가명·48)씨의 마음도 함께 흔들렸다. 김씨는 남편과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공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3년 전, 전라도의 한 소도시의 지사로 발령을 받은 뒤부터다. 서울에서 네댓시간이나 떨어진 곳, 아직 학업을 마치지 못한 두 아이를 생각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편더러 회사를 관두라고도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김씨 부부는 “애들을 위해서” 당분간 주말부부로 지내기로 결정했다. “착실하고 가정적인 남편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단”이었다. 주말부부 생활은 남들 얘기만큼 나쁘지만은 않았다. “가끔 쓸쓸한 것을 빼면, 오히려 더 좋은 점이 많은 듯했다.” 매주 금요일 밤, 서울로 올라오는 남편을 마중하러 고속버스 터미널에 나갈 때면 공연히 마음이 설레었고, 일요일 저녁 남편이 돌아갈 때면 한없이 쓸쓸한 게, 연애할 때처럼 애틋한 마음이었다. 자주 못 만나니 자연스레 사소한 잔소리는 웬만해선 참게 됐다. ‘혼자 밥이나 제대로 챙겨먹었을까’ 하는 마음에 남편이 오는 날엔 반찬 하나라도 더 신경을 썼다. 남편도 “신혼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며 좋아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며 주말부부 생활을 만류했던 친구들에게 으스대고 싶은 맘도 들었다. “우리 남편은 다르다”고. 물론 주말부부 생활이 쉽기만 한 건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번이라지만, 왕복 8시간 넘는 거리를 매주 오가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일에 시달려 파김치가 된 남편은 집에 와서도 주말 내내 잠만 자다 가는 일이 잦아졌다. 남편이 안쓰러워 김씨가 남편 집으로 갈 때도 있었지만, 수험생인 아이들은 오히려 주말에 엄마 손을 더 필요로 했다. 아주 큰 부담은 아니었지만 교통비도 만만찮았다. 그러다 보니 부부의 만남은 2주에 한번, 3주에 한번꼴로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아쉽긴 해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다. 남편은 한결같이 착실했으며 가정적이었고, 아이들도 별 탈 없이 잘 자랐으니까. ‘이상’을 감지한 건, 둘째 아이가 대학에 입학한 뒤부터다. 이제 애들도 제 앞가림할 만큼 키워놨겠다, 김씨는 남편과의 관계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보, 여행삼아 이젠 내가 매주 내려갈게.” 김씨의 말에 남편은 달가워만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고생스럽게 뭘 그러느냐”며 말렸다. 자상한 남편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출장이다” “휴일 근무다” 핑계가 잦아지다 보니 김씨가 내려오는 걸 꺼린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남편은 “바쁘다”며 다음주를 기약한 터였다.
|
한겨레 자료사진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