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판/가족] 고아랑 결혼하고 싶은 여자
나는 시부모에게 결투신청 하기 싫어요
난 변하지 않을 거다결혼 후에 각방을 쓸 거고
아이는 내가 원할 때 가질 거다
이걸 용인할 시월드가 있을까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에서
시부모 흉보는 며느리들 한심
부모 있는 남자와 결혼할 때
애당초 예상을 못했나? ▶나는 개인으로 존중받고 개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한곳을 바라보는 것이지, 두 사람이 하나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결혼한 뒤 각방을 쓰겠다는 외계인을 이해해줄 쿨한 시부모님, 우리나라에 없다는 거 잘 압니다. 그래서 내 나이 서른셋, 고아랑 결혼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과연 제가 사람 사는 이치 모르는 철없는 사람일까요? 비난 듣기엔 억울합니다. 한국방송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쿨당)의 여주인공 차윤희는 고아와 결혼하는 게 꿈인 커리어우먼이었다. 윤희는 늦은 나이에 자신의 이상형에 꼭 맞는 성공한 고아 방귀남과 결혼하지만 예상치 않게 귀남이 친부모님을 찾게 되면서 시월드에 입성하게 된다. ‘넝쿨당’은 올해 방송 3사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터라 ‘시월드가 싫어서 고아와 결혼하려는 여자’의 이야기가 더이상 대중에게 낯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내가 “만일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고아와 하겠다”고 말하면 아직도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기본적으로 비혼주의자다. 그러나 내 비혼주의를 날려버릴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거나, 혹은 부모님이 사위를 꼭 봐야겠다고 염원한다면 못 이겨 결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고아면 좋겠다. 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시부모님을 모실 수는 없다는 이기적인 인간은 아니다. 오히려 남편이 자신의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면서 아내 눈치를 보게 해서는 안 되고, 어느 쪽이든 부모님이 늙거나 병드시면 당연히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효심 깊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고아와 결혼하고 싶다’는, 사회적으로 쉽게 용인될 수 없는 말에 악플이 달릴 것을 알면서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가치관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나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무뚝뚝한 경상도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탓인지 타인에게는 물론 가족에게도 살가운 표현을 해본 적이 없다. 부모님께도 용건 없이 전화하는 일은 거의 없고 부모님 역시 그러시지만, 서로 ‘사랑한다는 마음’은 아니까 서운해하지 않는다. 물론 마음은 마음일 뿐 부모님이나 나나 손발이 오글거려서 그 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어 본 일은 없다.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해져본 적도 별로 없고 궁금하지 않은 안부를 물어본 적도 없다.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정말 밥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에게만 한다. 내가 아무 의미 없이 한 말에 상대방이 기분 상했던 일은 다반사다. 물론 상대방이 아무리 설명해도 나는 그가 기분 나쁜 이유를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성숙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학술적(?) 근거를 갖고 이야기하자면 나는 MBTI 성격유형 중 사회성이 부족하다 못해 아예 없다는 INTP형이다. 내가 고아와 결혼하고 싶은 이유는 간단하다. 30년을 넘게 이렇게 살아온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나를 이해하고 좋아해줄 시부모님은 대한민국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는 현재의 인간관계도 충분히 피곤한데 시월드라는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싶지 않기도 하다. 내가 부모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하는 순간 가치관과 생활습관의 차이로 인해 시부모님과 나 사이에 끝없는 싸움이 시작될 것은 분명하다. 배려와 사랑으로 그런 차이를 조금씩 좁혀가는 게 가족이고 인생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고 나름대로 살면 모두가 편할 것을 왜 굳이 서로 맞춰가야만 하는지도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의 조건이 몇 가지 더 있는데 역시 어느 것 하나 시부모님들이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다. ‘결혼 후에도 각방을 쓴다’, ‘아이는 내가 원할 때 가진다’, ‘각자의 일에 대한 모든 결정은 혼자 한다’ 등이다. 잠자리가 예민해서 옆에 사람이 있으면 하룻밤에도 수십번 깨기 때문에 잠만은 혼자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어른들에게 각방의 의미는 다르기 때문에 시부모님의 태클이 들어올 것이 뻔하다. 또 대학교 입학하면서 자취생활을 시작한 이후 누군가와 내 일을 의논하는 것이 익숙지 않다. 심지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때도 퇴사 후 일방적으로 부모님께 알렸고, 아버지는 “아빠 닮았으면 회사생활 못한다”고 한마디만 하셨다. 서른셋이나 먹은 딸에게 결혼을 닦달하지 않는 것도 내 결정을 존중해 주시기 때문이다. 시부모님도 내 부모님처럼 쿨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사소한 문제들은 제쳐두고 나이 많은 며느리의 노산을 걱정해 어른들은 빨리 아이를 가질 것을 종용할 것이다. 커리어우먼에게 출산은 인생을 바꿔놓을 중요한 문제니 아이를 낳을 당사자인 내가 결정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대한민국 며느리가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
결혼. 한겨레 자료사진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