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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25 20:49 수정 : 2013.01.25 20:49

아들 용근이가 엄마의 생일이라고 만들어준 음식 선물.

[토요판] 가족관계증명서

놀랐죠? 히히. 여보, 나 사실 애들이 어렸을 땐 회사일로 바쁜 당신에게 은근히 섭섭했어요.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우리를 아빠 없는 가족으로 만드는 것 같았거든요. 당신 알다시피, 우린 다 같이 찍은 가족사진도 별로 없잖아요. ‘이 세상에서 자기 혼자 회사생활 하고 자기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나?’ 그랬어요. 그런 당신이 미워서 솔직히 알게 모르게 당신을 왕따시키기도 했어요. ‘나이 들어서 자기 빼고 우리 셋이 오손도손 똘똘 뭉쳐 잘 지내야지’ 했거든요.

우리 아들 용근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 사춘기를 심하게 겪으면서 그런 생각이 달라졌어요. 왕따시켰던 당신이 ‘사춘기 남자아이는 엄마보다 아빠 말을 더 잘 듣는 법’이라며 방황하는 아들에게 아빠의 역할을 제대로 해줬기 때문이죠. 아이들 교육에는 관심도 없는 것 같았던 당신이 180도 변해 아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니 새삼 당신이 존경스러워지더군요.

여전히 회사일로 바쁘면서도 요샌 주말이면 아들과 장기도 두고, 등산도 가고, 목욕탕도 가는 당신. 또 당신은 ‘엄마에게 잘해줘야 한다’며 아들의 효심까지 자극하고 있어요. 자식이 뭔지. 반항하고 예의없이 구는 아들을 보면 속이 터질 만도 한데, 다그치기보다는 다정한 말투로 옆에서 이해하며 들어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당신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런 당신 덕분에 아이가 금세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덕분에 나도 또래 친구들이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티브이를 보면서 킥킥거리며 웃는 용근이를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웃길 땐 웃고 슬플 때 슬픈 감정을 드러낼 줄 아는 건강한 아이로 자랐구나’ 하면서. 용근이 덕에 나도 성장하는 것 같네요.

얼마 전엔 용근이가 생일 선물이라며 평생 잊을 수 없는 음식을 만들어줬어요. ‘엄마 선물해줘야 한다’며 학교 끝나고 집으로 바로 돌아와서 팬더 주먹밥과 돈가스를 만들었지 뭐예요. 식지 말라고 포일에 잘 싸고 비닐봉지를 한번 더 씌워 덮은 뒤, 편지와 함께 주더라고요. 방황하던 아이가 챙겨준 선물이어서 그런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러고 보니 여태껏 당신한테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쑥스러워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언제나 말없이 지켜봐주고 믿어주는 당신이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이런 남편을 왕따시켰던 것도 미안하고요. 진심이에요.

그런데 자기, 솔직히 말해봐요. 왕따당한 거 알고 있었죠?

당신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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