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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가족] 사이비 교회에 빠진 아내
당신이 천국에 집착하자 나에겐 지옥이 다가왔다
자주 “외롭다”던 아내는주님 안에서 삶을 찾았다고 했다
1000만원 대출받아 헌금을 냈다
십오조로 바치는 헌금은
천배로 돌려주실 ‘재테크’란다
도무지 이대론 살수 없어서
하지 말아야 할 손찌검도 했고
교회 좀 그만 가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아내는 기도원 갔다
이혼 밖에 방법이 없는 걸까 신문 사회면에는 사이비 종교의 폐해가 종종 보도됩니다. 지난해 “악귀를 쫓는다”며 자녀 셋을 굶겨 죽인 부모도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었죠.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은 “마냥 남의 일만 같지만 사이비 종교에 빠진 가족 문제로 상담소를 찾는 이들이 꽤 많다”고 하네요. 그는 “의존성이 높은 이들일수록 현실도피적인 종교에 깊이 빠져들기 쉽다”며 “가족 안에서 자기 존재를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 남편의 속이 터지는 건 아내가 따라나선 게 사랑에 빠진 ‘다른 사내’가 아니라 영혼을 구원해준다는 ‘하나님’이란 점이다. ‘갑’도 이런 ‘갑’이 없다. 대체 보이지 않는 신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란 말인가. 남편은 허공에 대고 맨주먹질을 하는 기분이다. “그놈의 사이비 교회 좀 그만 가라!” 남편이 참고 참다가 던진 이 말 한마디에 아내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가버렸다. 친정에서, 교인 집에서 며칠간 머무나 싶더니 이젠 아예 기도원으로 들어가버렸다. 식구들이야 어찌 되든 관심도 없는 모양이다. 아내는 연락도 없다. ‘대체 어느 하나님이 제 남편도, 아이도 헌신짝처럼 내버리라고 한단 말인가. 이게 다 번지르르한 말로 신자들을 현혹시킨 사이비 목사 탓이다.’ 남편의 분노가 목사에게로도 향한다. 도무지 이대로는 살 수 없다. 남편은 아내와 이혼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공부는 뒷전이고 자꾸 엇나가기만 하는 고3, 중3인 두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아내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건 신혼 때부터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부터 ‘열성 신자’였던 건 아니다. 그저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적당한 헌금을 내는 정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도 두 아이도 함께 교회에 다녔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의 교회 활동은 범위가 넓어졌다. 아내는 일요일·수요일 아침·저녁 예배는 물론 금요 철야 기도회까지 꼬박꼬박 참석했고, 전도나 봉사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자연히 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감투’ 수도 늘어갔다. 아내는 “주님 안에서 내 삶을 찾았다”고 말했다. 아내가 행복함을 찾았으면 됐지 그게 무슨 문제냐고? 그것도 어느 정도껏 할 때 얘기 아닌가. 아내가 교회에 집착할수록 가족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항상 교회 일이 최우선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아내는 당당한 이유를 댄다. “우리가 이만큼이나 사는 게 다 하나님 덕분이기 때문”이란다. 새벽부터 교회에 나가느라 아내로부터 아침 밥상을 받아본 지가 언젠지도 모르겠다. 간혹 밥상을 차려도 콘플레이크나 토스트 정도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거나 주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열성적으로 교회 활동을 할수록 아내는 ‘현실’과 멀어지는 듯 보였다. 오로지 언젠가 ‘하나님’이 오실 날, 그날만을 위해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내에게 현실 세계는 타락투성이 지옥이었다. 구원을 받으려면 신의 말씀대로만 살아야 한다고 했다. 세상을 제가 믿는 ‘하나님’(혹은 하나님을 내세운 목사)의 잣대로만 보니 도통 대화라는 게 통하질 않았다. 아내는 아이들이 속상한 일을 겪은 날에도 “하나님이 주신 시련이니 기쁘게 이겨내라”고만 했다. 교회에 가기 싫다고 불평이라도 하는 날엔 “네 속에 사탄이 들어왔다”고 했고, “지옥 불구덩이 떨어지려고 그러느냐”고 어깃장을 놓기도 했다. “엄마와 얘길 해봐야 말이 안 통한다”며 아이들은 입을 닫아버린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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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붉게 빛나는 교회 십자가. 한겨레21 류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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