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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까지 혼자 살아온 새아버지
그에게 갑자기 뚝 떨어진
20대 여자아이는 외계인이었다 내 생활리듬 전혀 이해 못하는
새아버지는 사사건건 잔소리
집을 나와 친아버지에게 갔다
엄마는 중간에서 눈치만 보고
도로 들어갈까 말까 고민중이다 마찰은 점점 심해졌다. 22살 여름, 집에 새아버지와 엄마의 손님이 왔다. 나는 인사하고 나서 방구석에 틀어박혀 자는 척을 했다. 문 건너로 새아버지가 나를 가리키며 ‘젊은것이 집에서 빈둥거린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참을 수 없었다. 곧바로 일어나 짐을 쌌다.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살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갑자기 짐을 싸기 시작했으니 새아버지, 엄마, 친구분 전부 당황했다. ‘왜 그러냐’는 엄마의 물음에 나는 새아버지에게 물어보라고 일갈했다. 친구분은 버스정류장까지 나를 따라 나와 집에 돌아가자고 권유했다. 이를 거절하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집에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비 내리는 버스 안에서 혼자 훌쩍였다. 난 친아버지에게 전화해 도와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큰일도 아니었다. 단지 새아버지는 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게 말했을 거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이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우린 서로 이해할 시간도 없이 가족이 된 것이 문제였다. 그 후 나는 엄마에게 낯선 사람이 모여서 가족이 되었으면 서로 노력해야 하는데, 새아버지가 말로 상처 주는 걸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내 마음도 이해하지만 새아버지 맘도 이해한다고 했다. 같이 가족으로 묶였으면 아이를 제대로 가르쳐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가운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뒤로 집으로 들어갈 일이 생길 때마다 엄마는 무조건 ‘새아버지와 내가 한 지붕에 살게 하지 않겠다’ 작전으로 나갔다. 집에 오래 있다 싶으면 눈치 보인다고 학교에 가든 일을 구하든 집을 나가라고 하셨다. 재혼할 때 했던 ‘나이 먹고 애 낳고도 집이라고 찾아올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겁 많은 엄마로서는 최선이었겠지만 나는 서운했다. 자식인데 버려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무렵 내 친구 어머님도 재혼했는데 그 집은 전혀 달랐다. 새아버지는 친절하고 아이 입장에서 많이 생각해주는 요즘 대세라는 ‘프렌디’(친구 같은 아빠)였다. 친구도 재혼으로 많이 행복해했다. 친구가 부러웠다. 가족과 소통하고 이해받는 게 부러웠다. ‘우리집은 왜 그럴까’ 하며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이젠 뭐 그냥 내 팔자려니 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까. 어떤 사람은 잘 맞는 사람끼리 만나 쉽게 가족이 될 수 있었다. 단지 우리집은 시간이 좀더 필요한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편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이젠 나도 ‘집’이란 곳에 대해 나름대로 답도 내렸다. 시간이란 건 서로를 더 알게 하고 더 이해하게 만든다. 새아버지의 말에 여전히 화날 때도 있고 새아버지 역시 여전히 쟤는 왜 저러냐 하겠지만, 언젠가 새아버지가 말했다. 그래도 아직 나는 너의 그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믿는다고.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시간이 지난다면 어른이 된 나는 좀 능글맞아지고, 새아버지는 요즘 애들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될까. 여전히 우리 엄마는 새아버지의 눈치를 본다. 지난여름을 집에서 보내겠다고 하니 새아버지와 상의한 뒤 연락해주겠다고 했다. 이젠 그냥 엄마의 천성이려니 한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도 안 하는 분이다. 어렸을 때는 서운했는데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수 있게 됐다. ‘재혼 가족’에 새로운 정의를 내리게 한다. 새 가족은 더 많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내가 새아버지에게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더 많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언제나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그게 간단히 될 리 없고 아직도 우리집은 그 길을 열심히 내는 중일 거다. 남들보다 수가 조금 많은 부모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새아버지의 ‘별에서 온 그대’
몇 날이고 잠을 뒤척이게 한 가족과의 갈등, 가족 앞에서 차마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진짜 속마음, 남에게 하소연하기도 어려운 가족의 비밀이 있다면 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가족관계 증명서’는 독자들께서 보내준 글로 채워집니다. 미안하거나 고마운 마음에 가족에게 하고 싶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있다면 편지(원고지 6장 분량)로 써주세요.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원고료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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