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
[토요판] 가족 나의 이모
▶ 가족 가운데 때로 한심하거나 걱정스럽게 보이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갉아먹는 남자들에게서 50년간 헤어나오지 못한 이모가 글쓴이의 집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그의 보호자가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모의 ‘아는 남자’가 새벽에 집 앞에 찾아와 ‘깽판’을 치는가 하면 나이 서른이 넘도록 피시방에 출근하며 용돈을 얻어 가는 이종사촌형이 이모의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늘 홀로 있지 못하는 이모는 언제쯤 행복을 찾게 될까요?
가난이 대문으로 오면 사랑이 창문으로 나가네
“야, 대꾸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새벽부터 엄마가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이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이렇다. 이모가 최근 알게 된 남자가 있는데 술을 먹고 새벽 5시에 이모 집 앞에 와서 문을 열라며 소리를 지르는 등 ‘깽판’을 쳤다는 이야기다. 그가 왜 새벽에 왔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엄마는 그냥 혀를 끌끌 찼다.
집에서 막내였던 이모는 어렸을 때 사랑받기보단 방치되었던 존재였고, 커서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가까운 우리 엄마에게 의지하고 있다. 이모가 같은 동네로 이사 오면서 엄마는 이모를 부쩍 챙기기 시작했다. 한때는 한심하고 답답하게만 보였던 이모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이모를 처음 본 네 살 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갔을 때 난 이모네 집에 맡겨졌다. 그 집은 크고 깨끗했으며 이모도 자상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픈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큰 개를 키우고 있었고, 집으로 가겠다고 떼를 써서 이모네 집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이모는 개를 키우지 않으면 답답할 수밖에 없던 삶을 살고 있었다.
최근 알게 된 이모의 남자가 집 앞에서 ‘깽판’을 친단다
이모는 엄마에게 SOS를 쳤다
쯧쯧,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발목 잡는 남자들 속에서 50년
폭군 같은 외할아버지 피해
18살 연상 남자와 결혼했으나
집이 망하자 원수가 되어갔다 떠나지도 머무르지도 못하는 곳에서 삶은 유지되는 걸까? 이모는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발목 잡는 남자들 사이에서 오십년을 살았다. 지금도 종종 연락이 온다는 이모부는 어디선가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지원금을 받아 살아간다. 이모는 “서울 밥대(법대)를 다녔던 인간이 매일 천장에 엑스레이를 찍는다”(매일 밥만 축내고 누워만 있는다고 이모부를 밥대생이라 불렀다)고 말했다. 물론 이모부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모부와 따로 살게 된 것은 엄마의 지난한 잔소리 때문이었다. 이모 혼자 살 방을 직접 계약했고 이제는 독립해서 살라고 했던 것이 벌써 10년은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이모의 이사를 묵묵히 도와주던 어느 여름날이 생각난다. 이모와 그때부터 동네 이웃이 되었다. 이모는 엄마에게 자주 찾아와 고민을 나누고 엄마는 나와 상의해서 조언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이모의 보호자가 되었다. 이모부가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니다. 이모네 가족은 서울 은평구의 마당이 딸린 3층 주택에 살았다. 하지만 집 장수 말에 속아 대출로 집을 다시 지었는데 부실 공사로 돈은 돈대로 쓰고 곳곳에서 물이 새 세입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방수한다고 수리비만 계속 나가다 집이 망해갔다.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창문으로 나간다고 했나. 집이 망하자 이모부의 히스테리가 시작됐다. 의처증, 폭력, 잦은 부부싸움에 부부는 원수가 됐다. 싸움 뒤에 이모는 항상 집을 나갔다. 그러나 며칠 뒤 이모부의 입 발린 말에 속아 다시 이모는 집으로 들어간다. 이모는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자식에 대한 정, 경제적 부담, 남편과의 정, 고독에 대한 불안…. 이모와 이모부는 나이가 18살 차이 난다. 이모가 20살 때 이모부는 38살. 아버지 같은 푸근함이 좋았을까. 아무것도 모르던 순진한 스무 살 처자는 집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위해 집을 나와 절에 들어가 결혼식을 마치고 이모부와 살림을 시작했다. 이모의 결혼은 합리적으로 집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막내였던 이모는 귀염둥이가 아닌 무관심으로 상처받은 존재였다. 목소리가 유난히 큰 외할아버지는 툭하면 집에서 호통을 치고 첫째 아들인 큰외삼촌과 외할머니를 때리기 일쑤였다. 이모가 태어나서 처음 본 남자인 아버지의 모습은 폭군이었으니 스무 살이 되자마자 아버지보다 자상한 남자가 나타나 바로 결혼을 결심한 것이다. 이모에게 가족이란 남자였다. 이모가 마지막까지 함께 살았던 남자는 이모의 큰아들이다. 사촌형은 관심사가 다양했는데 10년 전엔 사진을 공부한다고 한창 비싼 사진기를 사모았고 사진 일을 관두고는 게임에 취미를 붙여 피시방으로 매일 출근을 했다. 나이 서른다섯이 넘어가던 어느 날 신용불량자가 된 사촌형은 이모 명의를 빌려 휴대전화를 개통했다. 엄마는 “이모가 아직도 그놈(첫째 사촌형) 용돈 주나봐”라고 말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가끔 사촌형이 날 찾아도 이모에 대해 물으면 모른다고 잡아떼곤 했다. 그게 이모를 보호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에게 큰아들은 연민의 대상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이기도 했다. 이모부가 돈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는 이모에게, 이모가 남편에게 받은 억압은 큰아들에 대한 화풀이로 나타났다. 큰아들은 세상을 초탈한 듯 정처 없는 방황을 했다. 이모의 둘째 아들은 가정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독립해서 안부만 전하고 부모를 잘 찾지 않는다. 엄마 말로는 그가 대학을 혼자 공부해서 들어간 이후로 독립해서 밥벌이 잘 하고 산다고 한다. 남들이 보기엔 둘째 아들이 대견할지 몰라도 이모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자주 속 썩이더라도 옆에 있는 큰아들에게 정을 주었다. 요즘 이모는 언니인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들어 보인다. 고생과 불안이 얼굴에 묻어나는 것을 보며 그간 힘들었던 삶에 마음이 아련해진다. 외할아버지와 같은 남자를 피해 남편을 선택했지만 그는 나이만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었고 이모의 첫째 아들 역시 그 모습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모에게 자립심을 설파하는 것이 어쩌면 폭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외할아버지의 호통을 들은 날이면 온몸이 경직되어 잠을 설쳤고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어서도 이부자리에 지도를 그렸다는 이모는 지금, 외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가장 자주 드리는 자식이다. 이모는 혼자 살지만 홀로 있지 못한다. 지난주에 새벽에 난동을 부려 이모를 공포에 떨게 했던 남자는 이모를 또 찾아오려나? 이모는 그 행패를 끊어낼 수 있을까? 이모의 조카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