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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18 20:30 수정 : 2016.03.20 16:50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있는 달팽이집 1·2호의 식구들. 가운데 웃고 있는 이가 임소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경영지원팀장이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제공

[토요판] 인터뷰 ; 가족
달팽이집 유사가족에게 생긴 일

▶ 생애 처음 만난 사람들이, 청년 주거문제를 함께 해결해보자며 한데 모여 살게 됐습니다. 자잘한 문제들이 이루 다 말할 수 없겠죠. 하지만 이들은 슬기롭게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나갑니다. 혈연의 가족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인터뷰; 가족’은 독자 여러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명과 익명 기고 모두 환영합니다. 보내실 곳 gajok@hani.co.kr. 200자 원고지 기준 20장 안팎.

‘달팽이집’. 청년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이 청년 주거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주택협동조합을 설립해 직접 공급하고 운영하는 집이다. 현재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있는 달팽이집 1호와 2호에 17명이, 성북구 동선동 3호집에 13명이 살고 있다. 은평구 신사동 4호집엔 조만간 12명이 살게 된다. 이들은 두어 명씩 짝을 이뤄 한방에서 생활하고 주방이나 거실 등을 공용으로 쓴다.

내가 1호집에 입주한 건 2014년 8월. 입주 예정자 한 명에게 갑작스런 사정이 생겼고, 달팽이집을 잘 운영하려면 나 역시 ‘함께 사는 것을 몸으로 익혀야 한다’는 취지에서 내가 추가 입주자로 결정됐다. 그렇게 시작한 달팽이집에서 운영자와 입주자 사이를 오가며 2년을 살고 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매우 가치 있고 좋은 말이다. 그러나 ‘함께 생활해야 한다’로 다시 적어보면 느낌이 다르다. 서로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다 보면 어렵거나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건 특별한 일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두려움을 갖는다. 문제는 대부분 작은 것들이다. 사소하거나 혹은 치사해 보일까 싶어 상대에게 말하지 않는 것들. 그러기에 반복되고, 감정을 품게 되고,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관계 사이에 놓인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달팽이집에서 살며 내가 체득한 것은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는 것이다. 달팽이집에서는 집을 나가길 원하는 입주자에게 문제가 무엇인지 들어본 뒤 함께 시간을 두고 해결해보자고 제안한다.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주거문제연구소’라 이름 지은 ‘달팽이집 갈등관리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연구소는 회의나 생활실험 형식으로 이뤄진다. 지목된 입주자들은 회의와 실험에 적극 참여한다.

청년주거문제 대안 제시하는
주택협동조합 ‘달팽이집’
여럿이 살다 보니 불편도 많다
함께 모여 해결책을 궁리한다

코를 고는 룸메이트 언니
상대방은 매일 거실서 잔다
귀가 너무 예민한 걸까?
룸메이트를 바꿔보기로 한다

주거문제연구소 제안

달팽이 ㄱ 만나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니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달팽이 ㄱ 집을 나가야 할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계속 고민했어요. 함께 방을 쓰는 룸메이트 언니가 코를 좀 골아요. 처음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실은 한 달 가까이 거실에서 잠을 자고 있어요. 룸메이트 언니도 좋고 함께 사는 사람들 다 너무 편하고 좋긴 한데, 잠을 잘 못 자니까…. 낮 생활에도 영향을 받더라고요. 더는 어렵겠구나 싶어서요.

흠, 그럼 혹시 이 문제를 입주자들 모두와 함께 이야기해보면 어때요? 물론 ㄱ이 나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 문제만 빼면 이 집이나 사람들은 좋다면서요. 문제를 잘 해결해서 함께 더 오래 사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겠어요? 우린 뭔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달팽이집에 모인 거니까, 이 문제도 함께 해결해보면 어때요?

달팽이 ㄱ 이거 공론화하면 룸메이트 언니가 부끄러워할 수도 있는데…. 그래요, 그럼! 입주자 중에 남자는 제외하고, 여자들만 모여봐요. 입주자들에게 상황 설명과 공지는 제가 할게요.

상황을 공유한 뒤 열린 1차 주거문제연구소

달팽이 ㄱ 전 이 집이 정말 좋아요. 집도 사람도. 그리고 이런 시도도 좋아요. 그런데 룸메이트와 잠자는 환경이 조금 불편해서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해요. 먼저 룸메이트 언니가 많이 당황했을 텐데… 같이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근데 진짜 전 오래 같이 살고 싶거든요!

코골이 달팽이 미안, 나도 상황을 몰랐네. 내가 코 고는 줄은 알았지 그 소리가 커서 힘든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어. 게다가 거실에서 거의 한 달을 잤다니…. 왜 눈치조차 못 챘는지 그게 정말 미안해.

달팽이 ㄴ, ㄷ 같이 살던 우리도 몰랐는데요, 뭐. 미안. ㄱ이 늦게 자고 일찍 나가는 줄만 알았지 거기서 잤을 줄이야. 피곤해 보일 때 한 번 더 물어보기라도 할걸 그랬어요. 우리도 적극 참여할게요!

달팽이 ㄹ 어떻게 보면 이 문제 말고도 더 있을 것 같아요. 이번 기회를 통해서 다음 문제 상황도 집단으로 잘 해결해보면 좋겠다 싶네.

달팽이 ㅁ 맞아. 둘 사이 문제 말고도 이 집 전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도 있을 테니까.

달팽이집의 관리자 ‘소셜하우징매니저(소하매)의 정신’을 적어놓은 일지.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제공

일주일 뒤 열린 2차 주거문제연구소

달팽이 ㄱ 지난 모임 이후 마음이 엄청 편안해졌어요. 나만 혼자 고생한다는 생각에 억울함도 있었던 거 같은데,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하고 걱정이 많이 사라졌어요. 롬메이트와도 대화를 더 많이 했고…. 코골이에 대해 알아보니 비염이 원인일 수 있다고 해서 언니한테 물어봤더니 실제 비염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언니도 고생하고 있겠구나 싶어서 비염에 좋은 음식이랑 약 같은 걸 찾아봤어요. 또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낀 건데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귀가 예민한 편인 것 같더라고요.

달팽이 ㅁ 찾아봤는데 코에 뿌리는 약도 있던데?

달팽이 ㄷ, ㄹ 그런 약은 근데 건강에 안 좋을 수 있어. 둘 모두에게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해.

코골이 달팽이 자세를 바꾸거나 베개를 낮추거나 해봤는데 큰 효과는 없었던 것 같아.

달팽이 ㄹ 그런데 그런 방법들을 시도한다고 해도 한 번에 좋아지긴 어려울 거야. ㄱ이 방에서 잘 수 있게 빨리 해결하는 방법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예로 방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301호에서 한번 바꿔보고 해결이 안 되면 201호까지도 섞어서 바꿀 수도 있어. 201호 사람들과도 합의된 이야기야.

코골이 달팽이 ㄴ, ㄷ이 동의해준다면 난 오늘 밤이라도 자리를 바꿔서 자보고 싶어. 그래야 다음 모임 때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달팽이 ㄷ 제가 잠귀가 좀 어두워요. 깨도 다시 금방 잠드는 편이고. 그리고 ㄴ은 진짜 조용히 자요. 귀가 예민한 ㄱ과 ㄴ이 함께 자고 저랑 ‘코골이 달팽이’가 같이, 오늘 이렇게 자보는 거 어때요?

다시 일주일 뒤 열린 3차 주거문제연구소

코골이 달팽이 우리 지난주에 모두 잘 잤어요. 혹시 말 못하는 상황 있을까봐 걱정했는데 서로 계속 물어봐줬어. 무슨 상태 점검 하듯이 ㅎㅎ.

달팽이 ㄱ 맞아요. 서로 아침에 만나서 하는 인사가 ‘잠자리 괜찮았냐’였어요.

달팽이 ㄷ 저도 한두 번 정도 말고는 코 고는 소리 거의 못 들었어요. 이 정도면 이렇게 지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코골이 달팽이’가 불편한 게 있는데 말 못하고 있을까봐 염려돼요.

달팽이 ㄴ ‘코골이 달팽이’도 불편한 게 있으면 정확히 말해줘야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될 것 같아.

코골이 달팽이 약간 몸 자체가 긴장 상태인 것 같긴 해. 근데 지금 환경이 불편하고 그렇진 않아.

달팽이 ㄱ 그럼 이렇게 지내는 것으로 주거문제연구소를 마무리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쩌면 요란스러울 수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다들 참여해줘서 고맙고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우리가 코골이라는 주제를 두고 이렇게 많은 정보와 시간을 들일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달팽이 ㅁ 맞아 재밌었어. 토론도 하고 나름 진지한 상황인데 주제가 코골이야. 근데 또 생각해보면 엄청 중요한 주제였어! 다른 주제로 연구소도 종종 열려야 할 것 같아.

달팽이 ㄷ 다른 사람들도 이번을 계기로 부담스럽지 않게 주거문제연구소를 제안할 수 있지 않을까?

달팽이 ㄹ 점차 다듬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모두의 입장이 균형 있게 드러나게끔 신경 쓰는 게 중요할 것 같아.

요즘 청년들은 개인적이라 함께 살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하지만 적절한 환경과 관계망이 형성되면 우린 함께 잘 살기 위해 충분히 노력한다. 달팽이집에서는 빈 밥통에 쌀을 안치고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 이웃과 사회와 만나는 시도도 놓지 않는다. 달팽이집의 삶이 잘 유지되도록 입주자들은 여러 시도를 한다. 쉽진 않다. 다만 이곳에서 갈등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한 발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실험이 또 하나의 주거문화로 자리잡길 바란다.

임소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경영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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