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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사 영업정지로 시장이 얼어붙은 서울 구의동 강변테크노마트 6층 휴대전화 매장에서 직원이 아닌 손님을 찾기는 쉽지 않다. 첫 판매 실적으로 그날의 장사 운을 가늠하는 “마수했냐?”는 말은 상인들 간에 사라진 지 오래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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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영업정지 휴대전화 매장
▶ ‘규제의 역설.’ 좋은 뜻으로 시장을 규제했지만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때 쓰는 말입니다. 불법 보조금을 지급해온 이동통신사가 지난 13일부터 영업정지에 들어가면서 오히려 마케팅 비용을 줄였습니다. 반면 휴대전화 판매점과 이동통신 대리점이 밀집한 테크노마트 6층의 소상공인은 하루 밥벌이가 없어 울분을 토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왜 휴대전화 출고가와 이동통신 비용은 규제하지 않는 걸까요? 설마, 영업정지로 ‘규제의 역설’을 의도한 건 아니겠죠?
“꿈을 가진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
서울 구의동 강변테크노마트 6층 휴대전화 매장 벽면에는 건물 관리회사인 프라임산업주식회사가 작성한 공문이 붙어 있다.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문구 아래 영업관리규정 11조에 따라 무단 개폐점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상인들은 지각, 조기 폐점, 무단 휴점을 하면 하루 벌금 3만원을 물게 된다. 불법 보조금 지급 중단 명령을 어긴 이동통신 3사 가운데 케이티(KT)와 엘지유플러스(LGU+)가 지난달 13일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상인들은 오전 10시면 어김없이 영업을 시작한다. 이동통신과 휴대전화 기술은 첨단의 길을 따라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상인들의 하루는 날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라도 더 파는 것, 밥벌이의 소리 없는 경쟁은 오전 10시부터 그렇게 시작된다. 휴대전화 판매점 190여곳, 통신사 대리점 20여곳이 밀집한 테크노마트 6층에서 휴대전화 1개, 이동통신 신규 가입자 1명은 ‘꿈의 단위’다.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들렀다 가세요.” 지나가는 손님을 잡기 위한 호객 행위가 한창일 것 같지만, 지난 1일 오전 상가는 조용했다. 상인들은 지나는 손님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이들은 안다. 어차피 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동통신사에 대한 영업정지 처분으로 업계는 크게 얼어붙었다. 대당 100만원까지 치솟았던 보조금 규제가 강화되면서 실제 휴대전화 구매 가격도 크게 올랐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10년 정한 ‘보조금 상한 규정 27만원’ 제재가 최근 엄격해지면서 소비자들은 가격이 낮아질 때까지 지갑을 닫았다. 영업정지 처분은 지난해에도 있었지만, 이번엔 최장기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최소 45일의 영업정지다. 판매점 190곳, 대리점 20곳
테크노마트 6층은 조용했다
휴대전화 매장 줄줄이 문닫고
대리점은 이통사 눈치를 보며
문도 못 닫고 손님 없이 적자다
이통사는 마케팅 비용 줄이고
영업정지에도 주가 영향 적어
‘폰팔이’의 설움 안은 소상공인
“이통사는 지킬 앤 하이드냐
낮엔 보조금 뿌리고 밤엔 감시”
“재벌 혼내는 척하며 봐주는 거 다 알아” 테크노마트 6층 판매점 가운데 10곳은 영업정지 때문에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매장 월세 200만~300만원에 인건비며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옆 점포 상인이 며칠째 나오지 않아도 상인들은 연락을 못한다. “미안해서 못 물어보죠. 영원히 닫은 건지, 며칠 안 보이는 건지. 생계 때문에 다른 일을 알아보거나 대리운전 같은 아르바이트 하러 갔을 거예요. 지난해 영업정지 내려졌을 때 저도 새벽에 지하철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일당 7만원짜리. 이번 영업정지 처분 나고 아르바이트 모집하는 쪽에 말은 해놨어요. 자리 있으면 일하러 나가겠다고요.” 8년째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하는 김아무개(39)씨는 이렇게 말하며 에스컬레이터를 가리켰다. 에스컬레이터 계단은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며 6층으로 손님을 모시려 했지만, 계단 위는 텅 비어 있었다. 김씨의 매장은 에스컬레이터와 가깝다. 보통 매장은 월세가 200만~300만원이지만, 김씨의 매장은 에스컬레이터와 가깝기 때문에 월 400만원이다. 손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김씨의 매장 앞을 지나갔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김씨가 말했다. “아, 여기 테크노마트 직원이에요. 여기 돌아다니는 사람, 다 그래요. 아침에 일어나면 그 생각부터 하죠. ‘오늘은 한 개라도 팔 수 있을까.’ 여기 매장 다 합쳐서 하루에 휴대전화 몇 개 팔 것 같아요? 삼성 갤럭시S5가 지난달 말에 출시돼서 그나마 요즘 숨통 트였지, 영업정지 이후 매장 다 합쳐서 하루에 30개 팔아요.” 한 층 면적이 1만4582㎡인 대형 상가의 매출치곤 초라하다. 김씨는 영업정지로 직원 셋 가운데 한명을 정리했다. 나머지 둘은 돌아가며 무급휴가에 들어갔다. 6층 휴대전화 매장에서 가장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은 상인들의 사모임인 ‘상우회’다. 이날 오전 11시. 상인 일곱명이 상우회 사무실에 모여앉아 이동통신 3사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이동통신 3사는 이날 불법 보조금을 막기 위해 공동시장감시단을 가동했다. 상인들은 ‘이동통신사가 불법 휴대전화 보조금의 원인을 대리점이나 판매점으로 지목하는 처사’라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누굴 규제한다는 거야? 통신사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야? 낮에는 보조금 뿌리다가 밤엔 감시하는 이중인격이냐고? 보조금이 100만원이면, 그 돈이 어디서 나와? 이동통신 회사가 뿌리는 거잖아. 우리는 (보조금) 정책을 만들지 않아.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이거 팔면 리베이트 이만큼 나온다’고 정책표 뿌리면 거기 맞춰서 팔지. 대리점은 또 판매점에 리베이트 어떻게 줘? 본사에서 돈 받아서 우리한테 건네주는 거잖아. 이동통신 보조금 정책 때문에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지들이 우리 감시한대.” “우리도 국민들 생각하고 같아요. 통신비랑 휴대전화 출고가 인하, 그걸 원해. 정부가 영업정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뭐냐? 가계 통신비 부담 줄이자는 거 아니에요? 정부가 통신비 줄이려 노력했어요? 출고가 단속했어요? 라면값이 1000원, 2000원 올라도 난리날 텐데 대한민국 5000만 국민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 가격은 왜 100만원까지 올랐는지, 정부가 나선 적 있나? 삼성 출고가를 신고제로 해야 돼. 원가도 공개해야 하고. 중년층은 엘티이 휴대전화 요금제 써도 데이터 남고, 청년층은 데이터는 부족해도 통신사에서 무료로 주는 문자메시지는 안 써. 그런 이용 행태에 따라 요금제를 더 쪼개면 가격이 싸질 텐데. 정부는 그런 노력은 안 하고.” “정경유착밖에 더 돼? 통신비 부담된다고 국민 원성은 높고, 재벌 혼내는 척은 해야 하고, 재벌은 봐줘야 하고. 그래서 영업정지로 손보는 척하는 거야. 그런데 누가 손해야? 국민은 보조금 못 받아서 손해고, 우리 같은 소상공인은 장사 안되어서 죽겠고.” “솔직하게 이야기할게요. 여기 상인들 휴대전화 하루에 몇 개 팔 것 같아요? 영업정지 전에도 하루 2~3개 팔아요. 1대 팔면 7만~10만원 남고 유지비, 인건비, 세금 빼면 1개 팔아서 5만원, 2대 팔아 10만원 남아요. 손님들은 우리가 하루에 10대 이상씩 파는 걸로 알아. 전국 휴대전화 판매점이 3만5000개로 추정돼요. 이미 포화상태라 많이 팔 수가 없어.” “이동통신 3사가 이번에 304억5000만원 과징금 받았어. 휴대전화 한 대당 몇십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보조금 주는 걸 계산해봐. 그렇게 영업비로 돈 펑펑 쓰는 것보다 과징금이 훨씬 싸. 게다가 영업정지 먹고 가입자 증가는 없어도 감소도 크게 없어. 시장이 전반적으로 얼어붙어서 정상영업하는 에스케이텔레콤도 다른 통신사 가입자를 뺏어오질 못하니까. 휴대전화가 팔려야 번호이동을 할 거 아냐? 엘티이 시대가 되면서 3사가 미친 듯이 돈을 뿌렸다고, 최근 2년간. 정부가 무슨 유엔이야? ‘니들 2년간 전쟁한다고 돈 많이 썼지? 이만 쉬어.’ 그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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