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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09 15:33 수정 : 2012.11.10 11:53

2002년 12월16일 경기도 일산 탄현 에스비에스(S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후보 초청 합동토론회(위)와 2007년 12월6일 서울 여의도 케이비에스(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후보자 1차 합동토론회. 대선주자 티브이 토론회는 지지율을 출렁이게 할 정도의 영향력은커녕 갈수록 유권자들의 관심마저 잃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뉴스분석 왜? 1
대선후보 TV토론의 실종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텔레비전 토론이 실종됐다. 방송사와 관훈토론 등 ‘전통적’인 토론마저 열릴 기미가 없다. 유권자로서는 알 권리가 박탈되고 있다. 야권 후보단일화 토론회 한차례와 12월에 예정된 법정토론회 세차례 정도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경직된 형식으로 인해 선거의 역동성을 살리기에는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달리 왜 대선 토론이 ‘실패’하고 있는가.

1997년 첫 도입땐 ‘난립 수준’
선거 결과에도 큰 영향력
2002년·2007년엔 ‘통과 의례’
지지율 높은 후보 참석 꺼리고
발언 시간 등 공정성 강화로
깊이와 재미 놓치는 역효과도

올핸 주요 토론 대부분 무산
박근혜쪽 “사고칠까봐”
안철수쪽 “준비가 덜 됐다”
지지율 뒤진 문재인만 적극적

 

대접전 끝에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지만, 올해 미국 대선 과정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였다. 백미는 세차례의 티브이 토론회였다. 토론회 승패에 따라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 진영과 밋 롬니 공화당 후보 진영은 울고 웃었다.

10월3일 1차 토론회 전까지 롬니 후보는 오바마 후보에게 많게는 8%포인트 정도 지지율에서 뒤졌다. 공화당 진영은 롬니를 거의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전체 유권자의 47%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바마를 지지한다. 그들은 모두 정부에 기대 살고 있다”며 저소득층을 폄하하는 롬니의 발언(롬니가 지난 5월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한 주택에서 열린 비공개 모금행사에 한 연설 내용)이 9월 중순에 폭로된 게 결정적이었다.

미국에선 당락 결정하는 주요한 변수 

하지만 1차 티브이 토론회로 오바마 대세론이 꺾이고 롬니가 상승세를 탔다. 평소 말 잘하는 오바마는 1차 토론에서 날카로움이나 설득력을 잃은 채 맥빠진 모습을 보인 데 비해 롬니는 상대를 정확하고 끈질기게 공격하면서 토론을 주도했다. 두 후보의 이런 모습은 곧바로 지지율에 반영됐다. 10월16일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롬니가 51%의 지지율로 오바마(45%)를 오히려 상당한 폭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풀이 죽어 있었던 공화당 진영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오바마는 2차 토론(10.16)에 승부를 걸었고, 그의 ‘싸움닭’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2차 토론 이후 오바마와 롬니의 지지율이 비슷해졌다. 3차(10.22) 토론에서도 승리한 오바마는 근소한 차이로 롬니를 앞서기 시작했다. 여기에 막판의 허리케인 샌디 피해 때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승기를 굳혔다.

역대 미국 대선에서는 이번처럼 티브이 토론 결과가 선거전을 좌우했던 사례가 적지 않다. 첫 티브이 토론인 1960년 존 F. 케네디 민주당 후보와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의 토론(케네디 승리)을 비롯해 1980년 도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와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의 토론(레이건 승리), 1992년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의 토론(클린턴 승리)이 대표적이다. 미국 대선에서도 토론이 후보간 차별성을 그다지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것은 유력 후보들이 오랜 정치경험을 통해 자질이 대부분 검증된데다 그들의 토론 기술이 상향 평준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티브이 토론회는 이미지 정치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여전히 당선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한 변수다. 토론 결과에 따라 각 캠프의 선거운동 분위기가 달아오르거나 가라앉는 계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대선후보 티브이 토론회가 도입된 것은 1997년 15대 대선 때부터다. 14대(1992년) 대선 때도 티브이 토론회가 이뤄졌다. 중견기자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에서 김영삼(민자당), 김대중(민주당), 정주영(국민당) 후보를 차례로 불러 토론회를 열었으며,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이 이를 녹화로 중계방송했다. 대선주자들에 대한 첫 티브이 토론이어서 유권자들의 관심이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토론회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엄밀하게 보면 2명 이상의 후보자들끼리 하는 ‘토론’이 아니라 개별 후보에 대한 초청 대담이었다.

1997년 대선부터 도입된 티브이 토론회는 고비용 저효율의 선거문화를 크게 바꿨다. 과거 대선 때는 여의도광장에 100만 인파를 서로 모아 세 과시를 하는 등 동원정치에 매달렸던 데 비해 티브이 토론회로 인해 후보들은 이제 말로 하는 ‘안방정치’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됐다.

그러나 티브이 토론회가 미국처럼 대선의 주요 변수로 자리잡았다고 하기는 아직 힘들다. 15대 대선 때만 어느 정도 토론회가 선거전에 영향을 끼쳤다. 오랫동안 ‘과격’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던 김대중 민주당 후보가 토론회에서 활약하면서 ‘준비된 후보’로 부각했던 것이다. 티브이 토론이 김대중 후보 당선에 결정적인 변수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도층이나 무당파의 표심을 끌어들이는 데는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다.

15대 때는 토론회도 풍성했다. 이회창(한나라당),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이인제(국민신당) 후보가 세차례의 법정토론회뿐 아니라 언론사와 시민단체 등에서 주관하는 각종 대담(1인 대상)과 토론(2인 이상 대상)에 앞다퉈 참석했다. 토론회가 너무 많다고 아우성이 나올 정도였다. 선관위 집계를 보면, 방송사가 주최해서 중계한 토론회만도 30회가 넘었다. 또 신문사들도 세 후보를 초청해서 합동토론회를 열었으며, 이를 지상파 티브이로 중계하기도 했다.

 이회창·이명박의 ‘김대중 학습효과’ 

반면에 2002년 16대 대선과 2007년 17대 대선에서의 티브이 토론회는 통과 의례의 성격이 짙었을 뿐 각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드러내는 데는 실패했다. 16대 대선 재도전에 나선 이회창 후보는 15대 때의 학습 결과였는지 다자 토론을 철저하게 기피했다. 에스비에스에서 그해 9월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세 후보를 대상으로 일대일 양자토론을 제안했지만, 이 후보의 거부로 무산됐다. 이 때문에 1인 초청 대담은 많았지만, 합동토론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법정토론회 3차례에 그쳤다. 법정토론회 3차례도 선거전을 출렁이게 할 정도의 역동성을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2007년 17대 대선 때는 토론 횟수가 더 줄었다. 방송사와 언론단체, 시민단체가 주관이 된 초청 대담과 토론(44회)이 16대(83회)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명박(한나라당) 후보가 부자 몸조심으로 일관한 탓이 크다. 초반부터 야당 후보들보다 멀찌감치 앞선 이 후보는 3자 토론은 말할 것도 없고 1인 초청의 토론도 가능하면 참석을 꺼렸다. 다자 토론은 3차례의 법정토론회가 전부였다.

티브이 토론회가 대선주자 지지율을 출렁이게 할 정도의 영향력은커녕 갈수록 유권자들의 관심을 잃고 있다. 법정토론회의 평균 시청률은 53.2%(15대)에서 34.2%(16대), 21.7%(17대)로 계속 추락했다. 오바마와 롬니의 3차 토론회 시청자가 약 6000만명에 달해, 풋볼과 야구 등 스포츠 빅게임 시청자보다 6배 이상이나 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2002년 11월2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를 위한 티브이 토론회 중계를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마디로 대선 티브이 토론의 실패다. 왜 그럴까?

우선, 토론이 깊이있게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17대 대선 법정토론회가 대표적인 예다. 이 토론회에는 정동영(대통합민주신당), 이명박(한나라당), 권영길(민주노동당), 문국현(창조한국당), 이인제(민주당), 이회창(무소속) 후보 등 무려 6명이 참석했다. 새로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서 ①5석 이상 의석을 가진 정당 ②직전 전국단위 선거에서 3% 이상 득표한 정당 ③언론기관 여론조사 지지율 5% 이상인 후보를 모두 초청하도록 규정을 대폭 완화한 데 따른 것이다. 그 이전의 참가 기준은 교섭단체 후보이거나 득표율 5% 이상, 후보 지지율 5% 이상이었다. 토론이 2시간이니 6명의 토론자 각자가 가지는 시간은 최대 20분, 여기서 사회자 발언시간을 빼면 기껏해야 10여분밖에 되지 않았다. 토론다운 토론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토론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은 참석자 수 문제만은 아니다. 15대와 16대 대선의 법정토론회는 각각 3명의 후보가 참석했지만, 이 역시 밋밋하거나 수박 겉핥기로 끝났다. 토론의 형평성을 기계적으로 중시하다 보니 토론회 진행이 너무 경직돼 있는 탓이다. 후보자 간 상호 토론이 있지만, 반박 1분, 재반박은 2분식으로 시간 제한을 해 토론이 심층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또 후보들이 동문서답해도 이를 제지하거나 재질문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회자의 역할도 후보들에게 발언 순서를 부여하고 발언시간을 체크하는 등의 단순 기능만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대선 토론회에 비해 우리나라의 법정토론회는 역동성이 없고 재미도 없다.

12월4일부터 세차례 예정돼 있는 이번 법정토론회도 비슷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거법상의 규정이 4년 전과 똑같기 때문이다. 야권 단일화에 따라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박근혜(새누리당), 문재인(민주통합당), 심상정(진보정의당), 이정희(통합진보당), 안철수(무소속) 후보 등 5명이 참석 대상이다. 참석 후보가 줄더라도 경직된 토론 진행방식 때문에 역동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후보에 대한 변별력을 보여주기 힘든 토론 구조다.

여기에 더해 유권자들이 대선후보의 자질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적인 티브이 토론이나 대담 기회마저 대폭 줄어들고 있다. 법정토론 이외에도 15대와 16대 대선 때는 언론사와 시민단체 등의 각종 토론이나 대담이 줄을 이었다. 16대 대선 때인 2002년 10월 한달 동안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에스비에스, 와이티엔 등 4개 방송사의 초청 대담만 해도 모두 10건이 이뤄졌다. 사흘에 한번꼴로 주요 후보들이 번갈아 티브이에 나와 패널리스트들로부터 주요 정책과 현안 등에 대한 추궁을 받았다. 이명박 후보가 토론을 기피했던 17대 대선 때도 20여차례의 방송 토론이 이뤄졌다.

종편 등 방송사 늘었지만 횟수는 줄어 

하지만 이번 18대 대선에서는 티브이 토론회가 실종되다시피 했다. 17대 대선 때에 비해 종편 등 방송사가 늘었음에도 토론 횟수는 오히려 훨씬 적다. 지금까지 티브이 토론회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내부 경선 때 진행됐던 4차례가 전부다. 한국방송의 심야토론과 문화방송의 백분토론, 에스비에스의 토론공방 등 토론 프로그램에서 매번 해 오던 주요 후보 초청 순차 토론(대담)도 모두 무산됐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들은 토론 참석 여부를 철저하게 자신들의 득표전략에 따라 정한다. 16대 이회창, 17대 이명박 후보처럼 지지율에서 크게 앞선 후보들은 가능하면 토론회, 그것도 티브이로 중계되는 토론회는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잘해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 후보 쪽이 티브이 초청 토론을 거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야권의 후보가 하나로 할 것인지 따로 나갈 것인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거부 이유를 대지만, 실제로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새누리당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혁당 재건위 판결이 두개 있다’는 말을 해서 엄청 손해를 봤듯이 토론회에 나가면 솔직히 박 후보가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는 것 아니냐”며 “우리로서는 가능한 한 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 쪽이 기자회견이나 각종 대담·토론을 피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안 후보 쪽의 한 관계자는 “대선 출발이 다른 후보들에 늦다보니 모든 준비가 덜 된 게 사실”이라며 “일단 언론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시간을 가능한 뒤로 늦추는 게 우리로서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지지율이 뒤지는 주자들은 토론 기회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문재인 후보 쪽은 초반에는 관훈클럽의 초청 토론 등에 다소 미온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적극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문 후보 쪽은 토론 형식도 3자, 2자, 개별토론을 가리지 말고 하자는 입장이다. 문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안 후보가 추석 연휴 직전에 출마를 선언한 뒤에 후보들의 지지율이 고착돼 있는 상황”이라며 “이를 타파할 계기는 각종 토론회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토론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한국방송기자클럽과 기자협회가 초청하는 개별 토론이다. 이것도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만이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로 일정과 순서를 조정중이다. 이 토론이 이뤄지면 안철수 후보로서는 첫 토론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법정토론 이외에 후보들의 티브이 토론을 강제할 방법은 없지만 대선주자 토론 활성화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들이 토론 성사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래도 안 나오는 후보에 대해서는 투표로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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